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란

Julia Marsh: 당신의 스페이스99에서의 근무 경험은 아주 정치적이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거나 간과된 사회 문제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어떻게 동양의 화조화를 공부하던 미술사 전공자가 그러한 진흙탕 속 현실로 뛰어들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는가?

신성란 photo: J. Marsh

신성란 photo: sitecited

신성란: 석사 논문으로 조선시대 화조화를 주로 그린 작가를 연구했으면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전시 공간인 space99에서 일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합니다.

서구 근대화 이후 현대 한국 미술은 경제 개발 계획처럼 ‘국제적인 수준에 걸맞는’ 이라는 명제 아래에 형식과 내용뿐만 아니라 예술 정신 또한 서구 예술 경향을 쫒아 변화해 왔습니다. 이는 예술 이외에 한국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문제로 아시아 전체에서 보여 지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 고유 문화의 역동성과 생명력이 무엇인지 찾아 가는 과정을 우리가 처한 문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통로로 파악했습니다.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한국 고유미의 기준이 되는 근대화 이전의 조선시대 미술을 대학원에서 연구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도 전통에서 근대로 변화하는 19세기라는 변혁의 시대를 선정하고, 그 시대의 대표 화목인 화조화를 통해 미적 감상의 영역보다 이를 통해 나타나는 전통 시대의 문화 수용 방식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동시대 미술 전시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동양의 옛 고전과 사상 문화에 대한 세미나는 지속해 왔습니다.

연구와는 달리 업무들은 동시대 미술의 변화와 본질을 알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인턴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갤러리나 국공립 미술관이 지닌 시장성과 관제성이 없으면서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추구하는 공간으로서 space99를 선택하였지요. 반면에 저예산과 더불어 예술 작품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사회 운동 단체의 홍보 공간이기도 한 복잡한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직면했었습니다. 그러나 기획을 중시하는 공간으로 비주류를 위한 사회 정치 미술의 다양한 실험과 연대 모색이 가능했다는 점은 이 공간에서만 취할 수 있었던 큰 성과입니다. 저는 아직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과 국립현대미술관 인턴, space99의 경력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색들은 언젠 가는 큐레이터로서의 저의 정체성을 이루는 토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JM: 이러한 정치적 맥락이 강한 곳에서 일한 경험이 예술을 좀 더 추상적인 사회적 압력들로부터 별개로 분리하여 생각하려는 당신의 능력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하는가?

신성란: 크게 변화가 있지는 않습니다. 예술의 특정 형식에 구애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삶과 사람을 소리를 담아내고 성찰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더욱 관심이 있습니다.

JM: 일반적인 전시공간과는 달리, 평화를 장려하고 비폭력을 주창하는 목적을 지닌 평화박물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전시에서 그리고 나아가 사회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신성란: space99는 전시공간이지만 평화박물관이라는 비영리 사회단체로 평화운동을 위해 복무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특정 목적을 지향한다는 것은 소재주의에 빠져서 예술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폭력적인 사회 상황을 지양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바라는 평화 운동과 예술이 만날 때 예술이 큰 테제 아래에서 제한되지 않게 예술성을 확대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로 제가 주력한 부분은 연대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 문제를 다룰 때 작가들을 직접 그 노동 현장과 소리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노동 문제를 다룰 때 관념적인 접근을 피하고 노동자들이 처한 실제적인 환경을 접촉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평화박물관은 사회적 고통을 기억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단체로 이미 폭넓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기에 이 역할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과 사회와의 연결은 사회와 삶의 내면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JM: 전에 만났을 때 당신은 지난 시대를 바탕으로 한 한국 예술가들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한국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업이나 태도 등에서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가?

신성란: 한국의 일부 예술가들은 과거의 전통 미술에서 쓰인 소재나 작업 방식 등을 현재적 방식으로 변화시킨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통 미술을 현재적 고민으로 이끌어 내고 작업을 발전시키는 부분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서구미술에서 동양 미술을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한국 내에서 다시 전통을 타자적인 것, 그리고 향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소재주의나 방식을 활용하는 맥락에서 그친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소재나 방식을 차용하는 것을 넘어서 서구화라는 큰 물결에서 충동하고 퇴색된 한국적 사유와 삶의 방식, 그리고 예술이라는 부분이 통합되는 깊이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한 역작을 만나고 싶은 것이 바람입니다.

