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Taeyoon

Kim Taeyoon received his BFA from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n Film, Video, New Media. His first solo show opened at One and J. Gallery on October 17, 2014. He has been included in group shows at One And J. Gallery, Seoul (2014 and 2013), Salon de H, Seoul (2014), Space 15th, Seoul (2011) Seoul Art Cinema, Space Cell (2006), Gallery Busker, Chicago (2006), Rodan, Chicago (2006) and Enemy Gallery, Chicago (2006).

I first met Kim Taeyoon in 2007 when he was at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n the following years his work was focused on commercial projects and innovative and new uses of video and media technology. We became reacquainted in 2009 through mutual friends and have since become good friends. Following his development as a media artist I realized that Kim is doing something beyond just making videos, that his work taps into the dominance of media and it’s role in our lives by transforming it into representations that show the ebb and flow of data used and forgotten. On the surface this density of information and data, however obscured, are playful, and engaging, even hypnotic images. Like our experience as users of the Internet and media Kim’s works draw upon what is not visible. They act as commentary on the disconnection between information programming and user experience, and the indirection of contemporary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Although digital there is a sense of analog urge for connection within his works especially ones like Chit Chat (2012 and 2013) where the work is based on social media.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Kim Taeyoon and I had in June 2014.

Julia Marsh: As a student I understand you started working in narrative film and video. Your work now is almost entirely non-linear constructions in digital media. Can you describe the process or intentions by which you made this shift?

Kim Taeyoon: I wanted to simplify my working process. Rather than piling up my thoughts and present them altogether, I wanted to work spontaneously as they came. For me, (narrative) films were too complex in the process, at that time. But the influence of time is deeply rooted in me and I intend to use it in my work.

JM: You use fairly complicated algorithms that result in relatively simple shapes and hypnotic patterning. I see a relationship between the labor used, and trance music culture. Is there some spiritual connections between the work and the results? Or is it in the work alone?

KTY: I wanted show movement, in which the boundary of the start and the end are soft, as something constantly goes round and round. I have been looking for something like a movement, which we can just see purely without the expectation on the ending with the estimation of what will show up next, so that this led me to use algorithm. As well as I began wanting to simplify the shape/figure to emphasize the movement. Actually, the algorithm is not that complicated. Many parts of my work are influenced by the electronic music and sampling culture. Music culture takes a big part of me.

JM: Each of the pieces from 2013 seems to employ color and pattern akin to Minimalism or Color Field Painting. Would it be accurate to say that despite your practice being digitally generated that you think like a painter?

KTY: For some of my works, I plan a sort of system, in which the software actually draws the picture. Most of them have a structure that randomly generates a simple movement. I wanted to show elements like a certain motion, rhythm, and cut and dissolve in film, as a temporal image without narrative. I do not think myself as a painter, but I am under the influence, hugely, by painters.

JM: Your work Chit Chat (2012/2013) taps into social media and our usage of the same, while other works tap into the patterns of data produced on the Internet. What was the inspiration for Chit Chat and do you think that since making that piece social media has changed?

KTY: The reason I chose to use social media in my work is not to present the recorded objects, but to show the things that are presently captured, the data, which is generated in real time. The data can be many repetitive movements with the blurred edge of beginning and ending, as well as temporal images. The two words that are used in Chit Chat, in 2012, love and hate, were used so frequently in 2014 that the computer could not display the effect, on screen, in real time. The users and traffic increased that much. I am also now accessing more often, than at that time.

JM: One aspect of your work is that you interface with what is going on around you very easily; making use of the Internet and sources like Twitter for generating your images. What are you responding to in your environment?

KTY: I spend a major amount of time each day looking at the laptop screen. I do my work with the computer, receive information through the Internet and communicate with people through social media. And then a day just passes by. Naturally, the line between reality and virtual reality is ambiguous. I feel virtual reality has become tangible now, and the reality is becoming more and more something elusive. I am thinking about the meaning of relative time, which is under the influence of the environment like this. I wonder about those effects, which are created by fast Internet speeds and the information that is always accessible, the illusions that show on the electronic signboards on the street, the rhythm of the neon light and the faster transportation. I contemplate on how we can adapt ourselves to the real space that is increasingly narrowed, and the territory of virtual reality that is more and more growing.

JM: You described your work as being the wrinkle, or fold in the surface of digital media, as something that disrupt the surface. Can you elaborate on this?

KTY: The texture of the screen is slick. In the present day, where the technology is more developed, the pixels in the screen are denser and the image becomes smoother. It may seem that the speed of technological progress is faster and everything becomes dense, but like most of the computers have some bugs and report errors, there are creases hiding in the microscopic level of the external slickness. Digital media has an exceeding advantage on finding and showing those things.



Julia Marsh: 처음 출발이 예술가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혹은 왜 예술가로 변모하게 된 것인가?

 장민승: 10대때 부터 지나치게 록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당시에 처음 결성한 록밴드에 멤버로 지금 함께 협업을 하고 있는 정재일을 기타리스트로 만났다. 당시의 우리 음악은 서양의 헤비메탈등의 록음악을 모방하는 커버 록밴드였다. 이후 정재일은 천재성을 인정받아 정규교육을 떼려치우고 프로뮤지션의 길로, 나는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진학 후 학교에서 별다른 신선함을 받을 수 없었다. 97년도였는데 홍대앞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뮤지션들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의 교류가 넘쳐났다. 그 시절 나는 인디록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약 1년간 전국의 각종 페스티발과 행사를 다녔고 간간히 정재일과 영화음악에 참여했다. 이후 98년 처음 간 런던여행에서 전자음악에 크게 심취하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심지어 홍대앞에서 클럽을 잠시 운영하기도 했었다. 이런 경험으로 서브컬쳐들을 온몸으로 세례 받으며 20대를 통과했다. 99년 군대를 가게 되었고 제대 후 스물 세살에 친분이 있던 음악분야의 대선배들과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당시는 한국영화의 황금기였기때문에 짧은 기간에 약 20여편의 장편상업영화의 프로듀서, 코디네이터로 영화필드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음악듣기와 상업적인 활동에서 받게되는 피로감이 몰려왔고 대안으로 전공과 유사한 가구만들기를 취미 삼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교육과정에서 미니멀아트에 심취해 있었고이를 방탕으로 한 디자인의 가구들을 정식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디자인과 제작을 병행하는 사람이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데뷔가 매우 순조로웠다. 당시만해도 가구제작자가 나의 천직이라고 여겨졌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테이블은 꾀나 인기가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공간을 엿볼 수 있게 되었고 스른즈음에서는 그 공간들에 놓인 사물이 지닌 여러 맥락들과 그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들을 비교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간혼 사물에 대한 편견이 지나치게 생기는 내 자신이 역겨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직업적 활동의 배경이 없었던 사람들은 비교와 편견 없이 사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가구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3년동안 주한대사관들의 집무실을 촬영하는 작업과 다양한 공간을 대형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 결과가 <A multi-culture> (2010 One and J. gallery)와 <수성십경 in between times>(2010 아트라운지 디방) 이다. 이 지점이 20대에 겪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들을 바탕으로한 나의 조형언어를 처음으로 발표한 전환점이다. 

JM: 당신의 작업은 아주 명확한 한계를 설정하려는 경향을 가지는데, Willing+Dealing은 예외적으로 그렇지 않다. 그러한 이유가 무엇인가?

 장민승: 정확히 지적한 것 같다. 나는 지나치게 형식미와 그것에서 오는 쾌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편이다. 내러티브가 물론 중요하지만 단 한장의 이미지나 음악 혹은 그것들이 지닌 형식미와 텍스츄어(디자인에서는 피니쉬)가 때론 내러티브를 능가하는 메세지를 준다고 믿어왔다. 그것들은 어찌모면 내가 어려서 부터 각분야의 메인필드를 직접 경험해 보고 거기서 보았던 테크닉과 협업방식을 습득해왔다고 본다. (‘상림’ 같은 경우는 이때의 경험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한 작업이었을것이란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비평가들은 나의 작업에 대해서 말하기를 가구를 만들던 사진을 찍던 뉴미디어를 다루는 작업을 하던 비교적 공통적으로 들어나게 되는 형미식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작업과정들은 대부분이 과잉으로 시작했다가 최소한의 것들만 남기기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보는이가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기를 바랬다. 일본 문학장르 중에 하이쿠(haiku)라는 매우 간결한 정형시가 있는데 그 간결함과 암시성 때문에 보는이 마다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즉 작업을 내 놓을때 마다 의견은 있지만 발언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다. 혹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형식의 틀에서 갖혀 있은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윌링앤딜링의 전시의 경우 전과는 달리 매우 유연하게… 그리고 별도로 전시를 위한 추가적인 생산을 하지 않고 내게 남겨진 발표되지 못한 잉여들(사진, 가구, 조각등등)을 편하게 벌려놓고, 조합해서 혼종적인 내 모습(작업)을 거칠게 한번 들어내 보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전시공간도 수직과 수평이 어긋나고 거친 곳을 선택했다. 특히 <가구팔자> 전시에서는 내가 10년 만에 발표한 TABLE 2도 함께 놓였는데 그 것이 나오기 까지의 일종의 리서치 작업의 결과인 <A Multi-Culture> , <수성십경 In between Times> 의 B-cut들이 함께 전시되었고 이 전시를 통해 내가 사물을 보는 방법이 전과는 매우 달라져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동안의 나의 작업이 큰 깨우침을 준 것을 그 전시를 통해 느꼈기에 일종의 지난 10년의 결산 회고전 처럼 느껴졌다.

