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Taeyoon

Kim Taeyoon received his BFA from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n Film, Video, New Media. His first solo show opened at One and J. Gallery on October 17, 2014. He has been included in group shows at One And J. Gallery, Seoul (2014 and 2013), Salon de H, Seoul (2014), Space 15th, Seoul (2011) Seoul Art Cinema, Space Cell (2006), Gallery Busker, Chicago (2006), Rodan, Chicago (2006) and Enemy Gallery, Chicago (2006).

I first met Kim Taeyoon in 2007 when he was at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n the following years his work was focused on commercial projects and innovative and new uses of video and media technology. We became reacquainted in 2009 through mutual friends and have since become good friends. Following his development as a media artist I realized that Kim is doing something beyond just making videos, that his work taps into the dominance of media and it’s role in our lives by transforming it into representations that show the ebb and flow of data used and forgotten. On the surface this density of information and data, however obscured, are playful, and engaging, even hypnotic images. Like our experience as users of the Internet and media Kim’s works draw upon what is not visible. They act as commentary on the disconnection between information programming and user experience, and the indirection of contemporary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Although digital there is a sense of analog urge for connection within his works especially ones like Chit Chat (2012 and 2013) where the work is based on social media.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Kim Taeyoon and I had in June 2014.

Julia Marsh: As a student I understand you started working in narrative film and video. Your work now is almost entirely non-linear constructions in digital media. Can you describe the process or intentions by which you made this shift?

Kim Taeyoon: I wanted to simplify my working process. Rather than piling up my thoughts and present them altogether, I wanted to work spontaneously as they came. For me, (narrative) films were too complex in the process, at that time. But the influence of time is deeply rooted in me and I intend to use it in my work.

JM: You use fairly complicated algorithms that result in relatively simple shapes and hypnotic patterning. I see a relationship between the labor used, and trance music culture. Is there some spiritual connections between the work and the results? Or is it in the work alone?

KTY: I wanted show movement, in which the boundary of the start and the end are soft, as something constantly goes round and round. I have been looking for something like a movement, which we can just see purely without the expectation on the ending with the estimation of what will show up next, so that this led me to use algorithm. As well as I began wanting to simplify the shape/figure to emphasize the movement. Actually, the algorithm is not that complicated. Many parts of my work are influenced by the electronic music and sampling culture. Music culture takes a big part of me.

JM: Each of the pieces from 2013 seems to employ color and pattern akin to Minimalism or Color Field Painting. Would it be accurate to say that despite your practice being digitally generated that you think like a painter?

KTY: For some of my works, I plan a sort of system, in which the software actually draws the picture. Most of them have a structure that randomly generates a simple movement. I wanted to show elements like a certain motion, rhythm, and cut and dissolve in film, as a temporal image without narrative. I do not think myself as a painter, but I am under the influence, hugely, by painters.

JM: Your work Chit Chat (2012/2013) taps into social media and our usage of the same, while other works tap into the patterns of data produced on the Internet. What was the inspiration for Chit Chat and do you think that since making that piece social media has changed?

KTY: The reason I chose to use social media in my work is not to present the recorded objects, but to show the things that are presently captured, the data, which is generated in real time. The data can be many repetitive movements with the blurred edge of beginning and ending, as well as temporal images. The two words that are used in Chit Chat, in 2012, love and hate, were used so frequently in 2014 that the computer could not display the effect, on screen, in real time. The users and traffic increased that much. I am also now accessing more often, than at that time.

JM: One aspect of your work is that you interface with what is going on around you very easily; making use of the Internet and sources like Twitter for generating your images. What are you responding to in your environment?

KTY: I spend a major amount of time each day looking at the laptop screen. I do my work with the computer, receive information through the Internet and communicate with people through social media. And then a day just passes by. Naturally, the line between reality and virtual reality is ambiguous. I feel virtual reality has become tangible now, and the reality is becoming more and more something elusive. I am thinking about the meaning of relative time, which is under the influence of the environment like this. I wonder about those effects, which are created by fast Internet speeds and the information that is always accessible, the illusions that show on the electronic signboards on the street, the rhythm of the neon light and the faster transportation. I contemplate on how we can adapt ourselves to the real space that is increasingly narrowed, and the territory of virtual reality that is more and more growing.

