구민자

Julia Marsh: 최근에 작업한 Atlantic Pacific Co.(2011)과 World of job(2008)을 보면 당신의 계획된 노동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나타난다. 작가로써 노동과 작업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관객들이 이것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Gu Minja photo: sitecited

구민자 photo: sitecited

구민자: 미술품에서 ‘labor’는 보통 그림을 그리는 데, 혹은 조각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들인 노동력 등을 얘기하곤 한다. 물론 나의 작업에서도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들이는 노력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과 미술에서의 작업이 어떻게 일치될 수 있을까, 노동-일, 이것이 어떻게 미술로서 다루어질 수 있을까, 미술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하 그리고 정말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흥미로운 지점인 듯 하다. 왜냐하면 때로 미술이 생산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미술에서의 노동과 그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사회에서 어떤 생산적인 노동을 해야한다는 가치관이 나에게도 무의식중에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이 직접적으로 ‘노동’을 다루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 같고 그 과정에서 나는 노동을 작업으로서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관객들은 그 관점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업 안에서 보여주는 조금 이상한 ‘일’에 대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JM: 2007년 당신이 수집한 여러 가지 소재들을 가지고 그것들에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적 작업이 내가 당신의 작업을 처음 접한 계기였다. 그 작업들은 소비지상주의를 지속가능성 또는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다르게 조명하는 비평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love a la Plato 라는 세미나도 개최하였다. 왜 가시적인 유형의 작업보다 일시적으로 표현되는 작업을 만드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구민자: 비교적 물질적인 것이 드러나는 작업이 아니지만 오히려, 일상적으로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에 의미의 장치들을 끼워넣거나 다른 요소로 제한을 하기도 하고 어떤 행동의 장을 마련하고 그것을 기록함으로서 그 지나가는 순간들을 잡아채어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무언가를 남겨두기 위해 기록하는 과정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순간적인 작업이라고만 보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결국 내가 작업에서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작업을 하게끔 하는가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되는데, 간단하게는 내가 보는 세상의 일들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틈에 개입하고 싶은데, 나는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들을 통해서 잠시 개입했다가 빠져나온다. 그렇기때문에 내게 있어 작업은 계속 그 과정이 중요하고 순간적인 것이다. 마치 여행을 다녀온 후 그 여행의 시간은 지나가버리고 사진과 기억이 남는 것처럼 작업도 그런 것 같다.

JM: 당신의 작업들이 본래 지닌 일시적인 특징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작품들은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어떠한 참여 관객들이 작품들을 완성시키는가? 참여자들이 일반 관객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구민자: 작업마다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과 작업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최근의 작업인 ‘Atlantic-Pacific co.’의 경우는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관객이 작업의 참여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개 작업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더 깊숙히 관여하게 되는데, 어떤 경우는 그 사람들로 인해서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 가능하거나 완성될 수 있다. 이를테면 ‘symposion’과 같은 작업에서는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들 혹은 친구의 친구들이 참여하여 그들의 대화로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직업의 세계(World of Job)의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업에 참여하게 되고 그것이 미술이라는 것을 끝까지 모른 채로 끝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반대로 ‘Happily ever after’와 같은 맞선 프로젝트에서는 참여하기 전까지는 몰랐다가 참여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미술프로젝트라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하는 나 자신이 작업에서의 주된 참여자가 되기 때문에 작업을 구상하고 계획하고 진행하고 전시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조금은 스스로가 변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JM: 당신의 관점으로 오늘날의 미술 경제를 어떻게 평가 하는가? 당신의 작업이 이러한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다고 보는가?

구민자: 실제적으로 작업을 판매해 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의 작업을 아트 마켓이라거나 미술의 경제 시스템과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미술품에 있어서의 경제적 상황보다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경제적 상황들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 현실에서의 경제 시스템에 부합해서 살아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스템을 벗어나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경제 체계를 만들고 공동의 삶을 일구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렇게 독립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순응해야 하는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인다. 또 어쩔 수 없이 그런 시스템에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 시스템은 작가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라서 그것에 점점 의존하게 되어간다. 최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지원금의 체계에서 작가가 타협을 해야하는 경우들이 생기는데 그 과정은 많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떤 곳도 그저 마음껏 쓰라고 지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JM: 예전 우리의 만남에서 타이페이에 있는 공사현장 근처에서 콘크리트 벽돌들을 이용하는 전시를 계획 중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의 대부분의 작업들이 작품으로 판매 할 수 없는 비물질인 특성 또는 제작과정에서 잔여로 남는 물건 없이 단기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작품을 또는 제작과정을 기록하는가? 비물질적인 작품의 생산 유지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힘들지 않는가?

구민자: 그 때 생각했던 작업은 전시 장소였던 Taipei Contemporary Art Center라는 장소, 그리고 노동과 노동의 가치에 관련된 것으로서 그 공간의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 기념비처럼 전시하는 것이 계획 중 하나였는데 결국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른 작업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 계획이 실현되어 ‘물질’이 보여지는 작업이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을 둘러싼 이야기와 그 과정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그처럼 많은 경우 작업의 결과물은 작업 과정을 기록하는 방식이 되는 것 같은데, 대개는 사진이나 영상이지만 작업에 따라 다른 요소들을 사용하려고 한다. 글이나 드로잉을 함께 사용하기도 하고 작업 내용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다른 이미지나 도구들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비물질적 태도를 유지하는데 고민하게 하는 것은 단지 아트마켓뿐은 아니고, 아직까지는 작업을 어떻게 사람들이 이해하게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과정, 결과물에 대한 고민이 오히려 무언가를 자꾸 남기고 만들게끔 하는 것 같다.

JM: 최근 International Studio & Curatorial Program (ISCP) 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뉴욕에서의 작업활동은 어떠하였고, 그 곳의 환경이 현재 작업방향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뉴욕과 한국의 미술계의 다른 점들 중 놀라웠던 것은 무엇인가?