JM: 당신은 사진 작업 외에도 장재일과의 협업을 통해 여러 사운드 작업 또한 진행해왔다. 이러한 종류의 미디어 작업은 최근 부쩍 지원을 받고 있고 여러 전시장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예를 들어 상림과 같은 프로젝트를 구현하는데 직면했던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가?

 장민승: ‘상림’을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직면하고 어려웠던 문제는 이작업의 형식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였다. 상림은 공공미술이 갖고 있는 일률적인 형식과 그것을 구축하는 관행의 문제점을 극복해 보고자 중앙기관관 지방기관이 전문가와 함께 힘을 모아 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시범사업이였다. 그리고 우리의 대상지인 경남 함양의 상림공원(상림숲)은 지명에서 알수 있듯이 공원인 동시에 숲이기도 하고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근린생활공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져다 놓아 경관을 훼손한 이 지역에 아무것도 놓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그리고 공공미술을 제안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내구성(영구성)도 없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공공미술 작업을 하자고 했을때 기존 방식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에 이 것을 설득해 나아가는 과정들이 초기에는 가장 어려웠던 지점이다.

JM: 상림과 문래, 그리고 제주도에서 작업한 세 개의 사운드 작품은 또한 장소특정적이라고도 불릴 법 하다. 당신은 장르 사이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모두 같은 것일 뿐인가?

 장민승: 장민승+정재일의 작업을 가끔 짧게 요약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사실 우리도 우리 작업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힘들고 굳이 무엇무엇이라거나 장르라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상림과 문래동 그리고 제주에서 했던 작업은 장소적 특성도 다르고 그 작업이 이뤄진 배경도 너무 다르며 때문에 이를 경험한 관객들도 다를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자율적으로 작업한 작업들과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커미션 작업들 사이에는 구별되는 지점이 있음을 최근에 느꼈다. 이 질문을 받고 연상하게 되는데 앞으로 계획되는 우리의 작업들은 전과는 구분되는 변화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민승+정재일의 작업을 어떤 장르로 구분하기 보다는 그냥 우리의 작업으로 기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먼 훗날 우리의 작업이 하나의 스타일이 아닌 장르가 되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그것이 미술이라고 인식되지 않았으면 한다.

JM: 각각의 당신 작업들은 주택이라든지 건설현장같은, 일종의 사회적 관심사가 밑에 깔려 있다. 당신의 최근작인 Willing + Dealing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장민승: 앞의 1.2. 질문의 대답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듯 하다. 예술가를 비롯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환경(도시, 사회)에과 관계 맺고 있을 것인데 일반사람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별견하고 발언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디자이너로서 이십대를 보내면서 발견한 나의 매우 서구화된 디자인 언어가 혼란스러웠고 그것을 해소하고자 하는 뜻에서 인류학자들이 필드워크를 나가듯 하는 뉴타운 지역을 비롯해 많은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에 이것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시작한 것들은 아니였고 하다보니 프로젝트가 된것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어쩌면 프로젝트가되어 전시했던 작업들 보다. 윌링앤딜링에서 선보인 이미지들은 정제되지 않은 것들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수도 있었겠다. 참고로 <가구팔자>는 상업적인 용도의 가구를 만들면서 남은 목재스크랩들, 사진과 조각의 B-cut 그리고 전시장 주변에서 주워온 가구파편이나 이미지들을 즉흥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 곳에 놓인 하나의 개별 설치들은 하나의 요소이며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큰 작업이였으면 했다.

JM: 당신은 상업적인 작업과 예술 창작 사이를 비교적 쉽게 오가는 것 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미술과 상업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민승: 미술가로서 많은 돈을 벌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술과 상업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좀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한국은 미술을 포함해 예술시장이 너무 작다고 생각된다. 이 것은 단지 예술품 거래가 규모가 작다는게 아니라 예술가가 예술분야와 상업적인 분야 구분하지 않고 용역비가 상대적으로 너무 작게 형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술가가 예술해서 먹고살기가 어려우니까 다른일을 해야되기 마련이라고 생각된다. 내 주변의 많은 뮤지션들 보면 대중음악 세션에서 부터 자신의 고유음악 활동까지 매우 다양하게 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작업습관을 잘 지켜내며 꾸준한 창작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내가 만난 많은 미술가들은 이렇게 되면 소위 떼가 묻는다고 부끄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의 경우 쉽게 오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나의 경우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악이 생계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생계가 되고나니 호기심이 디자인으로 옮겨갔다. 또 디자인이 생계가 되니 여기서 습득된 시각을 바탕으로 다소 늦게 미술을 하게되었다. 사실 지금은 미술작가가 직업이 되어 버렸고 그 일에 시간을 보내는게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 졌지만 다행인 것은 이 일은 전혀 나에게 생계가 되어주지 못한다. (특히 점점 비물질적이고 특정한 경험을 통해 소통하는 일시적인 작업에 매력을 느끼기에..) 때문에 이 일이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만약 이 것이 주요 수입원이 된다면 나는 분명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나와 애증의 관계인 상업영화, 대중음악, 디자인 분야는 미술보다는 훨씬 큰 자본과 신기술 그리고 훈련된 이성적인 사람들이 모인다. 나는 이 곳으로 부터 단순히 돈만 버는 것이 아닌 소재의 발견을 비롯해 누구나 가르쳐 주지 않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 서면으로는 질문을 방향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분량이나 적절한 대답이 아니라면 답변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재구성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Julia Marsh: 학생 때는 서사영화와 영상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신의 현재 작업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비선형적 구조를 띄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하게 된 계기나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김태윤: 작업을 하는 과정을 좀 단순화하고 싶었다. 생각을 쌓아놓고 모았다가 한번에 보여주는 방식보다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작업하길 원했다. 그때 나에게 (서사)영화는 너무 복잡한 과정들 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때의 영향이 깊게 박혀있고 그것을 작업에 활용하려고 한다.

JM: 당신은 몹시 복잡한 알고리즘을 이용하는데, 그 결과물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드러나거나 최면을 거는 듯한 무늬를 띈다. 나는 당신이 작업에 투여하는 노동이 트랜스음악 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작업과 결과물 사이에 어떤 정신적 연결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작업 그 자체일 뿐인가?

김태윤: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작과 끝의 경계가 아련한 것들. 계속 돌고 도는 무언가. 끝에 대한 기대없이 다음에 무언가가 나올거라는 예측없이 순수하게 바라볼수 있는 움직임 같은 것들을 찾다보니 알고리즘을 이용하게 되었고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모양/형태도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알고리즘 자체도 사실 그렇게 복잡한것은 아니다. 나의 많은 부분들은 전자음악 또는 샘플링 문화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음악문화는 나에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있다.

JM: 2013년도에 작업한 개별 작품들은 미니멀리즘이나 컬러 필드 페인팅과 흡사한 색채나 무늬를 채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당신이 디지털 연산을 통해 작업을 만들어내지만 스스로를 화가로 여긴다고 말해도 되겠는가?

김태윤: 나의 일부 작업들은 소프트웨어 자체가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시스템을 구상 한다. 대부분 단순한 움직임을 랜덤하게 생성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움직임이나 리듬 영화에서의 컷이나 디졸브 같은 요소들을 서사 없이 시간적 이미지로써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화가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화가들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색은 감정을 갖고있다고 생각한다.

JM: 당신의 작업 Chit Chat (2012/2013) 은 소셜 미디어와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들에 다가가는 한편, 다른 작업들은 인터넷에서 생산된 정보의 유형들을 활용한다. Chit Chat 작업에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이후 소셜 미디어가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김태윤: 소셜미디어를 작업에 사용 하기로 한건 녹화된 대상이 아닌 현재 포착되는 것들 로써의 데이터,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데이터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였다. 그것 또한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한 수많은 반복적 움직임들이고 시간적 이미지이다. 2012년에 chit chat 에 사용된 ‘love’와 ‘hate’ 두 단어를 2014년에는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화면에 보여줄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만큼 사용자와 트래픽이 늘어났다는 이야기 이다. 나도 그때 보다 지금 훨씬더 접속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JM: 당신 작업의 또다른 측면은, 당신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주 쉽게 접속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활용한다든지, 이미지를 생성하는데 트위터를 원료로 쓰는 것 처럼 말이다. 주어진 환경속에서 당신은 무엇에 응답하는 것인가?

