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Taeyoon

Kim Taeyoon received his BFA from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n Film, Video, New Media. His first solo show opened at One and J. Gallery on October 17, 2014. He has been included in group shows at One And J. Gallery, Seoul (2014 and 2013), Salon de H, Seoul (2014), Space 15th, Seoul (2011) Seoul Art Cinema, Space Cell (2006), Gallery Busker, Chicago (2006), Rodan, Chicago (2006) and Enemy Gallery, Chicago (2006).

I first met Kim Taeyoon in 2007 when he was at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n the following years his work was focused on commercial projects and innovative and new uses of video and media technology. We became reacquainted in 2009 through mutual friends and have since become good friends. Following his development as a media artist I realized that Kim is doing something beyond just making videos, that his work taps into the dominance of media and it’s role in our lives by transforming it into representations that show the ebb and flow of data used and forgotten. On the surface this density of information and data, however obscured, are playful, and engaging, even hypnotic images. Like our experience as users of the Internet and media Kim’s works draw upon what is not visible. They act as commentary on the disconnection between information programming and user experience, and the indirection of contemporary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Although digital there is a sense of analog urge for connection within his works especially ones like Chit Chat (2012 and 2013) where the work is based on social media.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Kim Taeyoon and I had in June 2014.

Julia Marsh: As a student I understand you started working in narrative film and video. Your work now is almost entirely non-linear constructions in digital media. Can you describe the process or intentions by which you made this shift?

Kim Taeyoon: I wanted to simplify my working process. Rather than piling up my thoughts and present them altogether, I wanted to work spontaneously as they came. For me, (narrative) films were too complex in the process, at that time. But the influence of time is deeply rooted in me and I intend to use it in my work.

JM: You use fairly complicated algorithms that result in relatively simple shapes and hypnotic patterning. I see a relationship between the labor used, and trance music culture. Is there some spiritual connections between the work and the results? Or is it in the work alone?

KTY: I wanted show movement, in which the boundary of the start and the end are soft, as something constantly goes round and round. I have been looking for something like a movement, which we can just see purely without the expectation on the ending with the estimation of what will show up next, so that this led me to use algorithm. As well as I began wanting to simplify the shape/figure to emphasize the movement. Actually, the algorithm is not that complicated. Many parts of my work are influenced by the electronic music and sampling culture. Music culture takes a big part of me.

JM: Each of the pieces from 2013 seems to employ color and pattern akin to Minimalism or Color Field Painting. Would it be accurate to say that despite your practice being digitally generated that you think like a painter?

KTY: For some of my works, I plan a sort of system, in which the software actually draws the picture. Most of them have a structure that randomly generates a simple movement. I wanted to show elements like a certain motion, rhythm, and cut and dissolve in film, as a temporal image without narrative. I do not think myself as a painter, but I am under the influence, hugely, by painters.

JM: Your work Chit Chat (2012/2013) taps into social media and our usage of the same, while other works tap into the patterns of data produced on the Internet. What was the inspiration for Chit Chat and do you think that since making that piece social media has changed?

KTY: The reason I chose to use social media in my work is not to present the recorded objects, but to show the things that are presently captured, the data, which is generated in real time. The data can be many repetitive movements with the blurred edge of beginning and ending, as well as temporal images. The two words that are used in Chit Chat, in 2012, love and hate, were used so frequently in 2014 that the computer could not display the effect, on screen, in real time. The users and traffic increased that much. I am also now accessing more often, than at that time.

JM: One aspect of your work is that you interface with what is going on around you very easily; making use of the Internet and sources like Twitter for generating your images. What are you responding to in your environment?

KTY: I spend a major amount of time each day looking at the laptop screen. I do my work with the computer, receive information through the Internet and communicate with people through social media. And then a day just passes by. Naturally, the line between reality and virtual reality is ambiguous. I feel virtual reality has become tangible now, and the reality is becoming more and more something elusive. I am thinking about the meaning of relative time, which is under the influence of the environment like this. I wonder about those effects, which are created by fast Internet speeds and the information that is always accessible, the illusions that show on the electronic signboards on the street, the rhythm of the neon light and the faster transportation. I contemplate on how we can adapt ourselves to the real space that is increasingly narrowed, and the territory of virtual reality that is more and more growing.

JM: You described your work as being the wrinkle, or fold in the surface of digital media, as something that disrupt the surface. Can you elaborate on this?

KTY: The texture of the screen is slick. In the present day, where the technology is more developed, the pixels in the screen are denser and the image becomes smoother. It may seem that the speed of technological progress is faster and everything becomes dense, but like most of the computers have some bugs and report errors, there are creases hiding in the microscopic level of the external slickness. Digital media has an exceeding advantage on finding and showing those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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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승

Julia Marsh: 처음 출발이 예술가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혹은 왜 예술가로 변모하게 된 것인가?

 장민승: 10대때 부터 지나치게 록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당시에 처음 결성한 록밴드에 멤버로 지금 함께 협업을 하고 있는 정재일을 기타리스트로 만났다. 당시의 우리 음악은 서양의 헤비메탈등의 록음악을 모방하는 커버 록밴드였다. 이후 정재일은 천재성을 인정받아 정규교육을 떼려치우고 프로뮤지션의 길로, 나는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진학 후 학교에서 별다른 신선함을 받을 수 없었다. 97년도였는데 홍대앞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뮤지션들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의 교류가 넘쳐났다. 그 시절 나는 인디록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약 1년간 전국의 각종 페스티발과 행사를 다녔고 간간히 정재일과 영화음악에 참여했다. 이후 98년 처음 간 런던여행에서 전자음악에 크게 심취하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심지어 홍대앞에서 클럽을 잠시 운영하기도 했었다. 이런 경험으로 서브컬쳐들을 온몸으로 세례 받으며 20대를 통과했다. 99년 군대를 가게 되었고 제대 후 스물 세살에 친분이 있던 음악분야의 대선배들과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당시는 한국영화의 황금기였기때문에 짧은 기간에 약 20여편의 장편상업영화의 프로듀서, 코디네이터로 영화필드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음악듣기와 상업적인 활동에서 받게되는 피로감이 몰려왔고 대안으로 전공과 유사한 가구만들기를 취미 삼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교육과정에서 미니멀아트에 심취해 있었고이를 방탕으로 한 디자인의 가구들을 정식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디자인과 제작을 병행하는 사람이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데뷔가 매우 순조로웠다. 당시만해도 가구제작자가 나의 천직이라고 여겨졌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테이블은 꾀나 인기가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공간을 엿볼 수 있게 되었고 스른즈음에서는 그 공간들에 놓인 사물이 지닌 여러 맥락들과 그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들을 비교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간혼 사물에 대한 편견이 지나치게 생기는 내 자신이 역겨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직업적 활동의 배경이 없었던 사람들은 비교와 편견 없이 사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가구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3년동안 주한대사관들의 집무실을 촬영하는 작업과 다양한 공간을 대형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 결과가 <A multi-culture> (2010 One and J. gallery)와 <수성십경 in between times>(2010 아트라운지 디방) 이다. 이 지점이 20대에 겪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들을 바탕으로한 나의 조형언어를 처음으로 발표한 전환점이다. 

