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

Julia Marsh: 당신의 연구와 전시기획 대부분이 대안공간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한국에서 이런 공간들은 문화의 플랫폼으로서 어떻게 정의되고 활성화 되어 있는가?

Kim Heejin/김희진 photo: sitecited.com

김희진 photo: sitecited

김희진: 한국 사회 전반, 그나마 문화를 가끔 향유하는 중산층 이상의 대중에게는 그저 “실험적이고 비상업적인” 작업을 하는 국내 신진작가들의 등용문 전시장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아직 문화 향유는 월중 행사 정도인 극장 영화관람이나 년중 행사인 비싼 공연예술관람, 뮤지컬 관람, 어쩌다 연극 관람 정도로 밖에 파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한국 대중의 문화적 수준이라기 보다는 절대적인 문화 경험과 시간 부족, 그리고 현실의 현안 해결에 급급할 수 밖에 없는 사회 현실 탓이다.  “문화 예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식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소비재”거나 “오락물,” “감상 대상” 정도로라도 문화 예술에 신경을 써주는 대중이 있다면 감사할 현실 아닌가.

단, 문화 예술계 혹은 유사동종 업계, 인근 학계의 전문 지식층들은 “대안공간”들의 존재와 중요성은 알고 있다. 미술이라는 전문 분야의 역할 진화와 다양한 전술까지를 모두 알 필요는 없기에 이것 만이라도 큰 수확이다. 대안 미술공간들의 “존재”는 독립영화, 인디 음악과 같이 “총체적 대안문화”로 알려졌을 것이고, 그 가치는 “실험”, “젊음”, “꿈”, “역동성” 등 다분히 피상적이고 낭만적인 리버럴리즘의 장 정도로 보기를 원하는 듯 하다. 반제도, 비주류적인 “자율성”, 반소비주의적인 “비판과 담론”, 후기 식민주의에 기초한  “주체성” 등의 문화정치학적인 가치는 피곤해 한다.

물론 대안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전문가, 지식인, 소위 문화애호가들의 이 정도 인식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계몽의 문제라기 보다, 각 공간들이 특성과 관점을 부각시키면서 경험하도록 해야할 것이라 본다. 특성이 두드러진 공간은 지형에서 바로 차별화되어 기억되고, 각자에 어울리는 관객과 후원자, 협력 파트너를 만나면 된다. 대안공간들은 법인체로서 준 공공 semi-public이거나 개인사업자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민주적으로 폭넓은 관객층과 공적 책임 따위의 프레임에서 이해될 수 없다.

JM: 한국에서 이러한 공간들의 존재가 갖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가들은 이런 공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희진:한국 사회는 피상적으로 매우 역동적이고 조직화된 듯 보여도 실은 그 구성이 단순하고 작동을 결정하는 변수가 충분히 예측 가능할 정도로 제도화된 사회이다. 반공 국가안보, 경제성장, 민족주의, 유교, 군국주의, 재력, 인맥/학력 등 몇 가지 요소들의 조합이 주류, 제도권, 기득권의 경계를 결정한다. 시대에 따라 그 경계가 강화되어 경계 안팎의 관계가 경색, 상호 소외되거나 아니면 조금 느슨해지거나 할 뿐이지 혁신적인 사회구조 변화가 오지 않고 있다. 서구 미술계에서 한국의 대안미술공간을 볼 때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역맥락이다. 절대 자유주의 만을 함의하지 않는다. 지역의 생활 현실이 현실 정치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미술에서 “대안”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미  현실적으로 소수의 위치에  놓이며 그래서 당연히 현실 정치에 대한 예민함을 지니고 정치적 운영을 구사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첫 번째 특성은 지역맥락상 당연히 비영리 대안 미술공간들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문화정치적인 포지션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특성은 바로 이 “소수적 위치”에 대한 역시 지역 맥락적인 이해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류, 제도권, 기득권이라는 세력 자체는 실상 매우 노쇠한 가치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그 존재는 다수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소수에 독점되어 있다. 정서적인 다수는 더더욱 못 된다. 그래서 소수인 대안에 동의하고 응원하는 이들은 많다. 그렇다면 “소수”라는 타자적 위치를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결국 관건이 된다. 한국의 근현대역사는 누구의 어떤 의견이건 “소수의 위치”에 대해 각박했다. 없애야 내가 사는 대상이었다. 공포와 연좌제의 대상이었다. 이 집단적 공포 때문에 감히 “소수적 위치”가 되길 주저한다. 자기가 종사하는 업계의 “소수적 위치”라는 현실에 개입하느냐 마느냐 하는 각자의 선택이다.