김태윤: 나는 하루에 아주 많은 시간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지낸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받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지나간다. 자연스럽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고 있다. 가상은 이제 만질수 있는 것이 되었고 현실은 점점 더 만질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환경으로 부터 영향을 받는 상대적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빠른 인터넷속도와 언제든 접속 가능한 정보들, 거리의 전광판에 보여지는 환상들, 간판불빛의 리듬, 점점더 빨라지는 교통수단등이 어떤 영향을 만들고 있을까. 점점 좁아지는 현실적 공간과 점점 커지는 가상공간의 영역에서 어떤식으로 적응 해나갈수 있을까 생각한다.

JM:당신은 당신의 작업을 디지털 매체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나 접힌 면과 같은, 표면을 어지럽히는 어떤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말해줄 수 있겠는가?

김태윤: 스크린의 질감은 매끈하다. 기술이 발전된 요즘에는 스크린 속의 픽셀은 더 촘촘해지고 이미지는 더 매끄러워진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모든것이 촘촘해지는것 같지만 대부분의 컴퓨터들도 버그가 있고 에러가 나듯이 겉으로는 매끄러움에도 미세한곳에는 보이지 않는 주름들이 생기고 있다. 디지털 매체는 그런것들을 찾아내고 보여주는데 아주 유리하다.


Jang Min Seung

Jang Min Seung earned his BFA and MFA from Chung-ang University, in Seoul, South Korea. He has had solo exhibitions at Space Willing and Dealing, Seoul (2014), One and J. Gallery, Seoul (2012 and (2010), Art+Lounge Dibang, Seoul (2010), and Seomi & Tuus, Seoul(2008 and 2006). He has been included in group exhibitions at Seoul Museum of History, (2014), Kumho Museum, Seoul (2013), Gillman Barracks, Singapore, (2012), Culture Station 284 Seoul, (2012), Salon de H, Seoul, (2011), KIMUSA, Seoul (2009), Seoul Design Week, Fuorisalone, Milano, Italy (2007), Cais Gallery, Seoul (2006). In 2010 Jang was awarded a grant for Visual Arts by the Seoul Art and Culture Foundation, the SeMA Young Artist support program by the Seoul Museum of Art and a grant for Mullae Arts Plus by the Seoul Art and Culture Foundation. He was named the 2006 Korea Design Award: Young Product Designer of the Year.

Jang’s work is sometimes collaborative and other times not, however his work is generally sensitive and carefully constructed from observation of his subjects. Jang is one of a younger generation of artists that has experience that cuts across disciplines and does not adhere to the gallery as a main form of exhibition. I first became acquainted with Jang’s work when he showed large-scale photographs of windows in abandoned apartments titled In Between Times. These photographs of windows looking out onto nature are much like paintings of nature from an earlier age. Initially installed in an abandoned house, the buildings structure underscored the in between quality of their context. Jang’s background in design and music inform his work in photography, sculpture, and sound. His is a hybrid, one that developed as a natural outcropping of his interests. Jang is nothing if not thorough in his approach and attitude towards making. It is this drive that makes his works definitive.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Jang Min Seung and I had in June 2014.

Julia Marsh: I understand you did not start out as an artist. How or why did you make this transition?

Jang Min Seung: Since I was a teenager, I was deeply into rock music, and I when I formed my first rock band, I met my collaborator, Jung Jae Il, who was the band’s guitarist. Our music back then was just copying Western heavy metal and rock numbers. Sometime after, Jung was noticed for his brilliant music and quit school to take the path of a professional musician, while I became an art student at a university. But after I got in, the school did not feel particularly fresh or new to me. It was 1997, and Hongdae was, more than today, filled with musicians and artists of various fields, as well as their exchanges. At that time, I was a bassist in an independent rock band and played for many festivals and events over the whole country, and time to time, participated on some soundtracks with Jung. Also after my first trip to London in 1998, I became obsessed with electronic music, and because of this, I even ran a club for a short time. With these experiences, I passed my 20s embodying the subcultures of the time. I started my military service in 1999, and after I was discharged, when I was 23, I founded a soundtrack production company with my friends, who are great musicians. The Korean film scene was in its golden era at that time, so that I could participate in the field as a producer and coordinator for about 20commercial films, in a short period of time. In response to the fatigue that came from listening to music as a job and commercial activities, I started to make furniture as a hobby, which was similar to my major. When I was in the college, I was into minimalism and so when I formally launched the furniture line I do so in this style. Looking back, there were almost no competitors, who were both making and designing furniture, so it was a very smooth debut for me as a designer. At that time, I thought I was meant to be a furniture maker. Naturally, I stopped working on the music related jobs. My tables were very popular so that I could freely observe my clients’ living spaces, so when I was about 30 I began to compare the different contexts of the things in spaces and the cultural taste of the owners. Sometimes I had severe prejudice on these things, which made me feel disgusted by my self. So I began wondering, if someone who doesn’t have a career background like mine, could they look at things without comparison or prejudice? So I stopped making furniture and started to take photographs ofthe offices of different embassies in Korea, and taking large scale pictures of various spaces for three years, which resulted in A Multi-Culture (2010) at One and J. Gallery, and In between Times (2010) at Art+Lounge Dibang. Based on the various cultural experiences in my 20s, this was the turning point at which I presented my formative language.

JM: Your work tends to have very concrete parameters with the exception of Willing + Dealing? Why is that?

JMS: I think your point is very accurate. I tend to consider formal beauty andits pleasure as very important, sometimes too much. Although the narrative is important, I believethat the message of one image, musical piece, or their formal beauty and texture (or finish for design) sometimes exceeds the narrative. Maybe this thought came from my direct experiences in the different focuses of my youth and the techniques and collaborative styles that I acquired from these interactions. (Later I had thought that Sanglim would never be possible without these experiences.) Critics say of my works, that they find a common formal beauty whether the work is a piece of furniture, a photograph, or in a new media form. My working process often starts with excessiveness and goes through steps that leave the minimum, and I hope the audience can find more stories because of this process. In Japanese literature, there is the poetic genre Haiku, which is a very simple verse with a fixed form, and because of its brevity and implication, the readers can have different personal interpretations. So every time I released my work, I intended to have an opinion, but not to state it. Sometimes this feels like dogma, which use to I lock myself in my own formal structure. But in the case of the exhibition in Space Willing + Dealing, I intended to be different from my earlier work and be very flexible, which was to not make any additional works for the exhibition and just comfortably lay out and mix the leftover pieces that were not released, (including photographs, furniture, and sculptures), and roughly show my hybrid identity, or rather my work. To realize this, I chose a coarse and vertically and horizontally distorted space for the exhibition. Especially, the for exhibitionHidden Track, I released my work TABLE 2, which I’ made for 10 years, and also exhibited research materials, like A Multi-Culture and B-cuts from In between Times. I could feel that the way I look at things had widely changed from before. A big awakening about my series of works came to me through this exhibition, so that I felt it was a kind of retrospective of mypast 10 years.

JM: Besides your photographic works, with your collaborator Jang Jae Il, you have done many sound works. This type of media work is increasingly finding its support and a place in exhibition. What are some of the challenges you have faced in realizing a project like Sanglim?

JMS: The biggest and the toughest problem that I confronted, while I was processing Sanglim, was the perception of how to look at the form of this work. Sanglim was a pilot project with the cooperation of central and regional organization and professionals to overcome both the standard form of public art and the practices that solidify the form. And the objective space, Sanglim Park in Hamyang, Kyungsangnam-do, is a park and also a forest, which its name implies,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natural monument and a neighborhood park. The scenery was already cluttered with many objects, so we suggested not placing anything, and instead make an invisible work, and one without the most important attribute for proposing public art: durability (or permanency), so that it will perish as the time passes. At the beginning, the process of convincing for this was the most difficult thing.

JM: The three sound pieces that you worked on Sanglim, Mullae and at Jeju Island, could also be called site-specific. Do you think there is a need to distinguished between genres or is it all the same?

JMS: From time to time, I have been asked to summarize the work of Jang Min Seung + Jung Jae Il. In fact, it is hard for us to explain our works and we do not explain it as a certain thing or a genre, but we do think that we have been showing results that no one else ever did. The works in Sanglim, Munlae-dong, and Jeju are different in their site-specificity and background, so that the experiencing audiences are also different; in turn I recently felt there is a disparity between works that are freely made and those that are commissioned for certain purposes. This question is suggestive of the change in our future works, which will be different from previous works. So I would rather not classify the works of Jang Min Seung + Jung Jae Il, and just anticipate our works. In the distant future, I hope our work becomes a genre, not a style. I even wish it will not be recognized as art.

JM: Your works each have an underlying social concern, like housing or construction. Would you say this is true for your latest work Willing + Dealing?

JMS:I think the answer will overlap a lot with my previous answers. All individuals, including artists, are making connections to the environment (city, society) they are living, but different from the others. I think artists actively find it and make a statement about it. I was once confused with my very Westernized design language, which I found in my 20s as a designer. To resolve this, I took many pictures of new town areas and other scenes, like an anthropologist does fieldwork. These were not for public eyes at the beginning, yet some of them became projects, while others did not. Maybethe reason why the images I showed at Space Willing + Dealing could be seen that way, is that they were less refined than the other works that has become projects and exhibited. Correspondingly, Hidden Track was an improvisatory mixture of leftover wooden scraps from making commercial furniture, while B-cuts were photographs and sculptures, and the furniture fragments and images that I took near the exhibition site.Each installation I put there was one element, and I hoped the exhibition site to become one big work.