JM: 당신의 작업은 아주 명확한 한계를 설정하려는 경향을 가지는데, Willing+Dealing은 예외적으로 그렇지 않다. 그러한 이유가 무엇인가?

 장민승: 정확히 지적한 것 같다. 나는 지나치게 형식미와 그것에서 오는 쾌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편이다. 내러티브가 물론 중요하지만 단 한장의 이미지나 음악 혹은 그것들이 지닌 형식미와 텍스츄어(디자인에서는 피니쉬)가 때론 내러티브를 능가하는 메세지를 준다고 믿어왔다. 그것들은 어찌모면 내가 어려서 부터 각분야의 메인필드를 직접 경험해 보고 거기서 보았던 테크닉과 협업방식을 습득해왔다고 본다. (‘상림’ 같은 경우는 이때의 경험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한 작업이었을것이란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비평가들은 나의 작업에 대해서 말하기를 가구를 만들던 사진을 찍던 뉴미디어를 다루는 작업을 하던 비교적 공통적으로 들어나게 되는 형미식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작업과정들은 대부분이 과잉으로 시작했다가 최소한의 것들만 남기기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보는이가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기를 바랬다. 일본 문학장르 중에 하이쿠(haiku)라는 매우 간결한 정형시가 있는데 그 간결함과 암시성 때문에 보는이 마다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즉 작업을 내 놓을때 마다 의견은 있지만 발언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다. 혹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형식의 틀에서 갖혀 있은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윌링앤딜링의 전시의 경우 전과는 달리 매우 유연하게… 그리고 별도로 전시를 위한 추가적인 생산을 하지 않고 내게 남겨진 발표되지 못한 잉여들(사진, 가구, 조각등등)을 편하게 벌려놓고, 조합해서 혼종적인 내 모습(작업)을 거칠게 한번 들어내 보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전시공간도 수직과 수평이 어긋나고 거친 곳을 선택했다. 특히 <가구팔자> 전시에서는 내가 10년 만에 발표한 TABLE 2도 함께 놓였는데 그 것이 나오기 까지의 일종의 리서치 작업의 결과인 <A Multi-Culture> , <수성십경 In between Times> 의 B-cut들이 함께 전시되었고 이 전시를 통해 내가 사물을 보는 방법이 전과는 매우 달라져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동안의 나의 작업이 큰 깨우침을 준 것을 그 전시를 통해 느꼈기에 일종의 지난 10년의 결산 회고전 처럼 느껴졌다.

JM: 당신은 사진 작업 외에도 장재일과의 협업을 통해 여러 사운드 작업 또한 진행해왔다. 이러한 종류의 미디어 작업은 최근 부쩍 지원을 받고 있고 여러 전시장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예를 들어 상림과 같은 프로젝트를 구현하는데 직면했던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가?

 장민승: ‘상림’을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직면하고 어려웠던 문제는 이작업의 형식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였다. 상림은 공공미술이 갖고 있는 일률적인 형식과 그것을 구축하는 관행의 문제점을 극복해 보고자 중앙기관관 지방기관이 전문가와 함께 힘을 모아 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시범사업이였다. 그리고 우리의 대상지인 경남 함양의 상림공원(상림숲)은 지명에서 알수 있듯이 공원인 동시에 숲이기도 하고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근린생활공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져다 놓아 경관을 훼손한 이 지역에 아무것도 놓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그리고 공공미술을 제안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내구성(영구성)도 없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공공미술 작업을 하자고 했을때 기존 방식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에 이 것을 설득해 나아가는 과정들이 초기에는 가장 어려웠던 지점이다.

JM: 상림과 문래, 그리고 제주도에서 작업한 세 개의 사운드 작품은 또한 장소특정적이라고도 불릴 법 하다. 당신은 장르 사이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모두 같은 것일 뿐인가?

 장민승: 장민승+정재일의 작업을 가끔 짧게 요약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사실 우리도 우리 작업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힘들고 굳이 무엇무엇이라거나 장르라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상림과 문래동 그리고 제주에서 했던 작업은 장소적 특성도 다르고 그 작업이 이뤄진 배경도 너무 다르며 때문에 이를 경험한 관객들도 다를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자율적으로 작업한 작업들과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커미션 작업들 사이에는 구별되는 지점이 있음을 최근에 느꼈다. 이 질문을 받고 연상하게 되는데 앞으로 계획되는 우리의 작업들은 전과는 구분되는 변화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민승+정재일의 작업을 어떤 장르로 구분하기 보다는 그냥 우리의 작업으로 기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먼 훗날 우리의 작업이 하나의 스타일이 아닌 장르가 되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그것이 미술이라고 인식되지 않았으면 한다.

JM: 각각의 당신 작업들은 주택이라든지 건설현장같은, 일종의 사회적 관심사가 밑에 깔려 있다. 당신의 최근작인 Willing + Dealing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장민승: 앞의 1.2. 질문의 대답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듯 하다. 예술가를 비롯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환경(도시, 사회)에과 관계 맺고 있을 것인데 일반사람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별견하고 발언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디자이너로서 이십대를 보내면서 발견한 나의 매우 서구화된 디자인 언어가 혼란스러웠고 그것을 해소하고자 하는 뜻에서 인류학자들이 필드워크를 나가듯 하는 뉴타운 지역을 비롯해 많은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에 이것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시작한 것들은 아니였고 하다보니 프로젝트가 된것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어쩌면 프로젝트가되어 전시했던 작업들 보다. 윌링앤딜링에서 선보인 이미지들은 정제되지 않은 것들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수도 있었겠다. 참고로 <가구팔자>는 상업적인 용도의 가구를 만들면서 남은 목재스크랩들, 사진과 조각의 B-cut 그리고 전시장 주변에서 주워온 가구파편이나 이미지들을 즉흥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 곳에 놓인 하나의 개별 설치들은 하나의 요소이며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큰 작업이였으면 했다.