JM: You described your work as being the wrinkle, or fold in the surface of digital media, as something that disrupt the surface. Can you elaborate on this?

KTY: The texture of the screen is slick. In the present day, where the technology is more developed, the pixels in the screen are denser and the image becomes smoother. It may seem that the speed of technological progress is faster and everything becomes dense, but like most of the computers have some bugs and report errors, there are creases hiding in the microscopic level of the external slickness. Digital media has an exceeding advantage on finding and showing those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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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승

Julia Marsh: 처음 출발이 예술가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혹은 왜 예술가로 변모하게 된 것인가?

 장민승: 10대때 부터 지나치게 록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당시에 처음 결성한 록밴드에 멤버로 지금 함께 협업을 하고 있는 정재일을 기타리스트로 만났다. 당시의 우리 음악은 서양의 헤비메탈등의 록음악을 모방하는 커버 록밴드였다. 이후 정재일은 천재성을 인정받아 정규교육을 떼려치우고 프로뮤지션의 길로, 나는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진학 후 학교에서 별다른 신선함을 받을 수 없었다. 97년도였는데 홍대앞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뮤지션들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의 교류가 넘쳐났다. 그 시절 나는 인디록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약 1년간 전국의 각종 페스티발과 행사를 다녔고 간간히 정재일과 영화음악에 참여했다. 이후 98년 처음 간 런던여행에서 전자음악에 크게 심취하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심지어 홍대앞에서 클럽을 잠시 운영하기도 했었다. 이런 경험으로 서브컬쳐들을 온몸으로 세례 받으며 20대를 통과했다. 99년 군대를 가게 되었고 제대 후 스물 세살에 친분이 있던 음악분야의 대선배들과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당시는 한국영화의 황금기였기때문에 짧은 기간에 약 20여편의 장편상업영화의 프로듀서, 코디네이터로 영화필드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음악듣기와 상업적인 활동에서 받게되는 피로감이 몰려왔고 대안으로 전공과 유사한 가구만들기를 취미 삼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교육과정에서 미니멀아트에 심취해 있었고이를 방탕으로 한 디자인의 가구들을 정식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디자인과 제작을 병행하는 사람이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데뷔가 매우 순조로웠다. 당시만해도 가구제작자가 나의 천직이라고 여겨졌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테이블은 꾀나 인기가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공간을 엿볼 수 있게 되었고 스른즈음에서는 그 공간들에 놓인 사물이 지닌 여러 맥락들과 그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들을 비교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간혼 사물에 대한 편견이 지나치게 생기는 내 자신이 역겨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직업적 활동의 배경이 없었던 사람들은 비교와 편견 없이 사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가구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3년동안 주한대사관들의 집무실을 촬영하는 작업과 다양한 공간을 대형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 결과가 <A multi-culture> (2010 One and J. gallery)와 <수성십경 in between times>(2010 아트라운지 디방) 이다. 이 지점이 20대에 겪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들을 바탕으로한 나의 조형언어를 처음으로 발표한 전환점이다. 

JM: 당신의 작업은 아주 명확한 한계를 설정하려는 경향을 가지는데, Willing+Dealing은 예외적으로 그렇지 않다. 그러한 이유가 무엇인가?