JM: You seem to move between commercial work and art making with relative ease. What do you think is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commerce in Korea?

JMS:Because I don’t have much experience making money as an artist, I cannot really speak about the relation between art and commerce in Korea. But what I feel is that the size of the art market in Korea is too small. This is not just about the size of the artwork deals, but the price for the artist is also too small, no matter in the art field or commercial field. This is why artists naturally tend to have another job. Simply, it is hard to make a living from making art. When I see the many musicians around me, they commonly do different activities, like sessions for popular music, and their own music. Through this, I see they keep their work habits and persist in their creative works, yet I saw many artists who think this is shameful, and that they are tainted by such work.

For my case, it may look easy to come and go, but actually it is a very difficult matter. There was a time that the music, which I was interested in, became my means of living, and after that my interest moved to design. And then design became the means of living, then I had my late start on art based on the view I learned from design. Now being an artist became my job and I spend most of my time doing it more than before, but the good thing is that this work cannot be my means of living at all. (Especially because I am more and more attracted to ephemeral works, which is non-materialistic and communicating through some particular experiences.) So I think this is the work, which I can keep doing. If this becomes a major moneymaker, I will definitely feel bored. Commercial films, popular music, and the design field, which are in a love-hate relationship with me, have bigger capital, newer technology and more trained and reasonable people than in the art field. I am not just making money from them, but also discovering the materials and learning many things that nobody can teach me.



Julia Marsh: 당신의 작품은 형식주의나 미니멀리즘 조소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나 원칙들을 지니고 있는데, 또한 장소특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당신이 작업을 계획할 때 공간과 관련하여 바탕을 삼는 특정한 개념들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 역으로, 공간은 당신의 작업 결과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정소영:내가공간과관련하여바탕을삼는특정한개념은우리가사는세계를이루는공간을형성하는물질과그구조의법칙성을찾고해석하는것이다. 이러한물질의법칙성은발현된형태를통해서만발견될수있다. 내작업에서는특히중력이가장중요하게드러나는데, 이것은물리적세계에귀속되는인간의불가피한상태이기때문이다. 재료를이용하여창작하는시각예술가의상태도마찬가지이다. 이러한법칙이적용되어보여지는형태로인하여형식주의나미니멀리즘을연상할수도있겠다. 하지만내작업의형태는공간, 장소, 환경에대한관찰로이루어진것이기때문에미술의역사적맥락에근거하는개념적조각은아니다. 또한화이트큐브안이건바깥이건, 그장소의맥락을작품속에포함시키는작업을하고있다. 작품을완성시키는것은항상그작품이놓여지는공간이다.

JM:과거에 조소는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범주들에 속해왔다. 아마도 이념을 탈피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당신은 일종의 범주로 받아들여진 조각의 예술사조들로부터 벗어난 어떤 디자인이나 감각의 원칙들에 당신의 작품들이 보다 밀착되어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작품이 추상과 대비되며, 구상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전형이 당신의 작품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가?

정소영:물질로이루어진세계를경험하고그경험중에생성되는감각에따라작품의존재가결정되어진다고생각한다. 이것은일종의작가적유물론이라고할수있겠다. 상상과초월적정신에의거하는창작이아니라, 경험과관찰로부터발생하는감각과현상에대한창작이다. 그러므로앞서얘기했듯이내작업은추상과대비된다. 구상적이라고표현할수는없고구축적이라고할수있겠다.

JM: 최근 당신은 경남 함양에서 열린 <라운드 프로젝트>에 포함될작업 제작을 요청받았었다. 이 작업들은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단체의 엄격한 요구사항들을 지켜야만 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비단 당신의 작업 결과물뿐만아니라, 페스티발리즘과 커뮤니티 아트의 시대 속에 위치한 장소특정적 작업에 대한 당신의 시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정소영:이번프로젝트에서는미술관이나갤러리에서보여줬던나의조각, 설치작업들에비해좀더개념적으로단순화되고공공의기능적인역할을할수있는작업을선보였다. 어떤한장소에영구설치한작업이항상장소특정적작업의성격을띄는것은아니다. 영구설치, 즉작품이그지역의재산으로귀속된다는뜻으로간주하였을때, 영구설치는그장소의특색을연구하고반영하는것에중점을두지않는다. 작품이설치된공간과어울려지는것이물론중요하지만, 나는그장소성, 시간성과별개로독립적으로존재할수있는작업을만들어야한다는생각을갖게되었다. 한국에서진행되는공공미술프로젝트는여러방향이있는데, 내가참여한프로젝트는지역의조사에바탕을둔창작이아닌, 지역의맥락과가능성을새로만들어주는것에의미를두고있었다. 미술을통한젠트리피케이션으로볼수있겠다.

JM: 과거 100여 년간 우리의 자연과 인공에 대한 관념들은 심각하게 재검토되어왔다. 오늘날 종종 인공적이라 여겨지는 것이 유기적으로 생산되기도 하며, 인간이 만든 것은 또다른 자연 법칙의 한 층위일 뿐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분할이 당신의 작업의 핵심인 것 처럼 보이는데, 말하자면 당신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과 같은 용인된 개념들을 뒤집으려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예술가로서, 당신에게 있어 이러한 시도들의 성패는 어디에 달려있다고 보는가?

정소영:이러한시도들의성패를결정짓는요인이무엇인지찾기는어렵다. 나의경우는이러한양가적인현상의법칙을충분히이해하고작가로서그법칙과어떻게반응할것인가가성패를가를것이라고생각한다. 어려운길이지만, 작가의지나친감성과의식을대입하는과잉에서벗어나고, 소위현대사회에서대두되는‘자연친화주의’의모순적상황을정확히인지하고그처럼해석될수있는여지를제거해야한다고생각한다. 자연과인공사이에서발생하는긴장감으로발생하는현상을근거로그두개의축에동시에공존할수있어야된다고생각한다. 그럼으로계속하여질문할수있고, 열려있는하나의장이되어야한다고생각한다.

JM: 한국 현대 미술의 궤적 속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어디에 위치시키는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미국의 조소를 기념비나 표지석과 같은 스스로의 기원으로부터 새로운 장소로 향하는 파열과 탈구의 길이라 정의한 바 있는데, 당신이 보기에 한국 조소의 역사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조소가 향하고 있는 장소는 어디라고 보는가?

정소영:한국조소의역사에대해깊게연구해보지는않았다. 하지만물성에관념을대입하는근대조각이있었고, 그후형상의재현을통하여작가의개념을드러내는조각이있었다면, 나는물성의법칙과작가의자유의지가서로결합되어나타나는현상을‘조각’을통해드러내고있다고할수있겠다. 미국의조소가새로운장소로향하는파열의길이라고했다면, 한국의조소또한분명‘해체’를통하여조소의새로운가능성을실험하였다. 하지만그해체의결과로조소의개념은확장되고다분화되었으며다중적장소성을띄게되었다고생각한다. 내가생각하기에조소가향하는장소는인간의비물질적이고정신적인세계에유물적인존재로그존재성의강화되어위치하여그존재성을유지시킬수있다고생각한다.


Chung So Young

Chung So Young is a sculptor, who currently lives in Seoul, South Korea, She earned a Diplome national superieur d’arts plastiques (DNSAP) at 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 France. Since then she has had solo exhibitions at Daelim Museum of Art, Seoul (2013), OCI Museum of Art, Seoul (2011), Project Space Sarubia, Seoul (2008), Kumho Museum of Art, Seoul (2007), and Gallery Miss China Beauty, Paris (2006). Her works have been included in group exhibitions such as round project, gallery factory, Seoul (2013), Galapagos, Ilmin Museum of Art, Seoul, Sparkling Secrets, Daelim Museum, Seoul (2012), Sporadic Positioning, Arario Gallery, Cheonan (2012), No.45 Kumho Young Artist, Kummho Museum of Art, Seoul (2011), Space Study, Plateau, Seoul (2011), Unrealized Projects_Architecture of Incompleteness, Space Hamilton, Seoul (2010), Moving Museum, Kumho Museum of Art, Seoul (2009), Outside Perspective, Crawford Municipal Art Gallery, Cork, Ireland (2007), Open Studios 8, Ssamzie Space, Seoul (2007), Avalanches, space &bsp at La Générale, Paris (2007), Apocalypse Now –Intrusion, &bsp at La Générale, Paris (2006), Waiting_workshop, Casino Luxembourg, forum d’art contemporain, Luxembourg (2005). Her most recent work was on view at APMAP 2014 Jeju, Between Waves, at Osulloc Green Tea Farm, and currently she is participating in the residency program and performance at Le Cyclop, Milly-la-Foret, France.

Chung So Young’s work can be best described as non-figurative sculpture. But in fact her work has a tendency towards site-specificity. Her concern with the presence space and the absence of form is clearly a question of site. Where does the work begin and end. So here site is not place, but space. As well, Chung’s earlier work references geology and sedimentation. Using the city of Seoul as a source of information and inspiration Chung’s work shows the life of the city as on in which change is unending. When we talked I was struck by how philosophical Chung was about her ever so material work.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Chung So Young and I had in May 2014.