JM: 당신은 상업적인 작업과 예술 창작 사이를 비교적 쉽게 오가는 것 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미술과 상업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민승: 미술가로서 많은 돈을 벌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술과 상업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좀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한국은 미술을 포함해 예술시장이 너무 작다고 생각된다. 이 것은 단지 예술품 거래가 규모가 작다는게 아니라 예술가가 예술분야와 상업적인 분야 구분하지 않고 용역비가 상대적으로 너무 작게 형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술가가 예술해서 먹고살기가 어려우니까 다른일을 해야되기 마련이라고 생각된다. 내 주변의 많은 뮤지션들 보면 대중음악 세션에서 부터 자신의 고유음악 활동까지 매우 다양하게 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작업습관을 잘 지켜내며 꾸준한 창작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내가 만난 많은 미술가들은 이렇게 되면 소위 떼가 묻는다고 부끄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의 경우 쉽게 오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나의 경우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악이 생계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생계가 되고나니 호기심이 디자인으로 옮겨갔다. 또 디자인이 생계가 되니 여기서 습득된 시각을 바탕으로 다소 늦게 미술을 하게되었다. 사실 지금은 미술작가가 직업이 되어 버렸고 그 일에 시간을 보내는게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 졌지만 다행인 것은 이 일은 전혀 나에게 생계가 되어주지 못한다. (특히 점점 비물질적이고 특정한 경험을 통해 소통하는 일시적인 작업에 매력을 느끼기에..) 때문에 이 일이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만약 이 것이 주요 수입원이 된다면 나는 분명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나와 애증의 관계인 상업영화, 대중음악, 디자인 분야는 미술보다는 훨씬 큰 자본과 신기술 그리고 훈련된 이성적인 사람들이 모인다. 나는 이 곳으로 부터 단순히 돈만 버는 것이 아닌 소재의 발견을 비롯해 누구나 가르쳐 주지 않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 서면으로는 질문을 방향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분량이나 적절한 대답이 아니라면 답변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재구성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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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Julia Marsh: 학생 때는 서사영화와 영상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신의 현재 작업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비선형적 구조를 띄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하게 된 계기나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김태윤: 작업을 하는 과정을 좀 단순화하고 싶었다. 생각을 쌓아놓고 모았다가 한번에 보여주는 방식보다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작업하길 원했다. 그때 나에게 (서사)영화는 너무 복잡한 과정들 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때의 영향이 깊게 박혀있고 그것을 작업에 활용하려고 한다.

JM: 당신은 몹시 복잡한 알고리즘을 이용하는데, 그 결과물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드러나거나 최면을 거는 듯한 무늬를 띈다. 나는 당신이 작업에 투여하는 노동이 트랜스음악 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작업과 결과물 사이에 어떤 정신적 연결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작업 그 자체일 뿐인가?

김태윤: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작과 끝의 경계가 아련한 것들. 계속 돌고 도는 무언가. 끝에 대한 기대없이 다음에 무언가가 나올거라는 예측없이 순수하게 바라볼수 있는 움직임 같은 것들을 찾다보니 알고리즘을 이용하게 되었고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모양/형태도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알고리즘 자체도 사실 그렇게 복잡한것은 아니다. 나의 많은 부분들은 전자음악 또는 샘플링 문화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음악문화는 나에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있다.

JM: 2013년도에 작업한 개별 작품들은 미니멀리즘이나 컬러 필드 페인팅과 흡사한 색채나 무늬를 채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당신이 디지털 연산을 통해 작업을 만들어내지만 스스로를 화가로 여긴다고 말해도 되겠는가?

김태윤: 나의 일부 작업들은 소프트웨어 자체가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시스템을 구상 한다. 대부분 단순한 움직임을 랜덤하게 생성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움직임이나 리듬 영화에서의 컷이나 디졸브 같은 요소들을 서사 없이 시간적 이미지로써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화가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화가들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색은 감정을 갖고있다고 생각한다.

JM: 당신의 작업 Chit Chat (2012/2013) 은 소셜 미디어와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들에 다가가는 한편, 다른 작업들은 인터넷에서 생산된 정보의 유형들을 활용한다. Chit Chat 작업에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이후 소셜 미디어가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김태윤: 소셜미디어를 작업에 사용 하기로 한건 녹화된 대상이 아닌 현재 포착되는 것들 로써의 데이터,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데이터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였다. 그것 또한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한 수많은 반복적 움직임들이고 시간적 이미지이다. 2012년에 chit chat 에 사용된 ‘love’와 ‘hate’ 두 단어를 2014년에는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화면에 보여줄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만큼 사용자와 트래픽이 늘어났다는 이야기 이다. 나도 그때 보다 지금 훨씬더 접속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JM: 당신 작업의 또다른 측면은, 당신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주 쉽게 접속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활용한다든지, 이미지를 생성하는데 트위터를 원료로 쓰는 것 처럼 말이다. 주어진 환경속에서 당신은 무엇에 응답하는 것인가?

김태윤: 나는 하루에 아주 많은 시간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지낸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받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지나간다. 자연스럽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고 있다. 가상은 이제 만질수 있는 것이 되었고 현실은 점점 더 만질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환경으로 부터 영향을 받는 상대적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빠른 인터넷속도와 언제든 접속 가능한 정보들, 거리의 전광판에 보여지는 환상들, 간판불빛의 리듬, 점점더 빨라지는 교통수단등이 어떤 영향을 만들고 있을까. 점점 좁아지는 현실적 공간과 점점 커지는 가상공간의 영역에서 어떤식으로 적응 해나갈수 있을까 생각한다.

JM:당신은 당신의 작업을 디지털 매체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나 접힌 면과 같은, 표면을 어지럽히는 어떤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말해줄 수 있겠는가?

김태윤: 스크린의 질감은 매끈하다. 기술이 발전된 요즘에는 스크린 속의 픽셀은 더 촘촘해지고 이미지는 더 매끄러워진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모든것이 촘촘해지는것 같지만 대부분의 컴퓨터들도 버그가 있고 에러가 나듯이 겉으로는 매끄러움에도 미세한곳에는 보이지 않는 주름들이 생기고 있다. 디지털 매체는 그런것들을 찾아내고 보여주는데 아주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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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 Min Seung

Jang Min Seung earned his BFA and MFA from Chung-ang University, in Seoul, South Korea. He has had solo exhibitions at Space Willing and Dealing, Seoul (2014), One and J. Gallery, Seoul (2012 and (2010), Art+Lounge Dibang, Seoul (2010), and Seomi & Tuus, Seoul(2008 and 2006). He has been included in group exhibitions at Seoul Museum of History, (2014), Kumho Museum, Seoul (2013), Gillman Barracks, Singapore, (2012), Culture Station 284 Seoul, (2012), Salon de H, Seoul, (2011), KIMUSA, Seoul (2009), Seoul Design Week, Fuorisalone, Milano, Italy (2007), Cais Gallery, Seoul (2006). In 2010 Jang was awarded a grant for Visual Arts by the Seoul Art and Culture Foundation, the SeMA Young Artist support program by the Seoul Museum of Art and a grant for Mullae Arts Plus by the Seoul Art and Culture Foundation. He was named the 2006 Korea Design Award: Young Product Designer of the Year.

Jang’s work is sometimes collaborative and other times not, however his work is generally sensitive and carefully constructed from observation of his subjects. Jang is one of a younger generation of artists that has experience that cuts across disciplines and does not adhere to the gallery as a main form of exhibition. I first became acquainted with Jang’s work when he showed large-scale photographs of windows in abandoned apartments titled In Between Times. These photographs of windows looking out onto nature are much like paintings of nature from an earlier age. Initially installed in an abandoned house, the buildings structure underscored the in between quality of their context. Jang’s background in design and music inform his work in photography, sculpture, and sound. His is a hybrid, one that developed as a natural outcropping of his interests. Jang is nothing if not thorough in his approach and attitude towards making. It is this drive that makes his works definitive.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Jang Min Seung and I had in June 2014.