 장민승: 정확히 지적한 것 같다. 나는 지나치게 형식미와 그것에서 오는 쾌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편이다. 내러티브가 물론 중요하지만 단 한장의 이미지나 음악 혹은 그것들이 지닌 형식미와 텍스츄어(디자인에서는 피니쉬)가 때론 내러티브를 능가하는 메세지를 준다고 믿어왔다. 그것들은 어찌모면 내가 어려서 부터 각분야의 메인필드를 직접 경험해 보고 거기서 보았던 테크닉과 협업방식을 습득해왔다고 본다. (‘상림’ 같은 경우는 이때의 경험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한 작업이었을것이란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비평가들은 나의 작업에 대해서 말하기를 가구를 만들던 사진을 찍던 뉴미디어를 다루는 작업을 하던 비교적 공통적으로 들어나게 되는 형미식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작업과정들은 대부분이 과잉으로 시작했다가 최소한의 것들만 남기기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보는이가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기를 바랬다. 일본 문학장르 중에 하이쿠(haiku)라는 매우 간결한 정형시가 있는데 그 간결함과 암시성 때문에 보는이 마다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즉 작업을 내 놓을때 마다 의견은 있지만 발언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다. 혹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형식의 틀에서 갖혀 있은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윌링앤딜링의 전시의 경우 전과는 달리 매우 유연하게… 그리고 별도로 전시를 위한 추가적인 생산을 하지 않고 내게 남겨진 발표되지 못한 잉여들(사진, 가구, 조각등등)을 편하게 벌려놓고, 조합해서 혼종적인 내 모습(작업)을 거칠게 한번 들어내 보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전시공간도 수직과 수평이 어긋나고 거친 곳을 선택했다. 특히 <가구팔자> 전시에서는 내가 10년 만에 발표한 TABLE 2도 함께 놓였는데 그 것이 나오기 까지의 일종의 리서치 작업의 결과인 <A Multi-Culture> , <수성십경 In between Times> 의 B-cut들이 함께 전시되었고 이 전시를 통해 내가 사물을 보는 방법이 전과는 매우 달라져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동안의 나의 작업이 큰 깨우침을 준 것을 그 전시를 통해 느꼈기에 일종의 지난 10년의 결산 회고전 처럼 느껴졌다.

JM: 당신은 사진 작업 외에도 장재일과의 협업을 통해 여러 사운드 작업 또한 진행해왔다. 이러한 종류의 미디어 작업은 최근 부쩍 지원을 받고 있고 여러 전시장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예를 들어 상림과 같은 프로젝트를 구현하는데 직면했던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가?

 장민승: ‘상림’을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직면하고 어려웠던 문제는 이작업의 형식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였다. 상림은 공공미술이 갖고 있는 일률적인 형식과 그것을 구축하는 관행의 문제점을 극복해 보고자 중앙기관관 지방기관이 전문가와 함께 힘을 모아 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시범사업이였다. 그리고 우리의 대상지인 경남 함양의 상림공원(상림숲)은 지명에서 알수 있듯이 공원인 동시에 숲이기도 하고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근린생활공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져다 놓아 경관을 훼손한 이 지역에 아무것도 놓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그리고 공공미술을 제안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내구성(영구성)도 없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공공미술 작업을 하자고 했을때 기존 방식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에 이 것을 설득해 나아가는 과정들이 초기에는 가장 어려웠던 지점이다.

JM: 상림과 문래, 그리고 제주도에서 작업한 세 개의 사운드 작품은 또한 장소특정적이라고도 불릴 법 하다. 당신은 장르 사이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모두 같은 것일 뿐인가?

 장민승: 장민승+정재일의 작업을 가끔 짧게 요약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사실 우리도 우리 작업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힘들고 굳이 무엇무엇이라거나 장르라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상림과 문래동 그리고 제주에서 했던 작업은 장소적 특성도 다르고 그 작업이 이뤄진 배경도 너무 다르며 때문에 이를 경험한 관객들도 다를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자율적으로 작업한 작업들과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커미션 작업들 사이에는 구별되는 지점이 있음을 최근에 느꼈다. 이 질문을 받고 연상하게 되는데 앞으로 계획되는 우리의 작업들은 전과는 구분되는 변화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민승+정재일의 작업을 어떤 장르로 구분하기 보다는 그냥 우리의 작업으로 기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먼 훗날 우리의 작업이 하나의 스타일이 아닌 장르가 되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그것이 미술이라고 인식되지 않았으면 한다.