Julia Marsh: Your work possesses qualities and principles found in Formalist and Minimalist sculpture, while also being situated as site-specific. What are the particular concepts related to space that you draw upon as you plan your works? And conversely, how do spaces impact the outcome of your works?

Chung So Young: The particular concept I draw upon in relation to space is to find and analyze theorder of the materials and structure present in spaces we inhabit. This organization of materials can only be found in emerging forms. As well, because gravity is an inevitability of human existence in the physical world, it appears most especially in my works. It is same for visual artists, who create by using raw materials. Because theses arrangements are adapted and shaped into other forms, it might be possible to associate my work with Formalism and Minimalism. But at their basis my works are not conceptual sculptures based on the historical contexts of art making, but rather the form of my works are based on contemporary observations of space, place, and environment. And it is in the space, where my work is placed that it is completed.

JM: In the past sculpture has fallen under categories like those mentioned above. In this supposedly post-ideological era do you think of your work as adhering to certain principles of design or sensation that fall outside of the accepted categories of sculptural movements? You have described your works as being figurative, as opposed to abstract. Can you explain how this embodiment arises in your work?

CSY: I think the existence of the work is determined by the generated sense during the experience of it in the material world. This can be a sort of authorial materialism. My creation is not in accordance with the imagination and transcendental spirit, but in terms of sense and phenomenon, which occur by experience and observation. So like I said before, my work is not abstract. I cannot say it is figurative either, but I can say it is constructive.

JM: Recently you were commissioned to create works for the ROUND PROJECT in Hamyang-gun, Gyeongnam. These works had to meet strict conditions required by the organization sponsoring the project. How did this experience shape, not just the outcome of the commissioned works, but your perspective on site-specific works in the age of festivalism and community works?

CSY: For this project, I presented work that is conceptually simplified and functionalfor public space, in contrast to the sculptures and installations I present in museums and galleries. As well, permanent installations in a certain places do not always carry the characteristics of site-specific artworks. If we consider the meaning of a permanent installation as an augmented asset to the region, then it may not focus on investigating and reflecting thepeculiarity of the place. Though making work that mixes into the installation space is still important to me, I have been attempting to make work that can independently exist from the character of time and place. Among the many directions of public art projects in Korea, the project I participated was placing meaning on renewing the local context and its possibility, not on creation based on local study. We can call it gentrification by art.

JM: In the last 100 years our concepts of natural and artificial have undergone serious revision. To the point that what is often considered artificial can actually be described as organically produced and that what is manmade is just another layer of the natural order. Such division seem to be central to your work, meaning that your works represent attempts to invert accepted notions, like abstract and figurative, as well as what is natural and artificial. As an artist what is at stake for you in such attempts?

CSY: It is hard to find the primary factor for determining success and failure of these attempts. In my case, I think what is at stake is to understand fully the order of such dichotomous conditions, and how to respond to the order as an artist.Though it is a difficult path, I think we have to get away from excessively substituting the artist’s emotions and consciousness, and accurately recognizetoday’s contradictory situation in cultivating a friendliness to nature, as well as removing the space for such interpretations. Also, despite the tensions between the natural and artificial, I think these two axes should be able to coexist. In this way, it should be an open dialog, one in which questions can be openly and constantly.

JM: How do you position yourself within the trajectory of contemporary Korean art? Do you think the history of sculpture in Korea follows a path similar to that Rosalind Krauss defined for American sculpture: one of rupture and dislocation to a new place from its origins as, say memorial, or marker? Also on the question of influence where do you see sculpture heading over all?

CSY: I haven’t studied deeply the history of Korean sculpture. But if modern sculpture, which substituted materiality for concepts, was followed by sculpture revealing the artist’s concepts through figurative recreation, I would like to say that my work emulates this phenomenon, which is created by combining the material order and the artist’s free will. If American sculpture can be described as following a “rupture and dislocation to a new place,”Korean sculpture, as well has definitely experimented with new possibilities in sculpture through dissolution. However, as the result of this dissolution, I think the concepts found in sculpture have been expanded, diversified, and have taken on the multiplicity of placements. From my perspective, the sculpture that will continue to be relevant is heading to a place where its material being is more fortified in the non-material and spiritual world of humans.



Julia Marsh: 당신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 특히 “컨테이너 시리즈 – 모내기 (2010)”를 주목했다. 이 작품은 노동과 계층, 뿐만아니라 위치와 신체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긴장들을 응축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특히 이 시리즈와 관련하여, 당신의 주제의식에 있어 노동 문제와 경제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JoSeub   photo: sitecited

JoSeub    photo: sitecited

조습: <모내기> 작업은 평생을 용접공으로 살았던 아버지가 2010년에 돌아가시면서 유품으로 물려준 공업용 코팅장갑으로 모내기 하는 시늉을 연출해서 만든 사진작품이다. 1930년대 1940년대 태어난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이 강박처럼 기억하고 실천에 옮긴 건설과 개발, 국가 발전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치룬 개인의 희생과 역사적 반복들을 모티브로 작품이다. 2008년 남한 사회에 새로운 정권(신자유주의) 등장했을 때부터 첨예하게 갈등을 이루고 있는 노동 문제와 사회적 계급의 차이들을 그리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굉장히 순응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는 부분 이였다. 전세계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작업이 출발 되었다.

JM: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스스로 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작가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사회에서 정치적 미술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또 그것의 잠재력과 취약점은 무엇인가?

조습: 나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작가로 규정하기 보다는, 작가와 작품은 무엇인가를 먼저 말하고 싶다. 작가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순간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분석과 반성을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그것의 결과물이다. 전세계에서 남한은 다른 1세계 국가하고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많은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제3세계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의 순간들을 이해해야 했고, 순간들은 지난 40년간의 식민시대, 전쟁, 남북 분단, 군사독재, 지역 갈등 등이 있겠다. 남한은 그런 구조를 안고 살수 밖에 없는 나라이다. 그리고 현대 미술에서 가장 미덕은 사회에 대한 비판성과 인간적 반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JM: 당신의 사진들은 역사적인 사건들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1980년대 한국에서 떠오른 정치적인 미술들의 유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습:  당시 정치적인 미술과는 나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이에 있어서는 크게 고려하지는 않는다. 1980년대와 지금은 많은 부분 차이가 있고 나는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가 국내 민주화란 격변의 시기였다면 지금은 세계화의 격변을 치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오는 자만심과 오만 그리고 물질화된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JM: 최근 작품일수록 조명이 좀 더 차갑거나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따뜻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이미지들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그리고 당신의 작업방식에서 노리는 효과는 어떤 것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조습: 컨테이너Container 시리즈는 밀폐된 공간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 차갑거나 건조하다라는 평가를 들었다.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명확하기 위해서 그리고 컨테이너라는 금속의 차가운 물질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약간에 은유로 보아도 좋다.

가장 최근에 작품 ‘일식’ Eclipse 시리즈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촬영을 했는데 차갑지만 회화적이고 동양적인 정서와 색채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조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시리즈인데 해가 완전히 가라진 밤에 전부를 촬영했다. 작업방식에서 노리는 효과는 시리즈 별로 각각 다른데 최근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회화’적인 사진, 미학적으로 풍부한 ‘감성’을 지닌 사진을 만드는데 두고 있다. 거기에 아이러니 irony

와 위트 wit을 작품에 어떻게 넣을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

JM: 사진을 사용하는 아티스트로서 여전히 우리가 이미지로부터 충격을 받고 불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또, 당신에게 있어 다른 것들과는 달리 사진이라는 매체만이 갖는 특성은 무엇인가?

조습: 요즈음의3D 영화를 보면 앞으로 영화산업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가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면 많은 지금까지의 일반 영화들은 고전 영화처럼 보일 것이다. 어쩌면 사진이나 여러 순수 미술도 앞으로의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현대의 기술과 과학 앞에 미술의 역할과 위치는 무엇일까?’ 가 정확한 질문이 되겠다. 많은 기술과 자본이 투입된 산업예술 앞에서 순수 미술 혹은 순수 사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산업예술에서 보여줄 수 없는 ‘정서’와 ‘감흥’,’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뿐이 없다고 생각한다. 회화, 사진, 조각 모두 마찬가지이며, 내가 사진이란 매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런 현실 상황 안에서 사진이란 매체로 회화적인 구조와 다른 여러 가지 상황들이 서로 엉켜있는 어떤 서사가 있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JM: 한국적 상황 그리고 이와 관련된 주제들이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는가?