Julia Marsh: I understand you did not start out as an artist. How or why did you make this transition?

Jang Min Seung: Since I was a teenager, I was deeply into rock music, and I when I formed my first rock band, I met my collaborator, Jung Jae Il, who was the band’s guitarist. Our music back then was just copying Western heavy metal and rock numbers. Sometime after, Jung was noticed for his brilliant music and quit school to take the path of a professional musician, while I became an art student at a university. But after I got in, the school did not feel particularly fresh or new to me. It was 1997, and Hongdae was, more than today, filled with musicians and artists of various fields, as well as their exchanges. At that time, I was a bassist in an independent rock band and played for many festivals and events over the whole country, and time to time, participated on some soundtracks with Jung. Also after my first trip to London in 1998, I became obsessed with electronic music, and because of this, I even ran a club for a short time. With these experiences, I passed my 20s embodying the subcultures of the time. I started my military service in 1999, and after I was discharged, when I was 23, I founded a soundtrack production company with my friends, who are great musicians. The Korean film scene was in its golden era at that time, so that I could participate in the field as a producer and coordinator for about 20commercial films, in a short period of time. In response to the fatigue that came from listening to music as a job and commercial activities, I started to make furniture as a hobby, which was similar to my major. When I was in the college, I was into minimalism and so when I formally launched the furniture line I do so in this style. Looking back, there were almost no competitors, who were both making and designing furniture, so it was a very smooth debut for me as a designer. At that time, I thought I was meant to be a furniture maker. Naturally, I stopped working on the music related jobs. My tables were very popular so that I could freely observe my clients’ living spaces, so when I was about 30 I began to compare the different contexts of the things in spaces and the cultural taste of the owners. Sometimes I had severe prejudice on these things, which made me feel disgusted by my self. So I began wondering, if someone who doesn’t have a career background like mine, could they look at things without comparison or prejudice? So I stopped making furniture and started to take photographs ofthe offices of different embassies in Korea, and taking large scale pictures of various spaces for three years, which resulted in A Multi-Culture (2010) at One and J. Gallery, and In between Times (2010) at Art+Lounge Dibang. Based on the various cultural experiences in my 20s, this was the turning point at which I presented my formative language.

JM: Your work tends to have very concrete parameters with the exception of Willing + Dealing? Why is that?

JMS: I think your point is very accurate. I tend to consider formal beauty andits pleasure as very important, sometimes too much. Although the narrative is important, I believethat the message of one image, musical piece, or their formal beauty and texture (or finish for design) sometimes exceeds the narrative. Maybe this thought came from my direct experiences in the different focuses of my youth and the techniques and collaborative styles that I acquired from these interactions. (Later I had thought that Sanglim would never be possible without these experiences.) Critics say of my works, that they find a common formal beauty whether the work is a piece of furniture, a photograph, or in a new media form. My working process often starts with excessiveness and goes through steps that leave the minimum, and I hope the audience can find more stories because of this process. In Japanese literature, there is the poetic genre Haiku, which is a very simple verse with a fixed form, and because of its brevity and implication, the readers can have different personal interpretations. So every time I released my work, I intended to have an opinion, but not to state it. Sometimes this feels like dogma, which use to I lock myself in my own formal structure. But in the case of the exhibition in Space Willing + Dealing, I intended to be different from my earlier work and be very flexible, which was to not make any additional works for the exhibition and just comfortably lay out and mix the leftover pieces that were not released, (including photographs, furniture, and sculptures), and roughly show my hybrid identity, or rather my work. To realize this, I chose a coarse and vertically and horizontally distorted space for the exhibition. Especially, the for exhibitionHidden Track, I released my work TABLE 2, which I’ made for 10 years, and also exhibited research materials, like A Multi-Culture and B-cuts from In between Times. I could feel that the way I look at things had widely changed from before. A big awakening about my series of works came to me through this exhibition, so that I felt it was a kind of retrospective of mypast 10 years.

JM: Besides your photographic works, with your collaborator Jang Jae Il, you have done many sound works. This type of media work is increasingly finding its support and a place in exhibition. What are some of the challenges you have faced in realizing a project like Sanglim?

JMS: The biggest and the toughest problem that I confronted, while I was processing Sanglim, was the perception of how to look at the form of this work. Sanglim was a pilot project with the cooperation of central and regional organization and professionals to overcome both the standard form of public art and the practices that solidify the form. And the objective space, Sanglim Park in Hamyang, Kyungsangnam-do, is a park and also a forest, which its name implies,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natural monument and a neighborhood park. The scenery was already cluttered with many objects, so we suggested not placing anything, and instead make an invisible work, and one without the most important attribute for proposing public art: durability (or permanency), so that it will perish as the time passes. At the beginning, the process of convincing for this was the most difficult thing.

JM: The three sound pieces that you worked on Sanglim, Mullae and at Jeju Island, could also be called site-specific. Do you think there is a need to distinguished between genres or is it all the same?

JMS: From time to time, I have been asked to summarize the work of Jang Min Seung + Jung Jae Il. In fact, it is hard for us to explain our works and we do not explain it as a certain thing or a genre, but we do think that we have been showing results that no one else ever did. The works in Sanglim, Munlae-dong, and Jeju are different in their site-specificity and background, so that the experiencing audiences are also different; in turn I recently felt there is a disparity between works that are freely made and those that are commissioned for certain purposes. This question is suggestive of the change in our future works, which will be different from previous works. So I would rather not classify the works of Jang Min Seung + Jung Jae Il, and just anticipate our works. In the distant future, I hope our work becomes a genre, not a style. I even wish it will not be recognized as art.

JM: Your works each have an underlying social concern, like housing or construction. Would you say this is true for your latest work Willing + Dealing?

JMS:I think the answer will overlap a lot with my previous answers. All individuals, including artists, are making connections to the environment (city, society) they are living, but different from the others. I think artists actively find it and make a statement about it. I was once confused with my very Westernized design language, which I found in my 20s as a designer. To resolve this, I took many pictures of new town areas and other scenes, like an anthropologist does fieldwork. These were not for public eyes at the beginning, yet some of them became projects, while others did not. Maybethe reason why the images I showed at Space Willing + Dealing could be seen that way, is that they were less refined than the other works that has become projects and exhibited. Correspondingly, Hidden Track was an improvisatory mixture of leftover wooden scraps from making commercial furniture, while B-cuts were photographs and sculptures, and the furniture fragments and images that I took near the exhibition site.Each installation I put there was one element, and I hoped the exhibition site to become one big work.

JM: You seem to move between commercial work and art making with relative ease. What do you think is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commerce in Korea?

JMS:Because I don’t have much experience making money as an artist, I cannot really speak about the relation between art and commerce in Korea. But what I feel is that the size of the art market in Korea is too small. This is not just about the size of the artwork deals, but the price for the artist is also too small, no matter in the art field or commercial field. This is why artists naturally tend to have another job. Simply, it is hard to make a living from making art. When I see the many musicians around me, they commonly do different activities, like sessions for popular music, and their own music. Through this, I see they keep their work habits and persist in their creative works, yet I saw many artists who think this is shameful, and that they are tainted by such work.

