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너무 무거운, 김윤서

바위에 새긴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으로부터 율법과 계명이 새겨진 돌판 두짝을 내려받았다.(1) 대대손손에게 보여지고 지켜져야 할 계명이라면 나무나 흙바닥이 아닌 바위여야 할 것이다. 바위에 새긴 글은 영원불변하는 진리이거나, 진리에 가깝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바위에 새겨진 글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작대기 하나만 더하기도, 다시 고쳐쓰기도 어렵다. 껌종이나 담뱃곽 위에 쓰느냐, 바위에 새기느냐는 쓰여질 그 내용의 무게를 대변한다.

강요된 보기1: 금강산

Engraved Rock, Mt. Kumgang, North Korea, 2012

최근 금강산의 바위 소식을 전해들었다. 2012년 4월 북한이 박연 폭포 주변의 바위에 “영원한 우리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글귀를 새겼다는 내용이다.(2) 신문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이 문장의 총길이는 37m, 글자 개당 높이는 5m, 가로2.9m, 깊이 0.45m이다. 마지막 글자 ‘지’의 모음 ‘ㅣ’에 사람 한명쯤은 쏙 파묻힐 수 있을 크기다. 북한은 경치가 뛰어나거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조선아 자랑하자 5천년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수령으로 모시었던 영광을” 과 같은 문구를 새겨 넣는 글발사업을 1970년부터 진행해왔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강요된 보기2: 서울대전대구부산

Engraved Rock, Seoul, South Korea, 2007

서울시내 곳곳에는 “바르게 살자”는 문장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면 이 바위는 서울 시내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위 뒷면에는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문장이 덤으로 새겨져 있다.(3) 이 커다란 돌덩이는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가 1999년부터 전국적으로 진행해온 사업의 결과물이다. 행정안전부 산하 관변단체인 이들은 전국 8도 기관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으로 현재까지 전국에 300여개 이상의 ‘바르게 살자’ 표석을 세웠으며 1천개를 설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4)

“바르게 살자” 일상생활에서 시민을 ‘계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청유형이지만, 묵직한 검정색 서체가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전달되는 방식은 지키고 따라야할 법규와 같다. 이토록 압도적이고 일방적으로 다가오는 텍스트를 전국 8도 거리마다 종종 마주치게 되는 일은 시력을 가진 보행자로서는 피로하고, 때로는 무서운 일이다. 보행자 그 누구도 강요된 보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2년 서울 어딘가에서 지금도 이러한 표석이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꽤 초현실적이다.

바위로 바위치기: ?

Michael Asher, Engraved Rock, Daejeon, South Korea, 1993

미국의 개념미술가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b. 1943)(5)는 한국에 왔다가 ‘바르게 살자’ 표석과 비슷한 돌덩어리를 하나 세워놓고 떠났다. 좀처럼 물리적인 실체로 남는 작업을 하지 않는 애셔의 영구 작업이 대전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그의 프로젝트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던 나로서는 신나는 발견이었다.(6)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93년 과학도시 대전에서 열린 ‘대전엑스포’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과학 행사 중 한켠에서는 이를 경축하기 위해 ≪미래 저편에Future Lies Ahead≫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렸다. 전시를 기획한 퐁튀스 훌텐(Pontus Hulten)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초대된 35명의 작가들이 실내 전시와 조각공원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를 진행했고, 애셔는 조각공원 설치 부분에 참여했다. 이때 그가 조각공원 조성을 위해 한 작업이라는 것이 한국인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표석을 세운 것이다. 그가 바위에 한국어로 새겨놓은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이곳저곳에 설치된 건축-구조물들의 나열이 관람객인 우리들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의 정당화와 권력의 표상 사이를 오고가는 우리들로부터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입니까?”(7)

지난해 여름 이 바위를 보기 위해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을 찾았다. ‘조각공원 조성’이라는 당시 전시 목적에 충실하게 무대처럼 틀지워진 조각공원 안에서 대형조각들은 작품명과 작가명을 달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애셔의 작업은 그곳에 없었다. 대신 조각공원으로 향하는 인도 곁에 특별할 것 없는 바위로 세워져 있었다. 또한, 조각공원에 설치된 조각들과는 달리 애셔가 설치한 바위 앞에는 작가와 작품 제목을 알리는 그 어떤 표식도 없었다. (실제로 애셔의 모든 작업들은 제목이랄 것이 없다.) 애셔는 바위가 놓일 장소로 ‘조각공원’보다는 그저 방문자들의 여러 동선 중 조각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을 택했다. 텍스트가 새겨진 바위와 이를 받치는 바위 두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자체 또한 검정색 명조체를 사용했다. 놓인 자리와 바위의 생김만 보더라도 전형적인 표석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결국, 애셔의 작업은 ‘예술작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바위에 새겨진 내용만 조금 생소할 뿐.