내가 일하는 공간 “아트 스페이스 풀”(전 대안공간 풀)에 대한 작가들의 인식은 따라서 각 시대현실에서 개인이 지녔던 사회, 정치, 대안, 소수에 대한 인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다만 이 공간이 사회에서 미술인이라는 소수자의 위치, 미술인들 중에서 현실에 참여적인 태도를 지닌 소수자의 위치에 충실했었다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었다. 즉, 구체적인 작업 방법론의 차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태도, 그 위치를 감행할 의지가 있는 작가들이 찾는 공간이었다. 일반적으로 대안공간들이 작가로서 소위 “대세”나 “다수”에 대한 이러한 태도의 차별화, 간단히 말해 “개념 있는 작가”라는 포지션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공간들로 위치되어는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불합리한 전시 관행이나 소비주의에 종속된 미술시장, 시장기회주의적인 작품생산, 소통이 없는 소모적 도구화에 불만을 품은 안티테제를 다루고픈 작가들에게는 절대적인 등용문이 된다.

JM: 한국에서 벌어지는 전시와 예술작업의 이념적 면모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가?

김희진:어떤 이념적 면모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정치적 이념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일단 “생각”이 전혀 다른 작가들은 생각이 전혀 사람끼리 친구가 되기 힘들 듯이 평소 만날 기회가 없다. 혹여 정치적 이념이 확고한 작가라 해도 미술작업 자체는 작가가 지닌 다양한 이념들의 종합 과정에서 생겨나기에 작업 = 이념이 될 수 없다.

전시는 작가와 기획자의 이러한 유기적 융합에 더해 제도, 예산, 공간, 시간, 사람, 비가시적 기운과 같은 무수한 조건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이 만들어진 다음에도 “전시 경험”은 또 다른 변수들의 영향으로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

JM: 지난 10에서 15년간 한국과 국제 예술계간의 상호작용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는가?

김희진:당연히 그 수는 증가했고 방법도 다양해졌다. 소위 수평적인 관계와 균등한 협업 조건도 많이 개선되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계량적, 가시적 지수 이면의 상호 인식 문제인데, 예컨대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적 태도는 일소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 문제는 오히려 매체들이 더 심하다. 외국의 어느 시골 어디서 한 전시에 호들갑을 떨거나 겉만 번지르르했지 도대체 감응이 없는 전시, 해외 진출 따위로 작가 성장을 메기는 매체들이 사대주의의 깊은 뿌리 뿐 아니라 숨가쁜 재생산을 조장하는 것을 보면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북미나 유럽 경제가 모두 흔들린 판국에 사대주의 본질은 이미 부실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사대주의는 천박한 짝퉁 외국 병이나 억감정에서 기인한 역 오리엔탈리즘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 제일 나쁜 것은 무수한 주변 지역들에 대한 식민주의적 시선이다. 항상 인식태도가 관건이다.

JM: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예술가들이 직면하는 문제점들은 어떤 것인가?

김희진: 시장과 제도를 다루는 운영법이다. 여기서 “제도”는 공공 제도뿐 아니라 기획, 비평, 유통 전반에 걸친 광의의 제도를 포함한다.  작가들은 작업과 작품 생산 과정에 연루된 사회 운영에는 탁월한데, 정작 미술의 무수한 제도들을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노하우가 부족하다. 항상 미술교육 커리큘럼의 후진성, 작가들의 폭넓은 사회경험 부족 등 비슷한 이유가 지적되는데, 나는 “제도” 환경 자체가 90년대 이후 거의 맨땅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제도들 자체가 비전문적이고 악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가들이 제도를 경험한다고 해서 배울게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없는 사회에서 얼렁뚱땅 실패하면서 정법과 편법이 난무한다. 작가들을 나무랄 수 없는 얘기다.

또 하나는 위에서 말한 대로 한국 밖에 대해 주체성과 존중, 경쟁과 상생이 균형 잡힌 동등한 플레이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 문제는 그 다음에 따라온다.

JM: 글로벌리즘이 한국의 예술작업 범위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 예술가들이 이런 역학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는가?

김희진:참조 대상은 많이 되고 있지만, 아직 동등한 플레이그라운드라는 체감도는 떨어진다. 이 부분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매체, 정치권 등 현실 사회정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적어도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대 글로벌 인식은 경직되었다고 느껴진다. 항상 불평하는 바인데, 나라가 대외적으로 보여주기용 거짓말을 일삼는데 어떻게 국민들에게 글로벌리즘이 편안하게 체감될 수 있겠는가. 서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다. 외국 가서 전시하면 글로벌인가? 한국에 와있는 외국 작가들하고 밥 먹으면 글로벌인가? 한국에 와서 몇 년째 체류하며 작업하는 외국 작가들이 있지만 로컬 씬하고 관계 형성이 잘 안 되는 거다. 기획씬이나 개별 작가들의 작업, 하물며 미술판 자체의 향방에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제도적 장치로 글로벌 게이트를 열어 놓은 것은 좋으나, 이제 글로벌 척도는 더 이상 수치가 아닌 질적 단계로 전개되어야 한다.  전문 번역인, 하다 못해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코디네이터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미술작업에 글로벌리즘이 영향을 끼칠 것을 기대하겠는가.

