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은

Julia Marsh: 이번 가을에 당신은 서울로 돌아와 동대문 인근 황학동의 한 빌딩에서 사운드 퍼포먼스 작업을 하게 된다. 당신이 문래 예술 공장에서 보여주었던 사운드 설치작업 Room 402와 비슷한 작업이 될 것인가?

김영은: 비슷하면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Room 402가 드라마틱하게 짜여진 소음의 내용을 통해 관객이 있는 공간 너머의 보이지 않는 환경을 각성하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좀 더 공간의 물리적인 요소와 그에 따른 소리에 촛점을 맞추었다. 지난번 작업에서 여러 대의 스피커를 사용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실제 소리를 내는 퍼포머와 함께 한다는 점도 다르다. 보이지 않는 공간을 음향적으로 드러내보려 한다는 점에서는 이전 작업과 비슷하다.

JM: 사운드 아티스트로서, 당신은 공간이라는 물적 제약 속에서 순간적인 재료를 다룬다. 많은 설치작업들이 이러한 이분법을 지니고 있다. 사운드아트와 설치미술 사이에 실제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영은: 사실 스스로를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웬지 모르게 너무 기술적인 용어로 들려서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나를 볼 때에, 작업의 내용이 대부분 소리와 관련된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고 최종 결과물의 형태도 소리가 중심이 될 때에 내가 가장 즐겁고 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소리를 다루면서 또 한번 매력을 느꼈던 점은, 사운드 아트는 꼭 실재 공간에서 전시를 하지 않아도 성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소리라는 매체의 특성이 본래 공간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들 중 소리를 공간화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어왔고 반대로 공간을 소리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결과물의 발표를 위해 실재 공간이 필요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3차원 공간을 벗어날 수도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설치 미술은 어떤 현장을 작품화하거나 어떤 작품을 현장화하는 법칙을 따라서 실재 공간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지만 사운드 작업은 결과물의 전시가 헤드폰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소리는 사운드 파일과 같은 비공간적이고 시간적인 그리고 헤드폰과 같이 직접 신체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도구를 통해 듣게 될 때 오히려 더 강렬하게 각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이나 기억, 개념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촉각적으로 소장 가능한 형태의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JM: 사운드아트는 이미지, 나아가 레코딩과 같은 지배적인 문화 소비의 형식에 저항적인 경우가 많다. 당신은 외부에 존재하며 제도권으로의 진입에 저항하는 특성을 가진 작업을 만드는 것인데, 이를 전형적인 전시 경험을 교란하려는 시도로 보아도 되겠는가?

김영은: 나의 의도라기 보다는 소리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생기는 것 같다. 작업을 할 때에는 작업의 내용에 따른 형식을 생각할 뿐이고, 저항이나 교란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몇 번의 전시나 프리젠테이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전시장 안에서의 소리나 기록된 소리 앞에서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반응은 종종 나에게 공격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기도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러한 대화법이 당황스럽다. 내 작업에 반항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계산되지 않은 나도 모르는 반항이다.

JM: 당신이 판단하기에 사운드 아트와 그것의 감상에 있어 이상적인 환경은 무엇인가? 또한, 전시와 기록에 있어 당신의 작업은 어떤 도전을 제기하는가?

김영은: 사운드 아트가 성립되는 조건들을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전시장에서의 그룹전이라면 개개의 작업이 개별적으로 잘 들릴만한 충분한 공간과 벽이 확보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소리는 뒤로 돌아서거나 옆 칸으로 건너가도 여전히 들리므로 불필요한 소리가 차단된 상황이 전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생각보다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다.

현대미술전시에 참여한 사운드 작업의 설치된 상황을 보면 때때로 작업의 물성 면에서는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사운드 작업들로만 이루어진 전시에 가보면 한 공간 안에서 개별적인 물성의 구현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아예 소리를 뒤섞어 버리는 연출 때문에 기획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종종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사례들도 있었다.

이상적인 환경은 앞서 말한 공간적 조건과 전시를 만드는 이의 균형감이 만날 때 생겨나는 것 같다.

작업의 기록에 있어서는 많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처럼 기록을 아예 안하지도 않고, 완벽한 기술로 실제에 가까운 청취의 기록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 특별한 녹음 장비를 쓰기도 하나 기본적으로는 작업의 컨셉과 내용을 전달할 수 있고 현장감을 맛 볼 수 있을 정도로만 짧게 기록한다. 앞으로 계속 생각하고 보완해야 할 문제이다.

JM: 사운드아트는 종종 한국 미술계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사운드아트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 이외의 장소에서 사운드아트가 차지하는 위상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김영은: 소리에 대한 예술을 다루는 한국어로 쓰여지거나 번역된 책과 관련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에 차지하는 위상이랄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자생적으로 소리를 다루는 작가와 음악가, 관심을 갖는 기획자가 있어서 드물게라도 전시와 공연이 열리는 것 같다. 나는 한국의 사운드 아트가 아무런 기반 없이 스스로 생겨나고 이제까지 왔다는 점을 중요하게 본다.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사운드 아트가 차지하는 위상도 그리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운드 아트는 소수의 1세대 작가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가 짧다. 더 많은 시도와 시간이 필요한 분야이다. 하지만 영어권이나 독어권에는 출판작업이나 관련 기관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고 전문 전시장이나 기획자, 비평가가 있을 정도로 논의가 좀 더 일반화 되어 있다. 누구나 아는 레퍼런스가 있어 일단 언제든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분위기는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차이점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JM:사운드아트는 주류 문화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재료를 얻거나 유관기관으로부터 협조를 얻는데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과 그 외의 장소에서 사운드아트가 더 잘 받아들여지기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영은: 한국의 경우라면 우선 이것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학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각 문화의 역사를 다루고 사운드 아트의 중요한 작업을 개괄하는 수업이 있어야 한다. 학교라는 곳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에 있어서 필요한 절차라고 본다.

또한 예술지원기관들이 제공하는 문서상의 카테고리에 ‘소리’ 혹은 ‘사운드아트’라는 명칭이 표기되어야 한다. 기관에서 프로덕션 비용을 제공하면서도 이를 독립된 장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금을 받는 입장에서 작업을 진행하면서 지원기관과의 크고 작은 마찰을 피할 수 없다.

한국 이외의 장소에서는 관련 제도를 내가 직접 몸으로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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