구민자: 잠시동안 다른 도시에 가서 지내고 작업을 하는 것은 여행자와 작가의 중간지점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도시라든가 특히 그 곳의 미술계에 대해 많이 알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놀랐던 점이라면 매우 실험적인 작업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굉장히 뚜렷히 가격을 명시하며 상업갤러리에서 판매된다는 점이다. 팔리는 미술작품에 대해서라면 한국 미술계에서도 잘 알지 못하지만, 입구 데스크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가격을 명시한 파일이 놓여져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레지던시라는 것을 이용해 외국에 체류하는 것은 그 기간 동안 작업 이외의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서 늘 적극적으로 그 곳을 바라보는 태도로 있기 때문인지 많은 자극이 되고 언제나 좋은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거시적인 시점을 보통 스스로 갖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작업 자체의 큰 방향에서의 변화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좀 더 긴 기간 동안 그 곳에서 작업을 하고싶은 마음이 한구석에 생겼다. 그 곳과 그 곳의 미술계에 대해 조금 알기 시작할 무렵 다시 돌아오게 되어 그런 것 같아서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고 있다.

Questions Translated from English to Korean by Kim Kwang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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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Julia Marsh: 당신의 초기작품들을 살펴보면 작가가 관객들의 반응을 고려하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반응들이 관객들에게 영향을 주고 체험 하도록 준비과정을 통해 계획 된 것처럼 나타나 보인다. 당신은 관객들로부터의 어떠한 특정한 반응을 원하는가?

Jung Yeondoo photo: sitecited

정연두 photo: sitecited

정연두:내가 관객들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특정 작품에 따른 관객들의 일관적인 반응을 예측 하지는 않는다. 나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반응을 통제할 생각도 통제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의 관객을 선택 할 수 있다.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회에 가면 사람들은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나는 사람들이 커튼을 열고 잠깐 엿보고 갈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16초 마다 슬라이드 프로젝션이 사라지게 작업 하였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그곳에 남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의 관객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작업을 보고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JM: 당신의 작업들은 상당히 주도 면밀하게 제작되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작업을 제작하기까지 묘사를 위한 어떠한 연구들이 이루어 지는가?

정연두: 제작 과정은 나의 작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작업과정을 보여줄지 숨길지는 작품을 만들기 전에 결정한다. 몇몇 작품들은 제작 과정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미장센을 돕기 위해서 과정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나는 연출된 사진에 조심스럽게 결함을 남기고, 그것을 통해 관객들이 작품의 제작과정에 의문을 제기 하기를 바란다. 불완전한 것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JM: 대부분의 작업들이 환상이라는 틀 안에서 표현되는데 이러한 작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연두: 나는 관객들에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거울이 필요하다.  거울은 현실을 반영하고 마치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보여지게 한다. 나는 이 자체가 현실로부터 닮아 있지만 큰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업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바라본 나 자신이다. 이렇게 바라본 시선은 제작과정을 기록하는 것과는 다르다.

JM: 매너리즘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발상을 작품제작 또는 환상과 연결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정연두: 사람들은 어떠한 것이 제시되는 방법에 따라 그것을 마술로 이해하기도 하고 미술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형적인 마술/미술의 표현을 통행 우리는 그 장르를 결정짓는다. 만약 당신이 마술적인 표현을 무시 한 체 비논리적인 것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그것의 결과에 대해 놀라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작품의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마술사는 그들의 비법을 꾸며나간다. 이 방법을 통해 사람들은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나는 확실한 장르를 가지고 보편적인 구상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이 내가 말하는 매너리즘 이다.

JM: 모든 작가들이 본질적으로 손재주를 가지고 작업한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자각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연두: 작업을 제작하기 위해서 기술은 언제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생성해 내는 과정이 그들의 예상보다 뛰어 났을 때 감명 받기도 한다. 그러나 뛰어난 손재주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꼭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작가들의 선택의 문제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나의 작품의 결점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나는 이 기술을 작품의 비효율적인 구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다.

JM: 가장 최근에 뉴욕에서 한 전시에서 당신의 작업을 보고 당신이 언제 마술사/작가가 되기로 결정했는지 묻고 싶었다. 여전히 궁금하다.

정연두: 마술사는 보여지는 방법을 연구하여 여러 가지 환상을 실현해 낸다.  영화 비위치드 에서 사만다 는 코를 비틀면 마법이 걸린다. 여기서 감독은 그녀의 마법을 실현하기 위해 편집을 해야만 했다.  당신이 정말 마술을 믿지 않는 이상, 이를 완성하고 수행하는 역할은 언제나 시각미술 작가의 몫 인 것이다. 작가/마술사가 되고 싶었던 시점은 내가 미술을 시작한 1997년도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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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Jung Yeondoo

 

Jung Yeondoo photo: sitecited

Jung Yeondoo photo: sitecited

Jung Yeondoo, lives and works in in Seoul, South Korea. He earned his MFA from the University of London, Goldsmiths College in 1997. He has exhibited widely and internationally and is perhaps best known for his narrative and visually deceptive video works. In 2012 Jung mounted his latest solo exhibit at Tina Kim Gallery in New York City, and has had solo exhibitions in Berlin, Washington, D.C. and Tokyo among others. As well, he has been in numerous group exhibitions including Media City: Spell on You, Seoul (2012), City Within the City at Artsonje Center, Seoul (2011) 8th Shanghai Biennale (2010), 4th Prague Biennale, Prague (2009), Dirty Yoga Taipei Biennial (2006), Manufactured Self at The Museum of Contemporary Photography, Chicago, IL (2005) Liverpool Biennial of Contemporary Art (2004), Re:source at Art in General, New York City, NY (2004), 8th International İstanbul Biennial (2003) and the 4th Gwangju Biennale – PAUSE (2002). I first became aware of Jung’s work with his Documentary Nostalgia (2008) at Turn and Widen-Light, Communication and Time, at the Seoul International Media Art Biennale: Seoul Museum of Art. This work and his other more recent works test the limits and expectations of vision through the apparatus of video and projection. More than that Jung’s video’s also engage our need for stories and magic without pandering. Instead his works elevate the interplay between artist and audience to a more desirable state in which viewers are challenged and rewarded by the challenge. I set out to interview Jung to ask when he decided to become a magician; a question, he of course, never really answered.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the conversation we had in January 2012.