JM: 각각의 당신 작업들은 주택이라든지 건설현장같은, 일종의 사회적 관심사가 밑에 깔려 있다. 당신의 최근작인 Willing + Dealing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장민승: 앞의 1.2. 질문의 대답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듯 하다. 예술가를 비롯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환경(도시, 사회)에과 관계 맺고 있을 것인데 일반사람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별견하고 발언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디자이너로서 이십대를 보내면서 발견한 나의 매우 서구화된 디자인 언어가 혼란스러웠고 그것을 해소하고자 하는 뜻에서 인류학자들이 필드워크를 나가듯 하는 뉴타운 지역을 비롯해 많은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에 이것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시작한 것들은 아니였고 하다보니 프로젝트가 된것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어쩌면 프로젝트가되어 전시했던 작업들 보다. 윌링앤딜링에서 선보인 이미지들은 정제되지 않은 것들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수도 있었겠다. 참고로 <가구팔자>는 상업적인 용도의 가구를 만들면서 남은 목재스크랩들, 사진과 조각의 B-cut 그리고 전시장 주변에서 주워온 가구파편이나 이미지들을 즉흥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 곳에 놓인 하나의 개별 설치들은 하나의 요소이며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큰 작업이였으면 했다.

JM: 당신은 상업적인 작업과 예술 창작 사이를 비교적 쉽게 오가는 것 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미술과 상업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민승: 미술가로서 많은 돈을 벌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술과 상업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좀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한국은 미술을 포함해 예술시장이 너무 작다고 생각된다. 이 것은 단지 예술품 거래가 규모가 작다는게 아니라 예술가가 예술분야와 상업적인 분야 구분하지 않고 용역비가 상대적으로 너무 작게 형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술가가 예술해서 먹고살기가 어려우니까 다른일을 해야되기 마련이라고 생각된다. 내 주변의 많은 뮤지션들 보면 대중음악 세션에서 부터 자신의 고유음악 활동까지 매우 다양하게 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작업습관을 잘 지켜내며 꾸준한 창작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내가 만난 많은 미술가들은 이렇게 되면 소위 떼가 묻는다고 부끄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의 경우 쉽게 오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나의 경우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악이 생계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생계가 되고나니 호기심이 디자인으로 옮겨갔다. 또 디자인이 생계가 되니 여기서 습득된 시각을 바탕으로 다소 늦게 미술을 하게되었다. 사실 지금은 미술작가가 직업이 되어 버렸고 그 일에 시간을 보내는게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 졌지만 다행인 것은 이 일은 전혀 나에게 생계가 되어주지 못한다. (특히 점점 비물질적이고 특정한 경험을 통해 소통하는 일시적인 작업에 매력을 느끼기에..) 때문에 이 일이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만약 이 것이 주요 수입원이 된다면 나는 분명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나와 애증의 관계인 상업영화, 대중음악, 디자인 분야는 미술보다는 훨씬 큰 자본과 신기술 그리고 훈련된 이성적인 사람들이 모인다. 나는 이 곳으로 부터 단순히 돈만 버는 것이 아닌 소재의 발견을 비롯해 누구나 가르쳐 주지 않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 서면으로는 질문을 방향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분량이나 적절한 대답이 아니라면 답변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재구성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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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Julia Marsh: 학생 때는 서사영화와 영상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신의 현재 작업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비선형적 구조를 띄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하게 된 계기나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김태윤: 작업을 하는 과정을 좀 단순화하고 싶었다. 생각을 쌓아놓고 모았다가 한번에 보여주는 방식보다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작업하길 원했다. 그때 나에게 (서사)영화는 너무 복잡한 과정들 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때의 영향이 깊게 박혀있고 그것을 작업에 활용하려고 한다.

JM: 당신은 몹시 복잡한 알고리즘을 이용하는데, 그 결과물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드러나거나 최면을 거는 듯한 무늬를 띈다. 나는 당신이 작업에 투여하는 노동이 트랜스음악 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작업과 결과물 사이에 어떤 정신적 연결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작업 그 자체일 뿐인가?

김태윤: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작과 끝의 경계가 아련한 것들. 계속 돌고 도는 무언가. 끝에 대한 기대없이 다음에 무언가가 나올거라는 예측없이 순수하게 바라볼수 있는 움직임 같은 것들을 찾다보니 알고리즘을 이용하게 되었고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모양/형태도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알고리즘 자체도 사실 그렇게 복잡한것은 아니다. 나의 많은 부분들은 전자음악 또는 샘플링 문화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음악문화는 나에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있다.

JM: 2013년도에 작업한 개별 작품들은 미니멀리즘이나 컬러 필드 페인팅과 흡사한 색채나 무늬를 채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당신이 디지털 연산을 통해 작업을 만들어내지만 스스로를 화가로 여긴다고 말해도 되겠는가?