JM: 이전 인터뷰에서 당신은 1980년대의 민중운동과 함께 했던 ‘두렁’ 운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당시의 예술작업과 지금에 있어 이런 운동들이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가?

둘 사이의 차이에 대해, 보다 당신의 관심사인 두렁을 방법론적으로 활용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김희진: 과거 80년대와 현재 시점의 미술에 두렁이 끼친 영향을 정의할 수 있는 프레임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두렁의 활동 양상이 이미 미술제도권 밖에서 움직였기에 미술계 내에 아카이브나 비평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한다해도 이들에 대한 미술계, 미술사학계의 견해는 여전히 분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렁의 방법론을 물으셨는데, 미술사에서 경이로와 할 만한 혁신적 형식 실험이나 전위적 시도는 없었는지 모른다. 내가 지닌 몇 개의 아카이브를 통해 보아도 그들의 방법론은 생활에서 떠오르는 온갖 방법들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나는 두렁을 통해 작가주의를 포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미술”이 아닌 사회운동인양 어정쩡하게 타협해 주는 한국 미술계의 편협한 카테고리와 위선 자체를 지적하고 싶다.  또 하나는 미술가-시민-노동자 간에 계층이 극명히 구분된 당대 현실에서 계층 인식을 넘어 문화가 함직한  현실 개혁 일꾼,  씻김과 소통의 제사장 같은 롤 모델을 제시했었다는 점을 존경한다. 미술가라는 자의식과 싸웠고, 작법이라는 스타일에 초연했으며, 시민, 노동자라는 위치에서 당시 그들 주변의 대중에 소통하는 실질적 방안을 시도하고 이론을 세우려 했었다. 민중미술은 이미 하나의 작법이나 하나의 소집단이 아닌 미술에서 민주화를 향해가는 여러 작가들의 총체적인 움직임이었다. 따라서 카테고리로 보면 두렁은 민중미술운동에 속한다. 내 생각에 두렁은 민중미술 중에서도 가장 주변부, 외곽, 낮은 곳,  보이지 않는 생활 일선에서 펼쳐진 움직임이다. 사실주의 계열 중에서 가장 현실주의적이랄까? 당연히 여러 사실주의적 성향의 작가들에게 두렁은 이미 아름답고 경의로운 운동이었다. 그것을 어찌 미술적 성과 만으로 평가하는가.

21세기 현재 문화예술인들의 “일”과 “생활”은 여전히 비참하고, 사회 전반에는 커녕 노동계에서 조차 이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일과 생활 그라운드에서 고민했던 두렁이 참조 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일과 생활이라는 작업의 “현실”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방법론과 전술, 조직적 전개 태도는 달라고 두렁이 왜 귀하게 여겨지지 않겠는가.

JM: 지난 인터뷰에서 POOL이 지역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양자간에 있어 POOL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는가?

김희진: 이번 <군산 리포트 : 생존과 환타지를 운영하는 사람들>(www.altpool.org 참고)의 기획문에 기술했듯이 풀은 이미 <지역 연구와 미술> 시리즈를 90년대부터 지속하여 왔다. 지리적인 영토 범위로 말하면 좋아들 하니까 그 방법을 써서 말하면 시리즈는 이른바 성남부터 중동, 발칸, 카이로로 이어졌다가 다시 군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단 조사, 연구 기반의 장소 특화적 공공 프로젝트이기에 체계적 계획 없이 조건이 될 때마다 한다. 왜 하는가의 이유는 간단하며 나는 이 지점에서 매우 현실적이다. 개인이 자신을 실존적으로 성찰하고 확장하기 위함이 가장 이기적인 이유이며, 다음은 타인을 만나고 배우기 위해, 즉 소외를 넘어선 말걸기를 익히기 위해, 다음은 각자가 사는 곳과 다른 지역의 공간 이론을 통해 다중적 세계관을 만들어가기 위해 한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 어떤 성과를 보는가 묻는 질문은 미술가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유, 표현, 성찰, 비젼의 기여를 약소하다 여기는 인식에서 나온다. 지역 주민들의 문제는 해당 지역 정치인들과 주민들이 풀어가야 할 문제이다. 작가는 정치인이고 주민이고 간에 지역에 있는 이들의 사회현실과 역사, 정서에 감응하고 표현해 서로 더 잘 보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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