JM: 스포츠나 TV처럼 예술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실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신성란: 예술은 물론 다른 대중매체와는 다릅니다. 현재까지의 예술은 tv 드라마처럼 접근성이 있지도, 스포츠처럼 이해하기도 쉽지 않죠. 예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수를 위한 특정 분야일 뿐입니다. 특히 예술이 가진 고가 기호 상품으로서의 상업성은 이를 향유할 수 있는 소수의 재력가와 고급 취미로 일부 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경제적인 구조 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최근에 미술관이 많이 생겨나면서 늘어난 향유층도 고급 문화권에 들고자 하는 계층 상승적 욕구가 반영된 부분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예술 작품들은 이런 욕망을 소비와 결부시킨 마케팅의 산물일 뿐입니다.

예술이 과연 대중적이어야 하는지 이것은 예술에 있어서 그 근본을 고민하게 하는 큰 명제입니다. 하지만 ‘예술이 그 시대의 미학적 표상’이라는 더 큰 명제에서 고민을 하면 예술이 담은 시대는 누구를 위한 것이라는 것과 맞닿습니다. 이는 시대마다 변화하는 시대 정신과 연관이 있습니다. 현대 이후 사회를 이끌고 만들어 가는 층은 외면적으로 더 넓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의 뜻이 담아지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예술이 지닌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있습니다. 다양한 삶과 사람의 소리에 다가가서 더 많은 이야기와 성찰이 있는 작품들은 예술적 성취를 이룸과 동시에 예술의 존재 이유를 변화시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공공미술이나 커뮤니티 아트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예술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다룬 사회정치적 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계몽과 프로파간다를 넘어, 폭넓은 사람들의 가슴에 다가가서 삶을 더 생각해보고 활력을 줄 수 있는 예술가의 사유와 성찰이 담긴 예술을 바랍니다.

JM: 그리고 예술이 특화된 전문분야라는 점에서, 예술, 혹은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의 교환에 있어 자본이 점유한 지배적 역할을 약화시키기 위해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 보는가?

신성란: 자본은 예술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원로 작가 위주의 미술 시장에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포함 되면서 예술 전반에 나타난 상업화는 더욱 급속화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고급 취미와 재력의 상징이라는 문화자본의 면모를 넘어서 예술이 판매와 투자 가능한 상품이길 원하는 구매자의 욕구들이 예술 환경에 침투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갤러리, 비평가, 언론, 미술관 등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비평가의 호평과 유명세 그리고 작품 판매라는 순서와 방식은 작가가 생활인으로 생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시장성에 치우치게 되면 작가는 자신이 고급 상품의 제작자인지 예술가인지를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큐레이터로서 이 경계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시장에 치우치지 않고 예술가로 살아가기란 어려운 외줄타기 같은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에서 자유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것은 특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공공 영역의 정책적인 후원이 필수적이며, 갤러리 생산 구조를 탈피한 기업 연계의 순수한 후원 목적의 후원회 조성들도 중요합니다. 실제적인 상품적 가치가 아니라 돈으로 환산 될 수 없는 예술의 가치를 공유해 나가야 합니다. 이 가치는 예술이 지닌 공공성이 확대할 때 더욱 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전시에서는 각 작품들이 지닌 미술사적 가치를 높이고 홍보해서 궁극적으로 사회적 공적 자산으로 공공미술관에 소장되는 여건들을 구축해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uestions Translated from English to Korean by Kim Kwang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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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Shin Sung Ran

Shin Sung Ran photo: J. Marsh

Shin Sung Ran photo: sitecited

Shin Sung Ran, independent curator and writer, wrote her Korean art history MA, A Study of the Paintings by Shin Myeongyeon (1809-1886), at Hongik University. She was formerly the lead curator at the Peace Museum’s space99. Currently she is a lecturer at the Dongduk Woman’s University and Sejong University where she teaches the history of Korean art history and oriental art history. Shin has also written for the Korean publications Monthly Art, and article, as well her thesis was published in Misulsa Yeongu (월간미술). In addition to teaching, she was recently named curator of exhibitions for the office of Nam Yun In Soon, a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When I first met Shin in the spring of 2011, she was lead curator at space99 (or space goo goo as it is known). The exhibition The Eye of the Needle was on view in the gallery. I was impressed by both political nature of the show and the quality of the work supporting its framework. Shin’s curatorial efforts, which are unapologetically political, have focused on tough issues like migrant workers, and state violence. Since, leaving space99 Shin has been occupied with teaching and working with other likeminded cultural producers in creating a dialog about the contemporary definition of Korean art.

When we sat down last winter (January 2012) our discussion focused on art making in Korea, its history, identifications, motives and zeitgeists; how art and culture diverge for the public and Shin’s desire for art to part of public culture, and in turn receive the support of the public.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the conversation we had in January 2012.