For my case, it may look easy to come and go, but actually it is a very difficult matter. There was a time that the music, which I was interested in, became my means of living, and after that my interest moved to design. And then design became the means of living, then I had my late start on art based on the view I learned from design. Now being an artist became my job and I spend most of my time doing it more than before, but the good thing is that this work cannot be my means of living at all. (Especially because I am more and more attracted to ephemeral works, which is non-materialistic and communicating through some particular experiences.) So I think this is the work, which I can keep doing. If this becomes a major moneymaker, I will definitely feel bored. Commercial films, popular music, and the design field, which are in a love-hate relationship with me, have bigger capital, newer technology and more trained and reasonable people than in the art field. I am not just making money from them, but also discovering the materials and learning many things that nobody can teac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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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Julia Marsh: 이번 가을에 당신은 서울로 돌아와 동대문 인근 황학동의 한 빌딩에서 사운드 퍼포먼스 작업을 하게 된다. 당신이 문래 예술 공장에서 보여주었던 사운드 설치작업 Room 402와 비슷한 작업이 될 것인가?

김영은: 비슷하면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Room 402가 드라마틱하게 짜여진 소음의 내용을 통해 관객이 있는 공간 너머의 보이지 않는 환경을 각성하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좀 더 공간의 물리적인 요소와 그에 따른 소리에 촛점을 맞추었다. 지난번 작업에서 여러 대의 스피커를 사용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실제 소리를 내는 퍼포머와 함께 한다는 점도 다르다. 보이지 않는 공간을 음향적으로 드러내보려 한다는 점에서는 이전 작업과 비슷하다.

JM: 사운드 아티스트로서, 당신은 공간이라는 물적 제약 속에서 순간적인 재료를 다룬다. 많은 설치작업들이 이러한 이분법을 지니고 있다. 사운드아트와 설치미술 사이에 실제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영은: 사실 스스로를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웬지 모르게 너무 기술적인 용어로 들려서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나를 볼 때에, 작업의 내용이 대부분 소리와 관련된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고 최종 결과물의 형태도 소리가 중심이 될 때에 내가 가장 즐겁고 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소리를 다루면서 또 한번 매력을 느꼈던 점은, 사운드 아트는 꼭 실재 공간에서 전시를 하지 않아도 성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소리라는 매체의 특성이 본래 공간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들 중 소리를 공간화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어왔고 반대로 공간을 소리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결과물의 발표를 위해 실재 공간이 필요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3차원 공간을 벗어날 수도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설치 미술은 어떤 현장을 작품화하거나 어떤 작품을 현장화하는 법칙을 따라서 실재 공간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지만 사운드 작업은 결과물의 전시가 헤드폰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소리는 사운드 파일과 같은 비공간적이고 시간적인 그리고 헤드폰과 같이 직접 신체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도구를 통해 듣게 될 때 오히려 더 강렬하게 각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이나 기억, 개념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촉각적으로 소장 가능한 형태의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JM: 사운드아트는 이미지, 나아가 레코딩과 같은 지배적인 문화 소비의 형식에 저항적인 경우가 많다. 당신은 외부에 존재하며 제도권으로의 진입에 저항하는 특성을 가진 작업을 만드는 것인데, 이를 전형적인 전시 경험을 교란하려는 시도로 보아도 되겠는가?

김영은: 나의 의도라기 보다는 소리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생기는 것 같다. 작업을 할 때에는 작업의 내용에 따른 형식을 생각할 뿐이고, 저항이나 교란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몇 번의 전시나 프리젠테이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전시장 안에서의 소리나 기록된 소리 앞에서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반응은 종종 나에게 공격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기도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러한 대화법이 당황스럽다. 내 작업에 반항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계산되지 않은 나도 모르는 반항이다.

JM: 당신이 판단하기에 사운드 아트와 그것의 감상에 있어 이상적인 환경은 무엇인가? 또한, 전시와 기록에 있어 당신의 작업은 어떤 도전을 제기하는가?

김영은: 사운드 아트가 성립되는 조건들을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전시장에서의 그룹전이라면 개개의 작업이 개별적으로 잘 들릴만한 충분한 공간과 벽이 확보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소리는 뒤로 돌아서거나 옆 칸으로 건너가도 여전히 들리므로 불필요한 소리가 차단된 상황이 전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생각보다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다.

현대미술전시에 참여한 사운드 작업의 설치된 상황을 보면 때때로 작업의 물성 면에서는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사운드 작업들로만 이루어진 전시에 가보면 한 공간 안에서 개별적인 물성의 구현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아예 소리를 뒤섞어 버리는 연출 때문에 기획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종종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사례들도 있었다.

이상적인 환경은 앞서 말한 공간적 조건과 전시를 만드는 이의 균형감이 만날 때 생겨나는 것 같다.

작업의 기록에 있어서는 많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처럼 기록을 아예 안하지도 않고, 완벽한 기술로 실제에 가까운 청취의 기록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 특별한 녹음 장비를 쓰기도 하나 기본적으로는 작업의 컨셉과 내용을 전달할 수 있고 현장감을 맛 볼 수 있을 정도로만 짧게 기록한다. 앞으로 계속 생각하고 보완해야 할 문제이다.

JM: 사운드아트는 종종 한국 미술계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사운드아트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 이외의 장소에서 사운드아트가 차지하는 위상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김영은: 소리에 대한 예술을 다루는 한국어로 쓰여지거나 번역된 책과 관련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에 차지하는 위상이랄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자생적으로 소리를 다루는 작가와 음악가, 관심을 갖는 기획자가 있어서 드물게라도 전시와 공연이 열리는 것 같다. 나는 한국의 사운드 아트가 아무런 기반 없이 스스로 생겨나고 이제까지 왔다는 점을 중요하게 본다.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사운드 아트가 차지하는 위상도 그리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운드 아트는 소수의 1세대 작가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가 짧다. 더 많은 시도와 시간이 필요한 분야이다. 하지만 영어권이나 독어권에는 출판작업이나 관련 기관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고 전문 전시장이나 기획자, 비평가가 있을 정도로 논의가 좀 더 일반화 되어 있다. 누구나 아는 레퍼런스가 있어 일단 언제든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분위기는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차이점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JM:사운드아트는 주류 문화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재료를 얻거나 유관기관으로부터 협조를 얻는데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과 그 외의 장소에서 사운드아트가 더 잘 받아들여지기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영은: 한국의 경우라면 우선 이것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학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각 문화의 역사를 다루고 사운드 아트의 중요한 작업을 개괄하는 수업이 있어야 한다. 학교라는 곳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에 있어서 필요한 절차라고 본다.

또한 예술지원기관들이 제공하는 문서상의 카테고리에 ‘소리’ 혹은 ‘사운드아트’라는 명칭이 표기되어야 한다. 기관에서 프로덕션 비용을 제공하면서도 이를 독립된 장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금을 받는 입장에서 작업을 진행하면서 지원기관과의 크고 작은 마찰을 피할 수 없다.