 Marsh: I understand from your earliest work you had great concerns for your audiences. From my perspective it seems that this attention has manifested over time as a kind of preparing, or at least priming your audience for the effect or experience you would like them to have. Do you hope for specific outcomes from your audiences?

Jung Yeondoo: It would be untrue if I said I don’t expect anything from the audience. But then, I don’t expect a specific outcome from the audience through my certain work. I do not attempt or wish to control my audience’s reaction. But I can choose my audience. When people go to large exhibitions like biennials, they feel they ought to see everything in the show. I deliberately choose 16 seconds dissolves for my slide projections for the people who open the curtain to peek and leave after few seconds. But some people will stay, and if they stay, they will stay to the end. This is my way of choosing my audience. I don’t expect everybody see my work nor understand my work.

JM: Your works tend to be made with fairly elaborate productions. How would you characterize the research that goes into the making?

JYD: The process is very important part of my work. So, I decide whether I am going to show the process or hide the process before I produce the work. Some of the work contains the process as a body of work, and in the other work, I try to erase the process for the sake of mise-en-scene. I carefully try to leave the flaws in my staged photos to make the audience try and guess the process for the work. It is quite difficult to be imperfect.

JM: Since you much of your work is framed around illusion, what is the goal of your works?

JYD: I wish to show the audience “reality in different perspective.” To look at oneself, one has to look in the mirror. The mirror is reflected reality, which pretends to be real. I think this is a great illusion, since it resembles the reality itself. My work is a way of looking at myself through another’s life. This looking is different from the process of documentation.

JM: We spoke about mannerism in our meeting. Can you elaborate on this idea as related to art making or illusion?

JYD: People understand something as a magic or art through the manner of presentation. So we understand the genre through the typical gesture of magic/art. If you show something illogical, without an appropriate magical gesture, people won’t be amazed at the results. So artists try to make art like results, and magicians try to decorate their tricks. People then understand way more easily. That’s what I call mannerism, because I like to play with the general conception of certain genre.

JM: Do you think all artists inherently work with slight of hand (sleight), or is that a conscious choice?

JYD: Skills are always the convincing element in the output of artwork. People may even be touched if the elaboration of the making goes beyond the expectation. But it doesn’t mean that sleight of hand is necessary to make a good art work. Artists can choose. As I said, I work hard to show the flaws in my work. I use these skills to show how the work is inefficiently structured.

JM: Before I learned of your latest work for your New York show I had wanted to ask you when did you decide to be a magician/artist? I am still curious.

JYD: Magicians deal with visual tricks. Like Samantha in Bewitched who was a witch and cast spells by her twitching nose, the producer had to edit the video to complete her magic. Unless you really believe in real magic, it is always the visual artist’s role to perform this completion. I wanted to be an artist/magician since I started making art in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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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Lee Chang Won

Other Selves

Gallery Loop 9.26-10.24.12

Lee Chang Won’s clever works on exhibit at Gallery Loop could seem a bit thin at first glance, but then the tricky nature of the work takes on more depth as you become entranced but what it can do. It is lucky that the artist chose to put his most complex apparatus on the first floor which prepare you for what is far more simple almost flatfooted in the lower gallery. Regardless of its simplicity in the lower gallery the work is just as enchanting as the cave paintings they reference. Using simple means—LED lights and mirrors with silhouettes cut out—to make his images Lee focuses our attention on the reflected shapes. However, especially in the work Parallel World_Hands Across Time (2012), akin to Plato’s cave, Lee transmits two possible messages, but we perhaps receive only one. The sillouetetes are cut from images of popular culture and appear to be chosen for their specific gestures and stances. However, clean Lee’s works appear they posses a surprising patina of antique mystery. Particularly captivating Babi’s Mirror_Apparition (2012) is comprised of a turning mirror like ballerina in a music box and the reflection of a face. Of late many artists it seems are using reflections and spotlighting in the dark to focus viewers’ attention. At this point in history work like Lee’s that utilize the metaphor of the cave seems appropriate. Are we hiding or searching, in wonder and awe, or fear and dread. Is this a metaphor or a reality? Always there is a small bit of light—something to reach for, to aspire to. But is it more than a search? Are we finding ourselves once again in a dark age of opaque leadership, even as we unearth, make transparent every aspect of our lives? Or is it even more sinister? Are we thrown back, living in the dark because there is little or no hope? However elementary these works may appear, that glimmer at the end of the tunnel may just be a Mack truck on a crash course with hum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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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Media City 2012: Spell on You

Seoul Museum of Art, 9.11-11.4.12

The exhibit Media City: Spell on You housed in the Seoul Museum of Art is chock full of good work, more than good, great works of media art. However, the unbearable installation of each and nearly every work makes one ask: what where the organizers thinking? Not only can you not hear the work you are looking at you can barely hear yourself think for all the interference from all the sound spilling over and around partitions. I would have loved to sit and listen to Jung Yeondoo’s Six Points (2010), but I couldn’t hear it because the work in the next space was blaring away, and visa versa. Works housed in their own rooms were drowned out by those in the next so a work like David Claerbout’s The Algiers’ Sections of a Happy Moment (2008), which needs quiet and contemplation, was just miserably overwhelmed by all the noise from the other works. Media City is typically a good show and as it is a recurrent media exhibit one would think there would be some sensitivity to the installation of such works and a need to respect the sound thresholds of each work by not allowing any to drown out another. This is basic to media exhibition: how to find a balance between works that have competing interests? But here all that was forgotten. So a potentially amazing exhibit is shattered by the lacking skill of the preparators? The curator? The museum? Unable to really concentrate on works by artists, such as Seiko Mikami, Koo Donghee and Dennis Feser I left the exhibit quickly. In the end the worst part is how the artists are hurt here, how their ideas and efforts are buried under the weight of bad curating and exhibition design. What a trav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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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Out of the Yushin State – Body