조습:  작품이 한국의 이야기만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다. 정서나 문화의 차이는 약간 있겠지만 사실은 전세계의 벌어지는 보편적인 이야기들이다. 인권, 자본, 자유주의, 빈부의 격차, 이주민, 차별, 도시, 정치권력, 인종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가 공유되는 것들 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업은 후기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주체의 이성적 응전이 불투명해지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성과 폭력, 논리와 비약, 비탄과 명랑, 상충되는 개념들을 충돌시키면서 현실의 이데올로기에 구멍을 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충돌지점에서 뜻밖의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한 주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쾌하면서 불온한 상상력을 통해 내가 연출하고 있는 것은, 이성적 주체의 안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호 이해의 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가로 질러야만 하는 어떤 불모성에 대한 것이며, 불모성 속에서도 꿈꿔야 하는 새로운 주체이행과 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Julia Marsh: 과거에 당신의 작품은 반복을 통해 지워진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최근의 작품들은 인간, 혹은 자신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한편, 좀 더 소비자 사회의 특성에 대한 지향을 담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최근작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난다주: <모던 걸> 작업에서는 반복과 복제를 표현 방법으로 근대성 안에서 익명화, 획일화 된 스스로를 자조의 어조로 확인하고자 했다. 검은 옷과 선글라스의 착용도(과거의 인쇄 매체에서 인물의 눈을 검은 선으로 가려 얼굴을 지우는 것과 같이) 마치 그림 문자가 표현하는 인간으로 읽혀지길 원했던 장치였다. 하지만 그런 설정은 의도했던 방향과는 반대로 작가의 개성으로 해석되어 이미지 안에서 역할을 행하는 인물을 작가와 동일시하는 시각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개성으로 고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의 사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 또, 나의 몸으로는 다양한 배역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표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익명이 강화되고 캐릭터가 고정된 가면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관람자들이 작업을 바라볼 때, 이미지 안의 인물이 작가 자신인지, 고용된 모델인지, 그 인물의 가면 속 진짜 얼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

내 작업의 내용적 측면에서 소비는 중요한 요소이다. 구체적으로는 근대성과 서구화에서 비롯된 소비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알다시피 한국의 서구화는 자연스럽게 주변국과의 접촉을 통해 일정한 시간을 두고 생성되었다기보다는 일찍이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에 의한 강제통치와 함께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정치적으로 식민지 시대는 마감되었지만 서구로부터의 제도, 기술, 사상, 문화 등의 유입은 현재까지 비슷한 속도와 양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던 걸> 연작이 서구 문화의 유입 초기부터 지금까지의 특징을 전반적으로 다루었다면, <The Day>작업들은 서구로부터 소개된 기념일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되면서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 기이한 소비의 형식에 집중했다. 기념일 문화는 물질적인 소비뿐만 아니라 각종 이념을 동반하는 시간의 소비를 함께 요구한다. 특히 근래 한국의 기념일 문화는 결핍의 해소를 기억의 환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소망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것 같다.

JM: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사진기술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신의 작업이 상당히 영화적으로 보이는 것 또한 명백하다. 영화와 사진이라는 두 매체의 역사가 뒤얽혀 있듯이, 당신의 작업에서도 그들은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전통들과 기술들이 어떤 측면에서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는가?

난다주: 나의 작업이 영화적으로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내 작업이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여러 시간의 기록들이 압축된 이미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말처럼, 나는 작업을 계획하고 과정을 진행할 때, 사진과 영화를 비롯한 시각매체의 특성들에서 실마리를 얻거나 의도적으로 작업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나는 사진매체로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특히 시각매체들이 의도하는 ‘사실성’과 ‘구경거리spectacle’가 근대 이후 사회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프로파간다, 이미지로 대체되는 소유욕, 일상의 노출을 통한 자아상 만들기, 감시와 고발, 구경하기와 구경거리 되기 등 시각매체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현상이 내 작업에 중요한 소재이며 질문이며 형식이 된다.

JM: 당신은 작업과정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특히 최근의 작업 결과물들은 조형적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당신이 어떤 종류의 사진을 찍을 지, 그리고 어떻게 당신의 작업에서 발생하거나 나타난 오브제/이미지들을 구성할 지를 결정할 때, 이미지를 만드는 현상학에 대한 당신의 지식이 그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난다주:  ‘이미지를 만드는 현상학에 대한 지식’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작업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하는 과정과 방법에 대한 서술이 이 질문의 답이 되길 바란다.

한 작가의 작업이 통일된 형식을 가지기도 하지만 나는 작업의 내용에 따라 가장 적절한 형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사진은 대상을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이며, 그런 면에서 사진은 일종의 수집이다. 나의 작업은 수집된 이미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질료로 수집한 대상을 재구성한다. 초기의 작업이 행위의 기록들을 여러 장 촬영하여 재조합하는 형식이었다면 최근의 작업은 사물들과 인간을 구성하여 하나의 조형물로 만들어 촬영했다. 외형적으로 형식과 작업 과정에 많은 변화가 느껴지겠지만 완성된 이미지가 이미지의 조합이냐, 사물의 구성이냐의 차이일 뿐 대상이 누군가에 의해 배치된 우연의 기록이 아닌 의도적인 ‘떼기’와 ‘붙이기’로 만들어진 작업이라는 점에선 같은 맥락을 유지한다. <모던 걸> 연작에서는 동질성와 시간의 중첩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이미지 조합을 선택했고, <The Day> 작업에서는 기념일의 연극적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무대의 형식을 빌었다. 두 작업 간의 차이가 있다면 내가 <The Day> 작업 과정에서 보다 물질적인 체험을 원했다는 것이다. 기념일 작업을 통해 기념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의식 행위를 모방할 뿐 아니라 그 행사를 위한 경제적 시간적 소비, 시장 방문과 고르기, 음식물의 냄새와 맛, 일회성 물질의 (사진처럼) 허무한 폐기까지도 경험할 수 있었다. 전시가 설치 과정의 기록물이나 조형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수행은 기념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의 최종적인 공개를(전시를) 설치물이 아닌 사진으로 택한 이유는 시점과 크기, 색과 질감의 표현, 인물의 자세 등을 목적된 상태로 고정시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을 계획할 때에는 어떠한 형태로,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얼마나 미세한 부분까지 표현되어야 할지를 기계의 성능, 제작 가능한 시스템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예를 들어 <The Day> 연작에서는 모든 사물의 세부를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기 위해 완성된 설치물을 조각조각 나누어 촬영하고 촬영된 이미지를 이음새 없이 다시 조합하는 방법으로 완성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은 눈이 인식하는 거리감과 시점에 미세한 혼란을 일으켜 주술의식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의도하기도 했다.

JM: 당신의 작품들 중 특히 ‘모던 걸’연작은 소비자 문화와 그것이 여성상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자각을 반영한다. 어떤 면에서 당신의 대상화하는 방식은 여성주의적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난다주: 근대성과 근대인에 관한 작업의 대상을 특별히 ‘모던 피플’이나 ‘모던 보이’가 아닌 ‘모던 걸’이라는 여성으로 선택한 이유는 ‘제국’을 남성에, ‘피식민성’, ‘모방하는 자’의 위치를 ‘여성’에 비유하려는 의도일 뿐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 것은 아니다.

내 작업에서 ‘모던 걸’은 다중의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모던 걸’은 서구의 도회적 문명이 가져 온 새로운 생활 방식을 받아들인 (특히 극동아시아의) 여성 일반을 지칭한다. 그들은 전통사회에서 부여된 역할보다는 서구화와 더불어 유입된 자아실현이라는 개념을 수용하여 저마다의 개성 발현에 열중했으며, 서구의 신여성(New Woman)을 모델삼아 그것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옮기려 했다. 유행(‘여우털 군단’, ‘장신운동’), 취향(‘콩다방’), 이념의 선택(‘냄비’), 자본(‘녹색이 좋아’, ‘촬리씨의 호객행위’) 등의 근대성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 유전되고 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은 전통사회에서의 주어진 삶과 서구의 근대적 삶을 놓고 갈등했던 세대라면 현대인은 빠르고 거센 변화의 흐름 속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선택해야만 적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모던 걸’연작에 등장하는 인물은 근대의 ‘모던 걸’인 동시에 현대인이며 현대사회의 구성원인 나의 모습이 중첩되어 있다.

JM: 당신의 0303’과 0505’연작은 한국의 문화에 대한 깊은 불만족감을 보여준다. 두 연작 모두 몹시 양식적이며, 상징적 층위를 지닌다. 일종의 비평으로 보이게끔 의도한 것인가?

난다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비평적 시각은 소비 사회 안에서 인간이 생산과 소비를 위한 천박하고 어리석은 소모품으로 존재한다는 자각보다 인간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형성한 질서와 제도가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러우며, 내가 그 안에 속해있고 나 또한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감정에서 비롯된다. 나는 <The Day> 연작에서 기념일을 비롯한 모든 의식과 행사들이 인간 스스로 만든 질서와 제도 안에서 욕망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의 무대이며 전이된 형식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JM: 당신의 감추어진 신분, 좀 더 정확하게는 대중에 공개된 페르소나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작품에서 그 자아를 어떻게 위치시키는가?

난다주: ‘인식’과 ‘의미’는 내 작업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이름짓기’는 의미를 규정하는 행위로 제도, 지식의 권위, 여론 등은 이름 짓는 자, 구분하는 자, 개념을 정리하는 자의 위치에 있으며 그 대상은 사물이나 사람 뿐 아니라 시간, 개념 같은 추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지금까지의 작업은 명명되어지고 구분되어지고 어떤 개념으로 정리되고 형식화 되어진 대상의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부과된 ‘이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결과물들이다.