한국 이외의 장소에서는 관련 제도를 내가 직접 몸으로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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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oung Eun

Keem Young Eun is a sound artist, who has been  in the residency program of Rijksakademie van Beeldende Kunsten, Amsterdam, since 2014. In 2013 she completed the Sonology Course at The Royal Conservatory of The Hague. She earned an MFA at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Seoul, and a BFA in the Department of Sculpture, at Hongik University, Seoul. She has had solo exhibitions at Project Space Sarubia, Seoul, (2011), Alternative Space Loop, Seoul (2009) and Insa Art Space, Seoul (2006). Her works were included in Translate into Mother Tongue, Doosan Gallery, Seoul and New York, (2013), Open Index, Art Sonje Center Lounge Project, Art Sonje Center, Seoul (2012), Image and Text – Ut Pictura Poesis, ONE AND J. Gallery, Seoul (2012), Media Landscape: Zone East, Liverpool Biennale, Contemporary Urban Center, Liverpool, UK (2010), Sound Art 101, Ssamzie Space, Seoul (2007), Sitting Here and There without Knowing What is Happening, 335 Orch Performance Series, Alternative Space Loop, Seoul (2007), Somewhere in Time, Art Sonjae Center, Seoul (2006), Familiar, but Unfamiliar Landscape, Arko Museum, Seoul (2006), SEMA 2005, Seoul Museum of Art, Seoul (2005). Keem’s work Bespoke Wallpaper Music will be performed at 7pm between September, 18th and the 25th at the Solomon Building, in Hwanghak-dong.

I first became acquainted with the work of Keem Young Eun in 2011 when she was an artist in residence at Art Space Mullae. I found her piece Room #402 a haunting and singular experience.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Keem Young Eun and I had in May 2014.

Julia Marsh: In the fall you will return to Seoul to do a sound installation in a building in Hwanghak-dong, near Dongdaemun. Will this work be similar to Room 402, the sound installation you produced in your studio at Mullae Art Center?

Kim Young Eun: I can say the two are similar but different. If Room 402 used the content of dramatically woven noise to waken the invisible environment, which rests beyond the space of the audience, this work is more focused on the construction of sound in accordance with the physical element of the space. However, this work can be considered as the extension of the previous work, at the point that the two are trying to acoustically reveal invisible space.

JM: As a sound artist, you work with ephemeral elements within the material constraints of space. Much installation art possesses a similar dichotomy. Do you think there are any real differences between sound and installation art?

KYE: Actually it has been only a short time since I defined myself as a sound artist. Maybe this is so because the word feels a bit technical to me, perhaps with no reason. But when I see myself, I realize that the contents of my work mostly start from an interest in different sounds and related things, as well as I feel most comfortable and pleased, when sound is at the center of my final results. So in this way I accepted the name.

In dealing with sound, I am always fascinated that sound art can stand alone without having an actual exhibition space.

Originally, the characteristic of sound media contained spatial ideas. So, there have been many attempts to spatialize sound, while on the contrary to contain the space in the sound. The former needs a real place to present the work, but the latter can leave the three dimensional space. In crude terms, installation art has to be based on the actual space in order to make a certain scene into an artwork, or a certain artwork into a scene, but the work of sound art can be exhibited inside a pair of headphones. Sometimes a sound can be rather strongly imprinted on a person through non-spatial and time-based tools like a sound file, as well as direct and physical tools like headphones. However, there are few sound artworks that can be actually possessed, without a relationship to feelings, memories, or conceptual understandings, which is another difference from installation art.

JM: Sounds art in many cases is resistant to dominant forms of cultural consumption, whether as a picture or even a recording. By making work that is outside or resistant to co-optation are you attempting to disrupt the typical exhibition experience?

KYE: Such consequence comes from the media’s, or the sound’s own character, rather than my intention. It is hard to answer yes to your question because when I work on a piece, I am only thinking about the formality of the work’s content, and do not recollect words like resistance or disruption. If my work carries some aspect of resistance, it is then an uncounted for revolt emanating from my unconscious mind.

JM: In your estimation what is the ideal setting for sound art and its observation? Also, what challenges does your work pose for exhibiting and documentation?

KYE: Though I cannot generalize the conditions established for sound art, in the case of a group exhibition in an exhibition site, it is necessary to retain enough space and wall to make each artwork clearly and individually audible. It may sound simple, but is still important to screen out unnecessary sound, because the sound will still be there, whether the viewer/listener turns his or her back or even moves to the next exhibit.And yet many artists have to admit that this is harder to actualize then they thought.

On some occasions, in which a sound work is installed in a contemporary art exhibition, I often see the materiality of the work is not being understood. And in other cases, in which the exhibition is solely dedicated to sound works, I frequently experience adirection which actually mixes the sounds altogether, perhaps because they know the difficulty in realizing individual materiality in one space, which in turn can cause the curator’s voice to be diminished. Of course, there are some good examples of multiple sound works installed together.

I think the ideal environment is only possible when the spatial conditions that I mentioned earlier are available, and the perspective of the person, who makes the exhibition is attentive to these needs.

On the matter documentation,there are lots of limitations, actually. Unlike some people, I neither disregard the need for documentation, nor pursue the perfect technique for recording the sound as close to real-time. Depending on the case, I sometimes use special recording devices, but basically I only document brief examples, and only to the degree that delivers the concept and content of the work and gives a taste of the scene. This is an issue I need to continue contemplating and supplementing.

JM: Sound art often appears to be on the fringe of the Korean art scene. From your own perspective how does it fit into the contemporary Korean art scene, in contrast to how it may be received in other parts of the world?

KYE: It has been almost ten years since the first exhibition in Korea introduced sound art. But Korean and translated foreign books and related institutions, which deal with sound art hardly exist, so that this earlier introduction did proceed to become a body. Yet, there have been a few self-grown sound artists, composers, and curators with interest, so exhibitions and performances are possible to and happen, even though they are rare. I think the fact that Korean sound art has come into being by itself to this point without any basis, is very important.

The place of sound art in the international art world also seems unclear. The history of sound art is short, shown by the small number of first generation artists who are still active. More attempts and time are needed in this field. However, it is true that English and German speaking countries have more publications and institutions, as well as the specialized exhibition site, curators and critics dedicated to sound, so the discussion on sound art there is far more common. Also, there are some references that most in the art world know, so that the conversation can be started any time.

I think the difference is only a matter of time.

JM: Sound art is not a mainstream form of culture and requires special support, both materially and institutionally. What do you think are the requirements for sound art to be better received in Korea, and elsewhere?

KYE: For the case of Korea, I think there should be a university department, which academically approaches sound art. There should be classes that deal with the history of auditory culture, and introduce the important artworks of sound art. Even though higher education may not be the best method, I think it is a necessary step to correct the current situation.