Yangachi and Kim Jung-heun

Pool, 8.28-9.26.12

This two person show was premised on the1972 “self-coup” of Park Chung-hee. Part of this overthrow included the disappearance and supposedly accidental death of an opposition candidate for the office of the president. The work in the show is interesting, if only for what it metaphorically expresses. As well, the forms may be familiar, but A Night of Burning Bone and Skin, an engaging flashlight lit video by Yangachi. Certainly the video is a forward-moving-search and a rewinding-back-tracking retracing of the steps of the dead man, but is it more? A search for a way forward? The way back? A history that makes the present more sensible? The projection screen seemingly made of recycled wood gives the video the feeling of a search a more palpable presence in that it feels like a door or a fence, a blockage, not just something to overcome, but representative of an impasse. Still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orks is one of distance and respect rather than dialog. While there are problems with the exhibition, especially in the other works included by Yangachi, the exhibit has a neat sense of continuity between works. At least three of Kim Jung-heun’s paintings make clear the context in which Yangachi conducts his investigation. However, what was obvious and poetic in the video become superfluous in the flag and photograph of the flag. Moreover the hanging of Jung’s work felt tricky—in a bad way—affect used for the sole purpose of creating interest where there is no need for more. Kim’s paintings made between 2001 and 2004 are skilled and simple, directly reflecting the place from which the show wishes to speak. This critique of that era, the military junta of Park Chung-hee is timely, in that his daughter also seeks the power of the presidency. However the question is: are these investigations’ revelations aud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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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Gwangju Biennale: Roundtable

9.7-11.11.12

The word on the street was that this year’s installment of the Gwangju Biennale wasn’t very good. Viewing the co-directed Roundtable with already low expectations, the most obvious flaw of this biennale is that it is not well organized, which despite stating that this its premise is the organization of an open and non-hierarchical endeavor. For even the most egalitarian of exhibits can have a sense of unity or even design. So it is all well and good to intend this and also stand in opposition to the last Gwangju Biennale in order to mess with order. But the last biennale was in comparison a far more comprehensive and coherent statement of its guiding thesis. Roundtable, on the other hand, is plagued by confusing, vague and has an overwhelming amount of signage that often has typos and omits key information like video duration. One area that did excel was the off-site exhibit at Mugaksa, a Buddhist temple. The works shown there were both engaging and enjoyable. Conversely, the works shown in the Daein Market felt haphazard, in a bad way, but not because it was in a market, but because the market is dirty and gross, not inviting in any way. The lack of attention to this area by the organizers or the city was an obvious misstep of the organizers. More importantly what that site added to these works I do not know. For if the site was supposed to inform the works I could see no connection as to why good works by like Kim Beom and Chosil Kil had to be stuffed there and suffer from crap accommodations. In the main halls the show went on too long, meaning the first gallery had a lot of work of interest, even if some felt derivative or familiar, but as one moved through the spaces it became a chore to keep up with the amount of listening and video and reading that had to been done to take in the whole thing. By the last floor in the second building fatigue had set in caused by unevenly juxtaposed works demanding unwarranted at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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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너무 무거운, 김윤서

바위에 새긴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으로부터 율법과 계명이 새겨진 돌판 두짝을 내려받았다.(1) 대대손손에게 보여지고 지켜져야 할 계명이라면 나무나 흙바닥이 아닌 바위여야 할 것이다. 바위에 새긴 글은 영원불변하는 진리이거나, 진리에 가깝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바위에 새겨진 글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작대기 하나만 더하기도, 다시 고쳐쓰기도 어렵다. 껌종이나 담뱃곽 위에 쓰느냐, 바위에 새기느냐는 쓰여질 그 내용의 무게를 대변한다.

강요된 보기1: 금강산

Engraved Rock, Mt. Kumgang, North Korea, 2012

최근 금강산의 바위 소식을 전해들었다. 2012년 4월 북한이 박연 폭포 주변의 바위에 “영원한 우리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글귀를 새겼다는 내용이다.(2) 신문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이 문장의 총길이는 37m, 글자 개당 높이는 5m, 가로2.9m, 깊이 0.45m이다. 마지막 글자 ‘지’의 모음 ‘ㅣ’에 사람 한명쯤은 쏙 파묻힐 수 있을 크기다. 북한은 경치가 뛰어나거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조선아 자랑하자 5천년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수령으로 모시었던 영광을” 과 같은 문구를 새겨 넣는 글발사업을 1970년부터 진행해왔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강요된 보기2: 서울대전대구부산

Engraved Rock, Seoul, South Korea, 2007

서울시내 곳곳에는 “바르게 살자”는 문장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면 이 바위는 서울 시내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위 뒷면에는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문장이 덤으로 새겨져 있다.(3) 이 커다란 돌덩이는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가 1999년부터 전국적으로 진행해온 사업의 결과물이다. 행정안전부 산하 관변단체인 이들은 전국 8도 기관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으로 현재까지 전국에 300여개 이상의 ‘바르게 살자’ 표석을 세웠으며 1천개를 설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4)

“바르게 살자” 일상생활에서 시민을 ‘계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청유형이지만, 묵직한 검정색 서체가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전달되는 방식은 지키고 따라야할 법규와 같다. 이토록 압도적이고 일방적으로 다가오는 텍스트를 전국 8도 거리마다 종종 마주치게 되는 일은 시력을 가진 보행자로서는 피로하고, 때로는 무서운 일이다. 보행자 그 누구도 강요된 보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2년 서울 어딘가에서 지금도 이러한 표석이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꽤 초현실적이다.

바위로 바위치기: ?