김태윤: 나의 일부 작업들은 소프트웨어 자체가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시스템을 구상 한다. 대부분 단순한 움직임을 랜덤하게 생성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움직임이나 리듬 영화에서의 컷이나 디졸브 같은 요소들을 서사 없이 시간적 이미지로써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화가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화가들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색은 감정을 갖고있다고 생각한다.

JM: 당신의 작업 Chit Chat (2012/2013) 은 소셜 미디어와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들에 다가가는 한편, 다른 작업들은 인터넷에서 생산된 정보의 유형들을 활용한다. Chit Chat 작업에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이후 소셜 미디어가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김태윤: 소셜미디어를 작업에 사용 하기로 한건 녹화된 대상이 아닌 현재 포착되는 것들 로써의 데이터,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데이터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였다. 그것 또한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한 수많은 반복적 움직임들이고 시간적 이미지이다. 2012년에 chit chat 에 사용된 ‘love’와 ‘hate’ 두 단어를 2014년에는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화면에 보여줄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만큼 사용자와 트래픽이 늘어났다는 이야기 이다. 나도 그때 보다 지금 훨씬더 접속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JM: 당신 작업의 또다른 측면은, 당신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주 쉽게 접속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활용한다든지, 이미지를 생성하는데 트위터를 원료로 쓰는 것 처럼 말이다. 주어진 환경속에서 당신은 무엇에 응답하는 것인가?

김태윤: 나는 하루에 아주 많은 시간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지낸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받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지나간다. 자연스럽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고 있다. 가상은 이제 만질수 있는 것이 되었고 현실은 점점 더 만질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환경으로 부터 영향을 받는 상대적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빠른 인터넷속도와 언제든 접속 가능한 정보들, 거리의 전광판에 보여지는 환상들, 간판불빛의 리듬, 점점더 빨라지는 교통수단등이 어떤 영향을 만들고 있을까. 점점 좁아지는 현실적 공간과 점점 커지는 가상공간의 영역에서 어떤식으로 적응 해나갈수 있을까 생각한다.

JM:당신은 당신의 작업을 디지털 매체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나 접힌 면과 같은, 표면을 어지럽히는 어떤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말해줄 수 있겠는가?

김태윤: 스크린의 질감은 매끈하다. 기술이 발전된 요즘에는 스크린 속의 픽셀은 더 촘촘해지고 이미지는 더 매끄러워진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모든것이 촘촘해지는것 같지만 대부분의 컴퓨터들도 버그가 있고 에러가 나듯이 겉으로는 매끄러움에도 미세한곳에는 보이지 않는 주름들이 생기고 있다. 디지털 매체는 그런것들을 찾아내고 보여주는데 아주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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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 Min Seung

Jang Min Seung earned his BFA and MFA from Chung-ang University, in Seoul, South Korea. He has had solo exhibitions at Space Willing and Dealing, Seoul (2014), One and J. Gallery, Seoul (2012 and (2010), Art+Lounge Dibang, Seoul (2010), and Seomi & Tuus, Seoul(2008 and 2006). He has been included in group exhibitions at Seoul Museum of History, (2014), Kumho Museum, Seoul (2013), Gillman Barracks, Singapore, (2012), Culture Station 284 Seoul, (2012), Salon de H, Seoul, (2011), KIMUSA, Seoul (2009), Seoul Design Week, Fuorisalone, Milano, Italy (2007), Cais Gallery, Seoul (2006). In 2010 Jang was awarded a grant for Visual Arts by the Seoul Art and Culture Foundation, the SeMA Young Artist support program by the Seoul Museum of Art and a grant for Mullae Arts Plus by the Seoul Art and Culture Foundation. He was named the 2006 Korea Design Award: Young Product Designer of the Year.