Also, the term “sound”and “sound art” should be used as a category in documents from supporting art institutions. If the institution provides production funding, but does not acknowledge it as an independent genre, the friction between the institution and the artist will inevitably grow in the process of the making.

I cannot comment on cases of outside of Korea, since I have not experienced these relative 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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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Julia Marsh: 당신의 작품은 형식주의나 미니멀리즘 조소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나 원칙들을 지니고 있는데, 또한 장소특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당신이 작업을 계획할 때 공간과 관련하여 바탕을 삼는 특정한 개념들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 역으로, 공간은 당신의 작업 결과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정소영:내가공간과관련하여바탕을삼는특정한개념은우리가사는세계를이루는공간을형성하는물질과그구조의법칙성을찾고해석하는것이다. 이러한물질의법칙성은발현된형태를통해서만발견될수있다. 내작업에서는특히중력이가장중요하게드러나는데, 이것은물리적세계에귀속되는인간의불가피한상태이기때문이다. 재료를이용하여창작하는시각예술가의상태도마찬가지이다. 이러한법칙이적용되어보여지는형태로인하여형식주의나미니멀리즘을연상할수도있겠다. 하지만내작업의형태는공간, 장소, 환경에대한관찰로이루어진것이기때문에미술의역사적맥락에근거하는개념적조각은아니다. 또한화이트큐브안이건바깥이건, 그장소의맥락을작품속에포함시키는작업을하고있다. 작품을완성시키는것은항상그작품이놓여지는공간이다.

JM:과거에 조소는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범주들에 속해왔다. 아마도 이념을 탈피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당신은 일종의 범주로 받아들여진 조각의 예술사조들로부터 벗어난 어떤 디자인이나 감각의 원칙들에 당신의 작품들이 보다 밀착되어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작품이 추상과 대비되며, 구상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전형이 당신의 작품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가?

정소영:물질로이루어진세계를경험하고그경험중에생성되는감각에따라작품의존재가결정되어진다고생각한다. 이것은일종의작가적유물론이라고할수있겠다. 상상과초월적정신에의거하는창작이아니라, 경험과관찰로부터발생하는감각과현상에대한창작이다. 그러므로앞서얘기했듯이내작업은추상과대비된다. 구상적이라고표현할수는없고구축적이라고할수있겠다.

JM: 최근 당신은 경남 함양에서 열린 <라운드 프로젝트>에 포함될작업 제작을 요청받았었다. 이 작업들은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단체의 엄격한 요구사항들을 지켜야만 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비단 당신의 작업 결과물뿐만아니라, 페스티발리즘과 커뮤니티 아트의 시대 속에 위치한 장소특정적 작업에 대한 당신의 시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정소영:이번프로젝트에서는미술관이나갤러리에서보여줬던나의조각, 설치작업들에비해좀더개념적으로단순화되고공공의기능적인역할을할수있는작업을선보였다. 어떤한장소에영구설치한작업이항상장소특정적작업의성격을띄는것은아니다. 영구설치, 즉작품이그지역의재산으로귀속된다는뜻으로간주하였을때, 영구설치는그장소의특색을연구하고반영하는것에중점을두지않는다. 작품이설치된공간과어울려지는것이물론중요하지만, 나는그장소성, 시간성과별개로독립적으로존재할수있는작업을만들어야한다는생각을갖게되었다. 한국에서진행되는공공미술프로젝트는여러방향이있는데, 내가참여한프로젝트는지역의조사에바탕을둔창작이아닌, 지역의맥락과가능성을새로만들어주는것에의미를두고있었다. 미술을통한젠트리피케이션으로볼수있겠다.

JM: 과거 100여 년간 우리의 자연과 인공에 대한 관념들은 심각하게 재검토되어왔다. 오늘날 종종 인공적이라 여겨지는 것이 유기적으로 생산되기도 하며, 인간이 만든 것은 또다른 자연 법칙의 한 층위일 뿐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분할이 당신의 작업의 핵심인 것 처럼 보이는데, 말하자면 당신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과 같은 용인된 개념들을 뒤집으려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예술가로서, 당신에게 있어 이러한 시도들의 성패는 어디에 달려있다고 보는가?

정소영:이러한시도들의성패를결정짓는요인이무엇인지찾기는어렵다. 나의경우는이러한양가적인현상의법칙을충분히이해하고작가로서그법칙과어떻게반응할것인가가성패를가를것이라고생각한다. 어려운길이지만, 작가의지나친감성과의식을대입하는과잉에서벗어나고, 소위현대사회에서대두되는‘자연친화주의’의모순적상황을정확히인지하고그처럼해석될수있는여지를제거해야한다고생각한다. 자연과인공사이에서발생하는긴장감으로발생하는현상을근거로그두개의축에동시에공존할수있어야된다고생각한다. 그럼으로계속하여질문할수있고, 열려있는하나의장이되어야한다고생각한다.

JM: 한국 현대 미술의 궤적 속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어디에 위치시키는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미국의 조소를 기념비나 표지석과 같은 스스로의 기원으로부터 새로운 장소로 향하는 파열과 탈구의 길이라 정의한 바 있는데, 당신이 보기에 한국 조소의 역사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조소가 향하고 있는 장소는 어디라고 보는가?

정소영:한국조소의역사에대해깊게연구해보지는않았다. 하지만물성에관념을대입하는근대조각이있었고, 그후형상의재현을통하여작가의개념을드러내는조각이있었다면, 나는물성의법칙과작가의자유의지가서로결합되어나타나는현상을‘조각’을통해드러내고있다고할수있겠다. 미국의조소가새로운장소로향하는파열의길이라고했다면, 한국의조소또한분명‘해체’를통하여조소의새로운가능성을실험하였다. 하지만그해체의결과로조소의개념은확장되고다분화되었으며다중적장소성을띄게되었다고생각한다. 내가생각하기에조소가향하는장소는인간의비물질적이고정신적인세계에유물적인존재로그존재성의강화되어위치하여그존재성을유지시킬수있다고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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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 So Young

Chung So Young is a sculptor, who currently lives in Seoul, South Korea, She earned a Diplome national superieur d’arts plastiques (DNSAP) at 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 France. Since then she has had solo exhibitions at Daelim Museum of Art, Seoul (2013), OCI Museum of Art, Seoul (2011), Project Space Sarubia, Seoul (2008), Kumho Museum of Art, Seoul (2007), and Gallery Miss China Beauty, Paris (2006). Her works have been included in group exhibitions such as round project, gallery factory, Seoul (2013), Galapagos, Ilmin Museum of Art, Seoul, Sparkling Secrets, Daelim Museum, Seoul (2012), Sporadic Positioning, Arario Gallery, Cheonan (2012), No.45 Kumho Young Artist, Kummho Museum of Art, Seoul (2011), Space Study, Plateau, Seoul (2011), Unrealized Projects_Architecture of Incompleteness, Space Hamilton, Seoul (2010), Moving Museum, Kumho Museum of Art, Seoul (2009), Outside Perspective, Crawford Municipal Art Gallery, Cork, Ireland (2007), Open Studios 8, Ssamzie Space, Seoul (2007), Avalanches, space &bsp at La Générale, Paris (2007), Apocalypse Now –Intrusion, &bsp at La Générale, Paris (2006), Waiting_workshop, Casino Luxembourg, forum d’art contemporain, Luxembourg (2005). Her most recent work was on view at APMAP 2014 Jeju, Between Waves, at Osulloc Green Tea Farm, and currently she is participating in the residency program and performance at Le Cyclop, Milly-la-Foret, France.