Michael Asher, Engraved Rock, Daejeon, South Korea, 1993

미국의 개념미술가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b. 1943)(5)는 한국에 왔다가 ‘바르게 살자’ 표석과 비슷한 돌덩어리를 하나 세워놓고 떠났다. 좀처럼 물리적인 실체로 남는 작업을 하지 않는 애셔의 영구 작업이 대전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그의 프로젝트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던 나로서는 신나는 발견이었다.(6)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93년 과학도시 대전에서 열린 ‘대전엑스포’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과학 행사 중 한켠에서는 이를 경축하기 위해 ≪미래 저편에Future Lies Ahead≫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렸다. 전시를 기획한 퐁튀스 훌텐(Pontus Hulten)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초대된 35명의 작가들이 실내 전시와 조각공원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를 진행했고, 애셔는 조각공원 설치 부분에 참여했다. 이때 그가 조각공원 조성을 위해 한 작업이라는 것이 한국인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표석을 세운 것이다. 그가 바위에 한국어로 새겨놓은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이곳저곳에 설치된 건축-구조물들의 나열이 관람객인 우리들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의 정당화와 권력의 표상 사이를 오고가는 우리들로부터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입니까?”(7)

지난해 여름 이 바위를 보기 위해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을 찾았다. ‘조각공원 조성’이라는 당시 전시 목적에 충실하게 무대처럼 틀지워진 조각공원 안에서 대형조각들은 작품명과 작가명을 달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애셔의 작업은 그곳에 없었다. 대신 조각공원으로 향하는 인도 곁에 특별할 것 없는 바위로 세워져 있었다. 또한, 조각공원에 설치된 조각들과는 달리 애셔가 설치한 바위 앞에는 작가와 작품 제목을 알리는 그 어떤 표식도 없었다. (실제로 애셔의 모든 작업들은 제목이랄 것이 없다.) 애셔는 바위가 놓일 장소로 ‘조각공원’보다는 그저 방문자들의 여러 동선 중 조각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을 택했다. 텍스트가 새겨진 바위와 이를 받치는 바위 두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자체 또한 검정색 명조체를 사용했다. 놓인 자리와 바위의 생김만 보더라도 전형적인 표석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결국, 애셔의 작업은 ‘예술작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바위에 새겨진 내용만 조금 생소할 뿐.

애셔는 1993년 대전을 방문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곳곳에 설치된 ‘바르게 살자’와 같은 표석을 몇차례 마주했을 것이다. 실제로 엑스포 과학공원을 향하는 길목에만 해도 이곳이 ‘대덕연구단지’임을 알리는 기념바위가 서있다. 동네 초입이나 건물 건축을 기념하는 한국 곳곳에 설치된 표석은 보는 이들에게 발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한국인에게 특별할 것 없는 기념바위에 애셔가 발신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국어로 새겨 넣은 이 작업은 몇가지 재미있는 지점을 안고있다.

애셔가 스펙터클한 대형 조각으로 공공장소를 작가 개인 또는 도시의 상징적 장소로 식민화해온 공공조각의 관례를 유머러스하게 비판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업 역시 그가 해온 작업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는 ‘바르게 살자’ 바위와 다를 것 없는 대형 기념비의 형태를 그대로 빌어와 텍스트만 교체함으로써, 바위로 바위를 치는 전술을 펼쳤다. 이 표석은 그의 여느 작업과 마찬가지로 한눈에 작품으로 인식되지 않을 뿐더러, ‘애셔’라는 작가의 이름 보다 텍스트를 전달하는 발신장치로서의 본디 기능이 우선한다. 그런 면에서, 바위 그 자체 보다는 바위가 세워진 일상적인 장소와 상황 안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요구되는 시선과 보는 행위로써 유발되는 ‘각성’ 에 방점이 찍힌다. 정보 주입으로서의 문장이 아닌, 물음표로 끝나는 텍스트를 새김으로써 보행자의 수동성에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요컨대, 애셔의 작업은 일상생활과 자연스러움 속에 똬리를 틀고있는 지배의 도구를 비판하고 의문을 던진다. 이로써 개인의 삶 속에서 사라진 긴장관계를 생성하고자 한다. 그가 만들어내고자 한 것은 엄청난 대안이나 확실한 해결책이 아니라 개개인의 ‘태도’다. 애셔 작업의 급진적 성격은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담론 차원에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지역주민들이 이 표석을 통해 공공조각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넘쳐나는 장치들에 대해 물음을 가져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원하는 바를 이룬 것일테다.

김윤서 (예술학,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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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애굽기 24: 12

2)   2012년 4월 6일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박연폭포의 글발에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의지가 어려있다”면서 “김일성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려는 천군만민의 불변의 신념을 담아 새겼다”고 전한다.

3)   이를 받치고 있는 또다른 바위에는 이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공헌한 서른명 남짓한 이름 목록이 빽빽하게 새겨져있다.

4)   국회 예산정책처의 ‘회계연도 결산부처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는 행정안전부로부터 공익사업 명목으로 2010년 1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으며, 2011년에는 2010년보다 50% 증가한 15억원을 받았다. 행안부는 올해 예산에도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에10억원의 지원예산을 편성해놓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다른 비영리 민간단체나 많은 공익단체가 국고 보조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별도의 공모절차 없이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회와 같은 관변단체에만 연간 수십억원 규모를 교부하는 것은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5)   애셔가 원하든 원치않든 그는 개념미술가, 세부적으로는 1세대 제도비판미술가로 알려져 있다.

6)   1993년부터 대전엑스포 과학공원 내부에 있던 애셔의 표석은 2012년 2월 대전시립미술관 야외광장으로 옮겨졌다.

7)   한국어로 번역된 원문은 다음과 같다. “ASSUMING THAT THE ARRAY OF STRUCTURES WHICH CONSTITUTE THE IMMEDIATE SURROUNDINGS WERE DESIGNED FOR US SPECTATORS, IT ENABLES US TO ASK: WHO BENEFITS FROM OUR NAVIGATING BETWEEN DISPLAYS OF CORPORATE LEGITIMATION AND REPRESENTATIONS OF POWER?” Andrea Fraser, “Procedural Matters: The Art of Michael Asher”, Artforum (Summer 2008), p. 464 (fn.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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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oonSeo, “Heavy, Too Heavy: Words Engraved on the Rock”

Perhaps because Moses climbed up Mount Sinai and received two stone tablets on which God’s commandments were written, and the code of Hammruabi is carved into a stele, it became customary that stone, rather than wood or paper, are used to preserve important messages, generation after generation. Texts carved into rock are easily regarded as eternal truths because the words themselves are not readily erased, even by many years of weathering. Moreover, that no one can simply erase, add a playful line or rewrite such texts, they evoke a seriousness to what is written.