이름과 얼굴이 존재를 식별하고 증명하는 기능을 한다고 볼 때,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수동적인 일정 역할을 부정함과 동시에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자 하는 자기애적 행동이다. 본명이 도대체 뭔가? 왜 사람들은 그것을 그의 본질인 것처럼 굳이 밝히려 하는가? 우리는 모두 이름 없이 태어났다. 이름은 사회가 식별을 위해 달아 놓은 표식이며 혈족의 낙인이다. 나는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익명’, 또는 ‘가면’ 뒤에 숨어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언제든지 다른 이름(다른 정체성)으로 도주가 가능한 유동적 상태이길 원한다.

나는 모든 작업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작업이 온전히 나의 것이기를 원한다. 작업 안에서 스스로 피사체가 되는 것도 그런 의도에서 비롯된다. 또, 표현하고자 하는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연출가 자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작업을 통한 비평의 불편한 자리에서 나 자신만 제거되어 빠져나오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작품 안에 위치하는 대상은 문제를 제기하는 나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너이며, 전혀 다른 누구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미지 안의 대상을 ‘나’라고 하기보다는 ‘난다’, ‘저 사람’이라고 칭한다.


Interview with JoSeub

JoSeub   photo: sitecited

JoSeub   photo: sitecited

JoSeub earned both his BFA (1991) and MFA (2001) at Kyung-Won University, Seongnam, South Korea. He has shown his work extensively, with recent solo exhibits at Palais de Seoul, Seoul (2013); Multispace EMU, Seoul (2012); and CAS, Osaka, Japan (2010); Gallery 2, Seoul (2008); and Space Beam, Incheon, South Korea (2007) among others. His works have also been included in numerous group shows including Hurroo Hurroo, Goeun Museum Of Photography, Busan (2013); Humor:us, Space K, Daegu (2013); PlayTime, Culture Station Seoul 284, (2012); Here Are People, Daejeon Museum of Art, Daejeon (2012); Platform Festival, Incheon Art Platform, Incheon, South Korea; Korean Rhapsody – Crossing the History, Leeum Museum, Seoul (2011); Eye of the Needle, Space99, Seoul (2011); Good Citizenship Award, Art Space Pool, Seoul (2010); Peppermint Candy: Contemporary Art from Korea,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Gwacheon, South Korea and National Museum of Fine Art, Buenos Aires, Argentina (2009); Art Toward The Society: Realism in Korea Art 1945-2005, Fuchu Art Museum, Tokyo (2008) and Fukuoka Asian Art Museum, Fukuoka, Japan (2007); The 2nd Novosibirsk International Festival of Contemporary Photography, Novosibirsk State Museum, Novosibirsk, Russia (2008); Parallel Realities – Asian Art New, Blackburn Museum and Art Gallery, Blackburn, UK (2006); Incongruent: Contemporary Art from South Korea, Richard Brush Gallery, New York (2005); and Imaginary Nation, Kyonggi Cultural Foundation Arts Center, Suwon, South Korea (2004).

JoSeub’s recent works are sometimes irreverent tableaus that show a more than different view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and history. Especially his series Moon Melody and Moon Melody 2: Eclipse (2013) show a delightful sense of play, while expressing the awkward dynamics and contest between traditional culture and modern life, and the painful truths about the lasting conflict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respectively. I first saw Joseub’s work in the show Eye of the Needle (2011) curated by Shin Sungran, which focu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r and the conditions of capital. From that exhibit until now Joseub’s works give viewers something important to untangle and read. The works included in that show were especially compelling in the manner he transformed everyday experiences and objects into compositions with the kinds of underlying violence pervading social relations in late Capitalism.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a conversation JoSeub and I had in February 2012.

Julia Marsh: When I was first introduced to your work one of your images in particular “Container series – Rice planting” (2010), caught my attention. This image seems to summarize the many tensions that exist between work and status as well as position and bodies. Can you say how labor relations and economies factor into your subject matter, especially this series?

JoSeub: The work, Rice Planting, is a photograph depicting the act of rice planting using rubber-coated, industrial gloves from my late father, who died in 2010. The motif in the work here is based on the personal sacrifices and historic repetitions of my fathers’ generation, born in the 1930s and 40s, who obsessively memorized and practiced the ideologies of construction, development, and national prosperity. I wanted to refer to the situation of labor and the differences between social classes, especially after the new political regime, with its adherence to neo-liberalism,came to power in 2008, making the conflict more and more acute. What I felt was strange at that time, was that most Koreans became very adaptable at the time. I think this condition is common internationally. This work was instigated from my curiosity as to the source of this separation.

JM: Perhaps it is obvious, but do you think of yourself as a political or ideological artist, and if so what is the role in society for political art? What are its potentials and shortcomings?

JS: Before defining myself as a political or ideological artist, I want to talk about artists and artworks, first. An artist, is a person who studies the space and moment s/he lives in now, while analyzing and contemplating how they are made. Artworks are the result of this activity. In the world, I think there is a huge gap between South Korea and the other developed nations. (And surely there are people in the developing world who live in greater agony). To understand this place and the time we live in, I had to understand such historic moments as the forty years of Japanese colonial rule, the war, the division of Korea, military dictatorship, regional conflict, etc. Thus, South Korea is the country, which has to live with this configuration. I think the biggest virtue of contemporary art is its ability to critically view society with humane introspection.

JM: Since many of your images have historical references, I want to ask you what do you consider the legacy for the arts from the political uprisings of the 80s in Korea?

JS: We share a lot in common, the political art at that time and my own, but I think there are many differences, as well. I don’t really think about those differences. Now is very distinct from the conditions of the 1980s, but I think I am addressing those distinctions. The 1980s convulsed with the urge for domestic democratization; while now we are experiencing rapid globalization. The changes in humanity toward vanity, arrogance, and materiality since that period are certainly topics of my work.

JM: When I look at your more recent images I think your lighting, especially reflects a coldness, or a dryness, but definitely a lack of warmth. Can you talk about how you construct your images, and to what effect to you aim at in your method?

JS: Because Container series were shot in the closed space, some people say it is rather cold or dry. I wanted to do it that way to clarify my intention, and also, reveal the cold metallic materiality of the container. It can be read as a bit of metaphor for the reality we live in.

Eclipse series, my most recent work, shot in a slightly different way, I tried to depict the picturesque, with an oriental mood, and color. I actively used lighting in this series; shooting at night without the sun. I aim for different effects with the method in each series, recently I am bacame interested in picturesque photographs, which have rich aesthetic sensibility. And I am always looking for a way of how to put irony and wit in my work.

JM: As an artist that uses photography do you think we can still be shocked or disturbed by images? Also what does photography give you as a medium that others do not?

JS: Looking at the 3D movies nowadays, such changes in the film industry show its potential future. If we accept this situation, many movies made up till now will immediately look out of date. So maybe, the future of the photography and fine art will reflect a similar condition.

Therefore, I think the real question should be: what is the role and position of the fine art, in light of contemporary technology and science? Facing the commercial art, which is infused with technology and capital, I think the only way fine art can survive is to express the sentiment, inspiration and emotion, which the commerical art cannot show. It is then the same for the painting, photography and sculpture; so in this reality, I use photography as my medium for its pictorial structure, while the different entangled situations produce certain narratives.

JM: Can you elaborate on whether the Korean context and related subject matters transcend local borders, and are therefore universal?

JS: From the beginning, I have never thought my works are stories only for Korea. Even though there are some emotional and cultural differences, theses are the common stories that happen all over the world: the human rights, capital, neo-liberalism, rich-poor gap, immigrants, discrimination, city, political power, race, etc.

My work is rooted in the juncture where a rational confrontation of my “selfbecomes opaque (ambiguous) in post capitalist reality. I am making openings in the ideology of reality while creating conflicts between contradictory concepts such as reason and violence, logic and jumping of logic, grief and cheer.

I am most interested in highlighting the ironic ego that meet outside of this point of collision. Through my cheerful yet disturbing imagination, I present a type of barrenness that must be overcome to obtain a mutual understanding—not to be understood as an easy utopia based on the constructs of reasoning, but a new implementation of ideology and communication that must be idealized amidst this barrenness.


Interview with Nanda Choo

Nanda Choo   photo: sitecited

Nanda Choo   photo: sitecited

Nanda Choo is the photographer of the series Modern Girl and The Day. Many here in Korea know her for her concealed identity, which is a mask of dark sunglasses and a typical bob haircut. However behind that stereotypical image is nothing so cliché. Nanda’s work is both glossy and raw. She draws us into her flashy images only to be repelled by their unpleasant content. Nanda Choo received her BFA (1993) from Duksung Woman’s University, Korea and her MFA (2009)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ulture and Art, at Sangmyung University, Korea. She has had solo exhibitions at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2012); Trunk Gallery, Seoul (2011); Boan Inn, Seoul, (2011); Kunst Doc Project Space, Seoul (2009); and Gana Art Space, Seoul (2008). She has been included in group shows, such as Landscape of Moment, Seongnam Arts Center (2012); Confession, Ilmin Museum of Art (2011); Cross-Scape, Kumho Art Museum, Seoul, JeonBuk Art Museum, Wanju, and Goeun Art Museum, Busan, (2011); Human Faces, National Museum of Singapore, Singapore (2010); On the Line, The British Council, London (2010); Aspects of Korean Contemporary Photography, National Taiwan Museum of Fine Arts (2010); Art-Cinema, Seoul Museum of Art, Seoul, (2009); Sway in the Space, Daegu Photo Biennale, Deagu Culture and Art Center, Daegu, (2008); and Dong-Gang Photo Festival, Yeongwol-eup, Yeongwol (2007).