Jang’s work is sometimes collaborative and other times not, however his work is generally sensitive and carefully constructed from observation of his subjects. Jang is one of a younger generation of artists that has experience that cuts across disciplines and does not adhere to the gallery as a main form of exhibition. I first became acquainted with Jang’s work when he showed large-scale photographs of windows in abandoned apartments titled In Between Times. These photographs of windows looking out onto nature are much like paintings of nature from an earlier age. Initially installed in an abandoned house, the buildings structure underscored the in between quality of their context. Jang’s background in design and music inform his work in photography, sculpture, and sound. His is a hybrid, one that developed as a natural outcropping of his interests. Jang is nothing if not thorough in his approach and attitude towards making. It is this drive that makes his works definitive.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Jang Min Seung and I had in June 2014.

Julia Marsh: I understand you did not start out as an artist. How or why did you make this transition?

Jang Min Seung: Since I was a teenager, I was deeply into rock music, and I when I formed my first rock band, I met my collaborator, Jung Jae Il, who was the band’s guitarist. Our music back then was just copying Western heavy metal and rock numbers. Sometime after, Jung was noticed for his brilliant music and quit school to take the path of a professional musician, while I became an art student at a university. But after I got in, the school did not feel particularly fresh or new to me. It was 1997, and Hongdae was, more than today, filled with musicians and artists of various fields, as well as their exchanges. At that time, I was a bassist in an independent rock band and played for many festivals and events over the whole country, and time to time, participated on some soundtracks with Jung. Also after my first trip to London in 1998, I became obsessed with electronic music, and because of this, I even ran a club for a short time. With these experiences, I passed my 20s embodying the subcultures of the time. I started my military service in 1999, and after I was discharged, when I was 23, I founded a soundtrack production company with my friends, who are great musicians. The Korean film scene was in its golden era at that time, so that I could participate in the field as a producer and coordinator for about 20commercial films, in a short period of time. In response to the fatigue that came from listening to music as a job and commercial activities, I started to make furniture as a hobby, which was similar to my major. When I was in the college, I was into minimalism and so when I formally launched the furniture line I do so in this style. Looking back, there were almost no competitors, who were both making and designing furniture, so it was a very smooth debut for me as a designer. At that time, I thought I was meant to be a furniture maker. Naturally, I stopped working on the music related jobs. My tables were very popular so that I could freely observe my clients’ living spaces, so when I was about 30 I began to compare the different contexts of the things in spaces and the cultural taste of the owners. Sometimes I had severe prejudice on these things, which made me feel disgusted by my self. So I began wondering, if someone who doesn’t have a career background like mine, could they look at things without comparison or prejudice? So I stopped making furniture and started to take photographs ofthe offices of different embassies in Korea, and taking large scale pictures of various spaces for three years, which resulted in A Multi-Culture (2010) at One and J. Gallery, and In between Times (2010) at Art+Lounge Dibang. Based on the various cultural experiences in my 20s, this was the turning point at which I presented my formative language.

JM: Your work tends to have very concrete parameters with the exception of Willing + Dealing? Why is that?

JMS: I think your point is very accurate. I tend to consider formal beauty andits pleasure as very important, sometimes too much. Although the narrative is important, I believethat the message of one image, musical piece, or their formal beauty and texture (or finish for design) sometimes exceeds the narrative. Maybe this thought came from my direct experiences in the different focuses of my youth and the techniques and collaborative styles that I acquired from these interactions. (Later I had thought that Sanglim would never be possible without these experiences.) Critics say of my works, that they find a common formal beauty whether the work is a piece of furniture, a photograph, or in a new media form. My working process often starts with excessiveness and goes through steps that leave the minimum, and I hope the audience can find more stories because of this process. In Japanese literature, there is the poetic genre Haiku, which is a very simple verse with a fixed form, and because of its brevity and implication, the readers can have different personal interpretations. So every time I released my work, I intended to have an opinion, but not to state it. Sometimes this feels like dogma, which use to I lock myself in my own formal structure. But in the case of the exhibition in Space Willing + Dealing, I intended to be different from my earlier work and be very flexible, which was to not make any additional works for the exhibition and just comfortably lay out and mix the leftover pieces that were not released, (including photographs, furniture, and sculptures), and roughly show my hybrid identity, or rather my work. To realize this, I chose a coarse and vertically and horizontally distorted space for the exhibition. Especially, the for exhibitionHidden Track, I released my work TABLE 2, which I’ made for 10 years, and also exhibited research materials, like A Multi-Culture and B-cuts from In between Times. I could feel that the way I look at things had widely changed from before. A big awakening about my series of works came to me through this exhibition, so that I felt it was a kind of retrospective of mypast 10 years.