Coerced Watching 1: Mount Kumgang

Engraved Rock, Mount Kumgang, North Korea, 2012

Recently, I read about such rocks, inscribed on Mount Kumgang. In April 2012, the North Korean government engraved “OUR ETERNAL LEADER, COMRADE KIM IL-SUNG” on a boulder around Bak-yeon Falls.[1] According to the press, the overall size of the text was five by 37 by .45 meters, making the last Hangeul character “ㅣ,” which is the same as the vowel “i,” easily the size of an adult man. Since 1970, the North Korean government has produced these engraved works wherever there is a large floating population of workers, carving words such as “The great leader Kim Il-sung is always with us” or “Chosun, let’s be proud of the fact that we had Kim Il-sung as our leader, who was the greatest leader in the 5,000 years of our national history.” This work is ongoing.

Coerced Watching 2: Seoul, Daejeon, Daegu, Busan

Engraved Rock, Seoul, South Korea, 2007

In many places around Seoul, people can find boulders engraved with the words “LET’S LIVE A RIGHT LIFE.” Additionally, the text: “YOU CAN SEE THE FUTURE WHEN LIVING A RIGHT LIFE” is also engraved on the back of such rocks.[2] After seriously researching this type of engraving I found that these rocks are found not only in Seoul, but all around the country. These carvings on huge boulders are the result of a national project conducted since 1999 by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Right-Way-of-Life Movement.” This organization, which is a government-run advocacy group affiliated with the Ministry of Public Administration and Security (MOPAS), placed more than 300 of these “LET’S LIVE A RIGHT LIFE” stones all around the country with the help of the government finances in all eight provinces. Their goal is ultimately to place 1,000 such stone inscriptions.[3]

The texts selected and engraved by the government are obviously designed to reach individuals and make them think in accordance with the state’s own logic. It is a different matter whether this strategy succeeds or not. According to Michel Foucault, power can modify and discipline individuals through various apparatus. At this point, the concept of the apparatus can be defined as something impelled upon individuals from outside, which is the externalized power that artificializes, manages, and governs beings. These apparatus are imposed upon individuals who then internalized them as beliefs. In the situation of the inscribed boulders, if individuals follow the given texts literally, such controlled bodies have no choice but to accept the given ideology the incumbent regime administers. This happens easily when there is no tension between the beings and the apparatus. Although this is generally acknowledged as a truth in structuralist theory, it should still be taken into account that no matter how terrifying a given system may be, there always remain possibilities, which can be created by ordinary people in their daily life. What is important here is the interconnection between the demand of the text and the possibilities suggested by certain art practices.

The sentence “LET’S LIVE A RIGHT LIFE,” which the government says is devised “to guide” citizens, is grammatically a suggestion, but looks more like a demand to follow, when it is writ in big, black bold font carved into a huge boulder. Such coercion could be tiresome and sometimes even scary for any pedestrian who has eyes to see when they face one of these overwhelming and unilateral texts throughout the nation. No pedestrian can be free then from this persuasive monitoring. That these bullying messages are still being placed around Seoul even in 2012 is somewhat surreal.

Stoning the Stones?

Michael Asher, Engraved Rock, Daejeon, South Korea, 1993

Michael Asher (b. 1943),[4] an American conceptual artist, engraved a stone inscription similar to “LET’S LIVE A RIGHT LIFE” when he visited Korea in 1993. It is an exciting discovery considering that Asher, who is well-known for leaving very few physical remnants of his artistic work, left a permanent work in Daejeon. It was even more interesting to me as I was writing my thesis on his oeuvre.[5] In 1993, as many Koreans will recall, there was an EXPO in Daejeon a city that was advertised as “Science City.” At the same time, an exhibition was held to celebrate the science event. Entitled Future Lies Ahead, the show was curated by Pontus Hulten, who invited 35 artists from all over the world to participate in a museum exhibition and sculpture park. Asher’s participation in the sculpture park, consisted of a simple stone with an inscription, which was, to Koreans, rather banal. The text engraved into the stone is as follows:

“ASSUMING THAT THE ARRAY OF STRUCTURES WHICH CONSTITUTE THE IMMEDIATE SURROUNDINGS WERE DESIGNED FOR US SPECTATORS, IT ENABLES US TO ASK: WHO BENEFITS FROM OUR NAVIGATING BETWEEN DISPLAYS OF CORPORATE LEGITIMATION AND REPRESENTATIONS OF POWER?”[6]

Last summer when I visited the EXPO Science Park in Daejeon to see this rock, I saw that the organizers where devoted to the goal of “creating a sculpture park,” and the giant sculptures were displayed throughout the park, each with an appropriate placard indicating the name of the artist and the title of the work. However, Asher’s work was not placed with the others; instead, his unimportant looking rock was positioned by a sidewalk entering the sculpture park. Also, unlike the other sculptures, there was no placard. (In fact, as a practice his works have no title, and they are not “Untitled” but actually have no name whatsoever.) Unsurprising in light of his titling, Asher chose the street corner for his work’s placement, rather than the sculpture park, so visitors would pass by it on the way into the sculpture park. This work, like the one’s sponsored by the government, consists of a rock engraved with text in black Ming-style font and a supporting rock. The place where the work is set and the form of the rock follow exactly typical stone inscriptions found throughout Korea. Indeed, Asher’s stone doesn’t look like art, except that text is a bit strange.

When he visited Daejeon in 1993, Asher may have seen other stone inscriptions like “LET’S LIVE A RIGHT LIFE.” Indeed, even on the street corner of the EXPO science park stands a memorial stone inscription announcing “Daeduk Science Town.” This rock, which commemorates facilities just installed or constructed in town, functions as a message-board letting people know the fact, which can then undoubtedly be considered like a signpost. While there is no special interest for Koreans in stone inscriptions because of their familiarity or banality, there is something intriguing, even startling about Asher’s stone engraved with its message written in Korean.