Nanda Choo’s work is both glossy and raw. Her flashy images draw us in only to repel us by their unpleasant content, which we cannot deny we are more than familiar. Many here in Korea know her for her concealed identity, which is a mask of dark sunglasses and a typical bob haircut. However, behind that stereotypical image is nothing so cliché. In fact her mask is rather subversive. By donning it Nanda Choo is not so much a persona but a figure for projection. Her mask dispenses with the earnestness often erroneously associated with artists and their trades and forces us to deal with the work she makes rather than the person who makes it. When I sat down with her last winter our conversation centered a great deal on depictions of women and the way media functions as a means of altering perception.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the conversation we had in last year.

Julia Marsh: In the past your work has, been an exploration of the self, erased through repetition. Your more recent works eschew the person or self for more pointed material about the nature of consumer society. Can you describe how you came to make this more recent work?

Nanda Choo: In Modern Girl, I used repetition and duplication paradoxically to identify the anonymous and unified self in modern society. The black dress and the sunglasses (akin to erasing a person’s identity with a black bar over the eyes, as publishers did in the past) were devices used to make viewers read the figures as pictorial symbols. However, this use ended up going against my intention, because this figure was interpreted as self-portraiture, and therefore produced the idea that the persona in the images was the same as the artist. I wanted neither: to be fixed in a character, nor reveal my private self. As well, because I was physically limited in my ability to express various roles, I had to find another method of expression. To solve all these problems, I came naturally to use the mask, which underscores anonymity and fixes the character. As a result, audiences concentrated on the story in the artwork, rather than focusing their interest in finding out whether the character in the image was a model, or the artist, or the real face behind the mask.

As the matter of course, consumption is a very important element in the substance of my work. Precisely, I am dealing with consumption in the context of modernity, and westernization. As is known, westernization in Korea was suddenly instigated during the dictatorship of modernized Japan (1910-1945), rather than gradually formed in a natural progression through the interactions between neighboring countries. Politically the colonial period ended nearly 70 years ago, but to this day the introduction of systems, technologies, ideologies and culture from the West has continued to proceed at a similar speed and extent. If The Modern Girl series covered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the early period of westernization to the present, with The Day series I am concentrating on bizarre consumer patterns, which originate in western holiday culture, but appear in Korea in mutated and indigenized forms. This holiday culture not only demands material consumption, but also time, which accompanied with different ideologies. This recently adopted anniversary culture in Korea seems particularly accelerated by the wish to resolve a perceived deficiency through prompting memory.

JM: When we met we discussed the technical histories of photography. It also is obvious that your work is highly cinematic in effect. The history of these two mediums film and photography are intertwined, and in your work they also appear inextricably linked. From what perspective have these traditions and technologies informed your work?

NC: I think the most noticeable reason that my work looks cinematic is that it has a narrative, and is a condensation of images from different periods. Like you said, when I plan and process my work, I take hints from the characteristics of visual media, such as photography and film, or intentionally include them in my work. As a person who works with the photographic medium, I am especially interested in how visual media, which aims at reality and spectacle, has influenced people and society since the modern era.  Phenomena occurring through visual media such as propaganda; possessive desires substituted with images; creating self-images by showing daily life; surveillance and accusation; as well as looking at and being looked at, besides being very important materials for my work, are also questions and forms for my investigations.

JM: I understand that the connection you have with your process is involved and intense, and the outcomes of your recent works especially can be defined as sculptural. I am interested in how your knowledge of the phenomenology of making images has influenced what kinds of pictures you take and how composing these object/images occurs or happens in your work.

NC: Sometimes an artist has a unified form in his artworks, but I consider different forms on different artworks to find the most suitable method. Photography is a means of making objects into images, and in that sense, it is a kind of collection. My work is not reciting the collected images, but reconstructing collected objects into materials that express my thoughts on the subject. If the form of my earlier works were based on taking the several pictures of the action and recombining them, my recent works are photographs of constructions composed with humans and objects. Though you can see a massive change in the structural form and process of my work, the only difference between these series is whether the completed image is a combination of images, or a construction of objects, in they are made with the same intentional cut and paste, and are not any coincidental record of objects arranged by someone else. In Modern Girl series, I chose to mix the images to show the homogeneity and overlapping time in the most suitable way, and in The Day, I used staging to emphasize the theatrical acts of the various holidays.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is that I wanted a more materialistic experience for the process of The Day. Through working on the various anniversaries I mimicked the rituals of those preparing the events, as well as the financial outlay and time spent visiting markets selecting, smelling and tasting the food, and the emptiness of discarding the used objects (like photographs). The exhibition didn’t include the records of the installation process or the actual structures, but this practice was very helpful to understand this anniversary culture. Additionally, the reason I chose the photographs over the installations for exhibition, was to fix the viewpoint, size, the expression of texture and color, the posture of the figure, etc., to match my intentions.

When I planned the work, I consider the capacity of the machine and the system’s manufacturing capabilities to determine the shape, size and details for each image. For example, in The Day series, I divided the structure into sections and took pictures of each; then recombined the images seamlessly to show the details of each object spectacularly. With this method, I also intended to draw a microscopic confusion between the distance that the eye recognizes and the actual distance to make the audience feel dizzy, like they are participating in an exorcism.

JM: Your works especially the Modern Girl series reflects awareness of consumer culture and its impact on images of women. Can you address how your constructions of objectification are critical of limits on personal freedom, as opposed to one informed by feminism?

NC: The reason I chose the female figure to project modernity and the people who live in, “the modern girl,” rather than “modern people” or “modern boy,” was to compare the empire to the male, and the colony and the imitating person to the female, and not to look at from the feminist view.

My work, Modern Girl obviously has multiple meanings. In general, the modern girl, especially in the Far East Asia, refers to the women who accepted the new lifestyle of the western urban culture. They embraced the concept of self-realization, which came through westernization, and thereby concentrated on revealing their own personality. Making the New Woman as the roll model, they wanted to raise their status by imitating it.  Modernity, represented in trends (Fox Fur Army, Fancy Movement), taste (Bean Café), choice of ideology (Pot), and capital (I Like Green, Tout of Mr. Charlie) are still applied in today’s society as an inheritance.* To mention the difference, the people from the early 20th century had a conflict between the given life from the traditional society and the modern life from the western world, but contemporary people have to live the life of constant choices to fit in the flow of fast and forceful changes. The character of Modern Girl series is the modern girl of the modern time, and at the same time, she overlaps with my experience, a contemporary person in this society.

JM: Your works 0303 and 0505 series signify a deep dissatisfaction with Korean culture. They are both highly stylized and layered with symbolism. Do you intend them to be seen as critiques?

NC: My critical view on the world comes from the order and system, which the human created for surviving and breeding, are violent, selfish and greedy, and the uneasy feeling of admitting that I am in the system and also carry that attributes, rather than the self-awareness that the human being exists as a vulgar and stupid expendable for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in the consumerist society. With The Day series, I wanted to say that every ceremony and event, including anniversaries, are staged opportunities to express utmost desire within the rules and system created by human beings, only I show them in a transformed structure.

JM:  Can you talk about your concealed identity, or rather your public persona? And how you position that self in the work?

NC: The recognition and meaning is the most essential question of my works. Naming is an action to define a meaning, and in that action, the system, hegemony of the knowledge and public opinion are in the position to name, divide and organize the notions, and the object can be anything that the human recognizes, including a thing or a person to the abstract things like the time and the concept. Till now, my works are the results of posing the questions on the given name, from the point of the object which is named, divided, organized and formalized.

When the name and face function to distinguish and recognize the existence, choosing not to use the real name is a denial to the role which is passively given, and an act of narcissism to actively define the self. What is the real name? Why people try to reveal it as though it is the essence of him? We all are born without names. The name is a tag that the society gave us to distinguish, and a mark of the blood relation. By using a name that cannot prove the identity, I intentionally reveal that I am hiding behind anonymity, or a mask. And I want to remain in the fluid status that I can run to another name (a different identity) whenever I want.

I try to manage the whole working process by myself, because I want the work to be mine as a whole. The reason I act as a subject in the work is from this intention. In this way, the person who can best perform a director’s intentions is the director. But more importantly, I do not want to escape from the uneasy place of criticism through the work. I do not want to make somebody else the subject. The person in the work can be me, who proposes the problem, you, who watches it, or somebody else. So, I call the subject in the image Nanda, or that person, rather than me.

* Titles in parentheses are names of Nanda Choo’s art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