Chung So Young’s work can be best described as non-figurative sculpture. But in fact her work has a tendency towards site-specificity. Her concern with the presence space and the absence of form is clearly a question of site. Where does the work begin and end. So here site is not place, but space. As well, Chung’s earlier work references geology and sedimentation. Using the city of Seoul as a source of information and inspiration Chung’s work shows the life of the city as on in which change is unending. When we talked I was struck by how philosophical Chung was about her ever so material work.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Chung So Young and I had in May 2014.

Julia Marsh: Your work possesses qualities and principles found in Formalist and Minimalist sculpture, while also being situated as site-specific. What are the particular concepts related to space that you draw upon as you plan your works? And conversely, how do spaces impact the outcome of your works?

Chung So Young: The particular concept I draw upon in relation to space is to find and analyze theorder of the materials and structure present in spaces we inhabit. This organization of materials can only be found in emerging forms. As well, because gravity is an inevitability of human existence in the physical world, it appears most especially in my works. It is same for visual artists, who create by using raw materials. Because theses arrangements are adapted and shaped into other forms, it might be possible to associate my work with Formalism and Minimalism. But at their basis my works are not conceptual sculptures based on the historical contexts of art making, but rather the form of my works are based on contemporary observations of space, place, and environment. And it is in the space, where my work is placed that it is completed.

JM: In the past sculpture has fallen under categories like those mentioned above. In this supposedly post-ideological era do you think of your work as adhering to certain principles of design or sensation that fall outside of the accepted categories of sculptural movements? You have described your works as being figurative, as opposed to abstract. Can you explain how this embodiment arises in your work?

CSY: I think the existence of the work is determined by the generated sense during the experience of it in the material world. This can be a sort of authorial materialism. My creation is not in accordance with the imagination and transcendental spirit, but in terms of sense and phenomenon, which occur by experience and observation. So like I said before, my work is not abstract. I cannot say it is figurative either, but I can say it is constructive.

JM: Recently you were commissioned to create works for the ROUND PROJECT in Hamyang-gun, Gyeongnam. These works had to meet strict conditions required by the organization sponsoring the project. How did this experience shape, not just the outcome of the commissioned works, but your perspective on site-specific works in the age of festivalism and community works?

CSY: For this project, I presented work that is conceptually simplified and functionalfor public space, in contrast to the sculptures and installations I present in museums and galleries. As well, permanent installations in a certain places do not always carry the characteristics of site-specific artworks. If we consider the meaning of a permanent installation as an augmented asset to the region, then it may not focus on investigating and reflecting thepeculiarity of the place. Though making work that mixes into the installation space is still important to me, I have been attempting to make work that can independently exist from the character of time and place. Among the many directions of public art projects in Korea, the project I participated was placing meaning on renewing the local context and its possibility, not on creation based on local study. We can call it gentrification by art.

JM: In the last 100 years our concepts of natural and artificial have undergone serious revision. To the point that what is often considered artificial can actually be described as organically produced and that what is manmade is just another layer of the natural order. Such division seem to be central to your work, meaning that your works represent attempts to invert accepted notions, like abstract and figurative, as well as what is natural and artificial. As an artist what is at stake for you in such attempts?

CSY: It is hard to find the primary factor for determining success and failure of these attempts. In my case, I think what is at stake is to understand fully the order of such dichotomous conditions, and how to respond to the order as an artist.Though it is a difficult path, I think we have to get away from excessively substituting the artist’s emotions and consciousness, and accurately recognizetoday’s contradictory situation in cultivating a friendliness to nature, as well as removing the space for such interpretations. Also, despite the tensions between the natural and artificial, I think these two axes should be able to coexist. In this way, it should be an open dialog, one in which questions can be openly and constantly.

JM: How do you position yourself within the trajectory of contemporary Korean art? Do you think the history of sculpture in Korea follows a path similar to that Rosalind Krauss defined for American sculpture: one of rupture and dislocation to a new place from its origins as, say memorial, or marker? Also on the question of influence where do you see sculpture heading over all?

CSY: I haven’t studied deeply the history of Korean sculpture. But if modern sculpture, which substituted materiality for concepts, was followed by sculpture revealing the artist’s concepts through figurative recreation, I would like to say that my work emulates this phenomenon, which is created by combining the material order and the artist’s free will. If American sculpture can be described as following a “rupture and dislocation to a new place,”Korean sculpture, as well has definitely experimented with new possibilities in sculpture through dissolution. However, as the result of this dissolution, I think the concepts found in sculpture have been expanded, diversified, and have taken on the multiplicity of placements. From my perspective, the sculpture that will continue to be relevant is heading to a place where its material being is more fortified in the non-material and spiritual world of hu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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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ub, Moon Melody 2: Eclipse, Palais du Seoul June 6 – 20, 2013

The work of Korean photographer JoSeub has gained a reputation for humorous commentary and serious play. His is never an easy look. You are ask to address the work inspect and discern. There are visual puzzles to be unlock and deciphered. And if you are willing, you might just find there within the frame something of delight and horror, but always an experience. His works, in the photographic canon represent the staged, documentarian, the tableau. Joseub never takes a random shot. His are thorough and exacting, however insanely arranged. His last group of works Moon Melody depicted a man in a crane costume getting up to all kinds of nonsense, from giving piggy back rides to drunk scholars to having sex with a random man in a dilapidated house. Unquestionably, Moon Melody 2: Eclipse provides just as much play and seriousness. Joseub’s large format prints, some arranged in the pattern of a traditional screens, or as diptychs show old men and women playing on beaches, camping, and hiking in the woods. However these old people are costumed players. Younger men dressed up not only as old men, but as North Korean military. These images beg many questions but the first is: what is going on here?! The answer to the question revealed itself slowly in the exhibit. An obvious fiction, perhaps more accurately surrealist dream is played out across these photographs. These figures that time forgot emerge from a land that time also forgot. And while they appear ready for a fight, Joseub’s “old men” dressed in tattered infantry uniforms are seemingly aware that the fighting ended over 60 years ago. The forgotten place is the demilitarized zone (DMZ), a gash of wild growth running across the Korean peninsula, designed to keep the peace. Reading these images is tricky because Joseub only give you clues, with nothing direct to hang onto. One is left wondering did I really see that old pregnant lady about to give birth on a mountain cliff? Or were those crazy old men really preparing to take the beach? Joseub forces you to read and see that there in his pictures is a kind of truth. The war goes on how ever ridiculous it may seem, waged by old men who remain invested in its lasting eff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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