Considering Asher’s past work that had humorously criticized spectacular public sculptures, which colonized public spaces, or as the banal symbols of city marketing, his work in Korea can also be considered in the same context. By using a commonly found form of a stone inscription and providing a more than different text, he used a strategy of throwing stones at the stones, or simply “stoning the stones.” As with much of his work, the stone inscription is never recognized as art at a glance, and its function as message sender overrides any need for the artist’s name. In this respect, this work’s significance lies in critical reflection or awakening, which is aroused by the coerced seeing of locals in ordinary places, rather than by the stone itself. By ending the engraving with a question mark, rather than forming a statement imposing information, he provides pedestrians with an opportunity to critically reflect on it.

In short, Asher’s work criticizes and raises a question to the apparatus of domination, which is coiled up in our daily life and its familiarity, and thereby produces that missing tension, which had disappeared between being and apparatus. What he tries to create is not a great solution or alternative, but an “attitude.” The radical character of his work is urgently needed in Korean art discourses. If people begin questioning the nature of the abundant power apparatus existing under the label of “public art” in this land, this, I think would begin to satisfy Asher’s hope.

Yoonseo Kim, Curator, Hongik University Museum of Art


[1] On April 6, 2012, The Labor Press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reported that “the texts engraved into the Bak-yeon Fall reflects the will of our military and people, which tries to honor the revolutionary exploits of our great leader Kim Il-sung, who is the Sun and most merciful parent of our nation, for thousands of generations to come” and said “It was engraved with the infallible belief of our military and all people to honor our leader Kim Il-sung.”[2] On another rock underneath, about 30 people’s names who contributed to the project are engraved.[3] According to the National Assembly’s budget policy team’s “Analysis on Financial Balances of Government Departments in the Financial Year,” the “Central Committee of Right-Way-of-Life Movement” received 1 billion won under the name “Public Projects” in 2010, and received 1.5 billion won in 2011, which is an increase of 50% from the year before. The “Ministry of Public Administration and Security” budgeted 1 billion won for the Central Committee in 2012 again. The National Assembly’s budget policy team pointed out that “in the current situation where other non-profit civic organization and many public interest groups experience financial difficulty, it could be seen as an unfair practice that the government keeps budgeting billions of won only to government advocacy groups such as the “Central Committee of Right-Way-of-Life Movement” or the “National Council of Saemaul Undong Movement” without any procedure of public competition or contest.”[4] Asher, regardless of whether he likes this reputation, is well-known as a conceptual artist, or specifically, the first generation of institutional critique artists.[5]Asher”s stone inscription, which had been set in the interior of Daejeon EXPO Science Park since 1993, was moved into the exterior plaza of Daejeon Museum of Art in February 2012.

[6] Andrea Fraser, “Procedural Matters: The Art of Michael Asher,” Artforum (Summer 2008), p. 464 (fn.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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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dOCUMENTA(13) curated by Carolyn Christov-Bakargiev

Kassel, Germany June 9- September 16

After attending documenta three times (1997 for Catherine David’s documentaX and in 2002 for Okwui Enwezor’s documenta11) the most obvious assessment is that each incarnation is the expression of its curator. Undeniably dOCUMENTA(13) has the imprint of its organizer, Carolyn Christov-Bakargiev, which can be defined as socio-politically comprehensive and relevant in scope. Because each documenta is a statement about the moment, while also being something of a timekeeper, each reflects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s a continuum that shifts in time and space. Still, the sheer complexity and easy accessibility Christov-Bakargiev brings to bear on issues of political and social import surely makes it a standout among others. If Enwezor’s documenta11 was political and didactic, Christov-Bakargiev’s is ethically illuminating and edifying. dOCUMENTA(13) moves between worlds: nature and science; east and west; war and peace; cruelty and compassion; giving and receiving, and yet the spaces it occupies in Kassel are not fission with tension, but magic and a sense of depth without condescension. To continue the comparison, if David’s was too representative of the establishment and rewrote the history of art in the 20th century, Christov-Bakargiev’s brings together known and new models of contemporary art and includes many less renowned artists from all over the world, as well as the work of people from different disciplines. Moreover, this documenta palpably transcends the opening week as it spreads continuously over its 100 days with events and projects throughout the small hamlet of Kassel and beyond to other parts of this Hessen capital, as well as shifting its location from Kassel to Cairo to Kabul to Banff.

Roman Ondák, Observations, 1995/2011, 120 cuttings from a book, grouped in 72 frames Each cutting between 4,9 x 5,2 cm and 7,7 x 12,6 cm Photo: Anders Sune Berg

Without going into the difficulty, too much, of taking in an exhibit of this scale in its entirety I will say that it was, more than any previous I attended, sprawling and beyond all human capacity to take in, even a fraction of its contents without unlimited time and the ability to move through time. This is not a detraction, in fact it is one of the many things that makes dOCUMENTA(13) special. With its focus on not so much on the intransigence, but reliable fluctuations between oppositions like east and west, notions of history and the place of the artist in the exchange of goods and services objects and ideas, Christov-Bakargiev managed to bring into being an exhibit that made room for as many ways of working as can be imagined without producing any feeling of competing interests. In this way the show points to how undeniably linked we are in our differences. The focus and organization throughout give respectful space to each and every, with perhaps one exception on the right hand side of the second floor the Neue Gallerie, which felt more like an MFA exhibit than a site at the most exceptional of exhibits. However there are tremendous moments there with the likes of Wael Shawky’s Cabaret Crusades; and Roman Ondak’s Observations.