JM: Besides your photographic works, with your collaborator Jang Jae Il, you have done many sound works. This type of media work is increasingly finding its support and a place in exhibition. What are some of the challenges you have faced in realizing a project like Sanglim?

JMS: The biggest and the toughest problem that I confronted, while I was processing Sanglim, was the perception of how to look at the form of this work. Sanglim was a pilot project with the cooperation of central and regional organization and professionals to overcome both the standard form of public art and the practices that solidify the form. And the objective space, Sanglim Park in Hamyang, Kyungsangnam-do, is a park and also a forest, which its name implies,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natural monument and a neighborhood park. The scenery was already cluttered with many objects, so we suggested not placing anything, and instead make an invisible work, and one without the most important attribute for proposing public art: durability (or permanency), so that it will perish as the time passes. At the beginning, the process of convincing for this was the most difficult thing.

JM: The three sound pieces that you worked on Sanglim, Mullae and at Jeju Island, could also be called site-specific. Do you think there is a need to distinguished between genres or is it all the same?

JMS: From time to time, I have been asked to summarize the work of Jang Min Seung + Jung Jae Il. In fact, it is hard for us to explain our works and we do not explain it as a certain thing or a genre, but we do think that we have been showing results that no one else ever did. The works in Sanglim, Munlae-dong, and Jeju are different in their site-specificity and background, so that the experiencing audiences are also different; in turn I recently felt there is a disparity between works that are freely made and those that are commissioned for certain purposes. This question is suggestive of the change in our future works, which will be different from previous works. So I would rather not classify the works of Jang Min Seung + Jung Jae Il, and just anticipate our works. In the distant future, I hope our work becomes a genre, not a style. I even wish it will not be recognized as art.

JM: Your works each have an underlying social concern, like housing or construction. Would you say this is true for your latest work Willing + Dealing?

JMS:I think the answer will overlap a lot with my previous answers. All individuals, including artists, are making connections to the environment (city, society) they are living, but different from the others. I think artists actively find it and make a statement about it. I was once confused with my very Westernized design language, which I found in my 20s as a designer. To resolve this, I took many pictures of new town areas and other scenes, like an anthropologist does fieldwork. These were not for public eyes at the beginning, yet some of them became projects, while others did not. Maybethe reason why the images I showed at Space Willing + Dealing could be seen that way, is that they were less refined than the other works that has become projects and exhibited. Correspondingly, Hidden Track was an improvisatory mixture of leftover wooden scraps from making commercial furniture, while B-cuts were photographs and sculptures, and the furniture fragments and images that I took near the exhibition site.Each installation I put there was one element, and I hoped the exhibition site to become one big work.

JM: You seem to move between commercial work and art making with relative ease. What do you think is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commerce in Korea?

JMS:Because I don’t have much experience making money as an artist, I cannot really speak about the relation between art and commerce in Korea. But what I feel is that the size of the art market in Korea is too small. This is not just about the size of the artwork deals, but the price for the artist is also too small, no matter in the art field or commercial field. This is why artists naturally tend to have another job. Simply, it is hard to make a living from making art. When I see the many musicians around me, they commonly do different activities, like sessions for popular music, and their own music. Through this, I see they keep their work habits and persist in their creative works, yet I saw many artists who think this is shameful, and that they are tainted by such work.

For my case, it may look easy to come and go, but actually it is a very difficult matter. There was a time that the music, which I was interested in, became my means of living, and after that my interest moved to design. And then design became the means of living, then I had my late start on art based on the view I learned from design. Now being an artist became my job and I spend most of my time doing it more than before, but the good thing is that this work cannot be my means of living at all. (Especially because I am more and more attracted to ephemeral works, which is non-materialistic and communicating through some particular experiences.) So I think this is the work, which I can keep doing. If this becomes a major moneymaker, I will definitely feel bored. Commercial films, popular music, and the design field, which are in a love-hate relationship with me, have bigger capital, newer technology and more trained and reasonable people than in the art field. I am not just making money from them, but also discovering the materials and learning many things that nobody can teac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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