애셔는 1993년 대전을 방문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곳곳에 설치된 ‘바르게 살자’와 같은 표석을 몇차례 마주했을 것이다. 실제로 엑스포 과학공원을 향하는 길목에만 해도 이곳이 ‘대덕연구단지’임을 알리는 기념바위가 서있다. 동네 초입이나 건물 건축을 기념하는 한국 곳곳에 설치된 표석은 보는 이들에게 발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한국인에게 특별할 것 없는 기념바위에 애셔가 발신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국어로 새겨 넣은 이 작업은 몇가지 재미있는 지점을 안고있다.

애셔가 스펙터클한 대형 조각으로 공공장소를 작가 개인 또는 도시의 상징적 장소로 식민화해온 공공조각의 관례를 유머러스하게 비판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업 역시 그가 해온 작업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는 ‘바르게 살자’ 바위와 다를 것 없는 대형 기념비의 형태를 그대로 빌어와 텍스트만 교체함으로써, 바위로 바위를 치는 전술을 펼쳤다. 이 표석은 그의 여느 작업과 마찬가지로 한눈에 작품으로 인식되지 않을 뿐더러, ‘애셔’라는 작가의 이름 보다 텍스트를 전달하는 발신장치로서의 본디 기능이 우선한다. 그런 면에서, 바위 그 자체 보다는 바위가 세워진 일상적인 장소와 상황 안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요구되는 시선과 보는 행위로써 유발되는 ‘각성’ 에 방점이 찍힌다. 정보 주입으로서의 문장이 아닌, 물음표로 끝나는 텍스트를 새김으로써 보행자의 수동성에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요컨대, 애셔의 작업은 일상생활과 자연스러움 속에 똬리를 틀고있는 지배의 도구를 비판하고 의문을 던진다. 이로써 개인의 삶 속에서 사라진 긴장관계를 생성하고자 한다. 그가 만들어내고자 한 것은 엄청난 대안이나 확실한 해결책이 아니라 개개인의 ‘태도’다. 애셔 작업의 급진적 성격은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담론 차원에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지역주민들이 이 표석을 통해 공공조각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넘쳐나는 장치들에 대해 물음을 가져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원하는 바를 이룬 것일테다.

김윤서 (예술학,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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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애굽기 24: 12

2)   2012년 4월 6일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박연폭포의 글발에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의지가 어려있다”면서 “김일성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려는 천군만민의 불변의 신념을 담아 새겼다”고 전한다.

3)   이를 받치고 있는 또다른 바위에는 이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공헌한 서른명 남짓한 이름 목록이 빽빽하게 새겨져있다.

4)   국회 예산정책처의 ‘회계연도 결산부처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는 행정안전부로부터 공익사업 명목으로 2010년 1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으며, 2011년에는 2010년보다 50% 증가한 15억원을 받았다. 행안부는 올해 예산에도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에10억원의 지원예산을 편성해놓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다른 비영리 민간단체나 많은 공익단체가 국고 보조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별도의 공모절차 없이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회와 같은 관변단체에만 연간 수십억원 규모를 교부하는 것은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5)   애셔가 원하든 원치않든 그는 개념미술가, 세부적으로는 1세대 제도비판미술가로 알려져 있다.

6)   1993년부터 대전엑스포 과학공원 내부에 있던 애셔의 표석은 2012년 2월 대전시립미술관 야외광장으로 옮겨졌다.

7)   한국어로 번역된 원문은 다음과 같다. “ASSUMING THAT THE ARRAY OF STRUCTURES WHICH CONSTITUTE THE IMMEDIATE SURROUNDINGS WERE DESIGNED FOR US SPECTATORS, IT ENABLES US TO ASK: WHO BENEFITS FROM OUR NAVIGATING BETWEEN DISPLAYS OF CORPORATE LEGITIMATION AND REPRESENTATIONS OF POWER?” Andrea Fraser, “Procedural Matters: The Art of Michael Asher”, Artforum (Summer 2008), p. 464 (fn.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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