Wael Shawky, Cabaret Crusades: The Path to Cairo, 2012 Video, color, sound 58 min. Photo: Anders Sune Bergs

The most important location in Kassel is perhaps the first floor of Fridericianum, where the exhibition begins. Quickly dispensing with all expectations the entrance gives the viewer little or nothing to hang onto in terms of art or direction with Ryan Gander’s I Need Some Meaning I Can Memorise[sic] (The Invisible Pull), (2012), which is little more than a breeze wafting through these wide open spaces. In effect Gander’s piece clears the mind, allowing the exhibit to take hold. As you ascend the floors of this building, it gets fuller, so by the time you get to the top of the building, where Kader Attia’s The Repair from Occident to Extra-Occidental Cultures, (2012) and Miriam Ghani’s A Brief History of Collapses are situated, the experience is extensive and overwhelming. Still, the core of this exhibition, called The Brain, is located at the back of the building’s first floor in the rotunda, like a hippocampus storing a collective sensibility, where Christov-Bakargiev has gathered numerous objects, like Georgio Morandi’s still life objects to Sam Durant’s pillow, and the 3000-year-old Batrician Princesses, revealing a poetic wellspring of the exhibit, pulsing with ideas. However, the weight of this exhibit is in the overall sense that the works represent something specific to the artist, the place and the exhibit. Most works are not solely semantic, but represent philosophies and sciences, crafts and forms, with each work set down, shown, revealed in its complexity and density, that in turn reflect Christov-Bakargiev’s reputation for being an artists curator, as well as her ideas about commitment to ideas and practices.

Various artists, The Brain, Photo: Roman März

The effect of these elements increases as the viewing accumulates. With the incorporation of science and other biological elements, the body is not divorced from thought, rather it is shown to be one in the same or at least party to each other. The pastoral tone of documenta helps put you in touch with both the undertones of the past as well as the possible and impossible. In an exhaustive yet excellent manner, as a viewer you are sent far afield to see and feel and think as you move through space, especially in the Karlsaue where Christov-Bakargiev made beautiful use of the landscape—reviving it as a place of contemplation and discovery. Importantly, it is in the Karlsaue, which is landscaped according to an alignment of the planets, that one begins to recognize the way bodies, both material and human, relate in space.

Tue Greenfort, The Worldly House, 2012, An Archive Inspired by Donna Haraway’s Writings on Multispecies’ Co-Evolution, Compiled and Presented by Tue Greenfort, Commissioned and produced by dOCUMENTA (13) Photo: Nils Klinger

From the amazing Janet Cardiff and George Bures’s for a thousand years placed in the woods; to Massimo Bartolini’s simple but hypnotic Untitled (Wave); to Huyghe’s beautiful danger called Untilled; to Anna Marie Maiolino’s crazy and physical Being, Making, Thinking: Encounters in Art as Life; to The Worldly House… “News from Nowhere” with its fantastic setting and storehouse of ideas; to AND AND AND’s overall presence and permutations in the Karlsaue, all these and more bring together the topographical connections embedded or emplaced, as Christov-Bakargiev calls it, in the breadth of the exhibit.

Gunnar Richter, Dealing with the Era of National Socialism—A Regional Study of a Crime in the Final Phase of World War II. Methods of Researching, 1981/2012, Audio slide show, 100 slides, 35 min. Photo: Nils Klinger

One work that struck me as basic to the exhibit was Gunnar Richter’s audio slide show Dealing with the Era of National Socialism (1981),which shows how easily the horrors of war can be elided, and the necessary diligence it takes to reveal them, through systematic research, evidence about how the twelfth century Breitenau Monastery in Guxhausen was transformed over the centuries from a place of worship for Benedictine monks into a concentration camp during World War II and how all traces of its existence were scrubbed from both the public record and the local memory. Moreover, works such as Richter’s in the exhibit as a totality are not discrete. A specific link can be seen between Richter’s work and the three-channel film installation Muster (Rushes) (2012) by Clemens von Wedemeyer, housed in the Hauptbahnhof, where in fact Jews and degenerates were carted off to Breitenau. But that is not the main connection here. The films show three narrative perspectives of what Breitenau was and is: just after the German’s surrendered and the Allied forces arrived on the scene; its days as a reformatory for school girls in the 1970s; and today, as a group of disaffected youth are given a tour of its atrocities. While the intersections between these two works are obvious, there are just as many who are connected on similar terms that are not so clear. Clemens von Wedemeyer, Muster (Rushes), 2012, 3-channel synchronized HD film installation, color, sound, 3 screens: 280 x 500 cm, 3 x 27 min., Photo: Henrik StrombergBut, more than any other works these showed Christov-Bakargiev‘s investment in critically investigating the institution’s history and meaning without abandoning it as something useless and only contemptuous. Through works like Richter’s and von Wedemeyer’s documenta as an institution is shown to be larger than the exhibit, adding to the idea that investigation is useful, knowledge is power and that history and the future are linked.

The Book of Books, the supporting text of dOCUMENTA(13), is introduced by Christov-Bakargiev with a story about a proposed project to move a meteor from Argentina to Kassel. The point of this anecdote is to illustrate that things as well as people have perspectives and places. This idea is essential to dOCUMENTA(13), as is the fact that each work in the exhibit is site-specific to one degree or another. My sense, moving about, was of being a flâneur, seeing my reflection and refraction in everything I observed and likewise being defined by that which I considered. This was the first time I attended when I wasn’t in a group or on duty, so it was to be an art vacation, which was at times nicely reaffirmed by the small houses scattered throughout the park, like resort town by a lake. But a vacation it was not. However enriching an experience like documenta is, it is in a sense a trauma to consider so much at such an intense pace. I begin to think it is that strain, the sense of being pulled apart by ideas and images, balanced by wonder, that in the end is the point of this incarnation of documenta. But really when all is said and done if there is a way to summarize documenta it escapes me. I do know that as it was each time I’ve gone it’s given me a lot to think about and consider, not only about the work I saw, but about my own taste and proclivities; likes and dislikes, standards and sensibilities. The most impressive aspect of the show is the amount of transparency the curator provided into her thoughts and planning for the exhibit. Actually seeing her schematics was inspiring in and of itself, showing that something like this, so grand and comprehensive, is no less mysterious or magical because we get to see into the process.

Julia Mar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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