Julia Marsh: Your experience working at space99 was very political and focused on social issues of the underserved or overlooked. Can you speak about how you went from being an art history major focusing on oriental flower painting to being involved in such murky waters?

Shin Sung Ran: Many people are curious about the fact that after studying artists who mainly painted flowers and birds during the Joseon dynasty I then worked for space99 where the exhibitions dealt with political and social issues.

After western modernization, like the economic development plan, Korean contemporary art has been changed in the way it chases western art trends, not just for form and content, but also in the spirit of this art, under the premise of “fitting in the international scene.” Outside of the art world, this assimilation is a general problem within Korean society, as well as a phenomenon appearing all over Asia. Instead, I think it is important to escape cultural subservience by finding out what are the dynamic and drives of Korean indigenous culture. For these reasons in grad school I studied the pre-modern art of the Joseon dynasty, which held as its criteria in general the native beauty of Korea. More specifically I selected nineteenth century flower and bird paintings, which were the leading genres of this era of change from traditional to modern, in order to comprehend the adaptation of culture in our history. And so while I was working at an exhibition space for contemporary art, I continue to participate in seminars on philosophy and culture in Eastern classics.

Because I started my career as an intern for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and this being different from my research, I needed to understand the changes and the essence of contemporary art. After this initial stage, I chose to work at space99 where I could pursue investigating the relation between the society and art without having to deal with the burdens of commercial galleries and public museums, such as marketability or governmental controls. The low budget and the complicated identity of the space, on the other hand, presented difficulties for the artworks and also for publicizing social movement organizations. But great accomplishments were made, which only this space could have achieved. As a space focused on such egalitarian dynamics, it was possible to experiment with various sociopolitical art forms focused on minorities, while seeking solidarity for these groups. So even for me, it is hard to directly connect my interest in Korean traditional culture and a career started at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and space99. But I think these are leading me to find my ground as a curator.

JM: Did working in such a political context alter your ability to think of art as discrete and separate from other more abstract social pressures?

 

SSR: There are no major changes. I am not attached to a certain form of art. I am just more interested in the social role of art that captures and investigates the voices of the people’s life.

JM: Having worked for the Peace Museum, which is not a typical museum organization in that its mission is to promote peace and advocate for non-violence, in your estimation what is the role of the curator in exhibitions and society?

 

SSR: space99 is an exhibition space, but also a space that serves the peace movement as a nonprofit social organization. The concentrated pursuit of a certain cause may limit the autonomy of art. So, my most important role was to create an environment that did not overwhelm the art under any great premise, but rather aggrandized the work’s content, in a situation where art and the peace movement desire to negate violence and form a balanced society.

The second part I focused on was solidarity. For example, when I was handling an exhibition about labor issues, in order to avoid any solely ideological approaches, I created an actual bridge between the artists and the workers in the field, so the artists could become aware of the reality and circumstances of the laborers. This role was only possible because the Peace Museum, an organization that wants to remember and accord the agony in society, was already equipped with a broad social network. I think it is a very important job to connect art and society, which have different methods to express the experiences of life in society.

JM: When we met you spoke about the identification of Korean artist with past eras. Can you elaborate on how Korean artists do or do not identify or reflect the past in their attitude and/or work?

SSR: Some contemporary Korean artists are using the materials or methods that were used in traditional arts in new ways. It is very inspiring to see artists bringing traditional art into the ongoing process of making and to see such methods progressing. But just as Western culture can sometimes see Eastern art in the guise of the orientalism, many Korean artists also regard their traditions in terms of otherness and nostalgia, and only utilize its materials or methods. Beyond just taking the materials and the methods, I want to see artwork made with profound thought, which synthesizing the artistry, as well as using Korean thought and lifestyle, which are fading due to their collision with westernization.

JM: You spoke about finding a way for art to be as interesting to people as sports or TV. How do you conceive of that ever happening?

SSR: Art, for sure, is different from the other public media. Art, till now, is not as accessible or easy as TV dramas and sports. For most people, art is a very specific realm made only for a minority. Especially with its market image as a luxury item of personal preference, art has remained a marker of refined taste of the upper class within the socioeconomic structure. Recently the number of people looking at art has grown, obvious in the many newly opened galleries, but we cannot deny this interest also reflects a desire to be upwardly mobile. The artworks that are generally considered for the public are just products of marketing that combine desire and consumption.

An important question to ponder about the foundations of art is whether art should be popular. But if we look at this within the greater notion that art represents the aesthetics of each era, we must be led then to the question: who does art represent today? This idea is related to zeitgeist, which changes with every era. After the modern era, it is true that the class who led and built the society has increased in numbers. And we can’t deny that our future will be more varied and include the will of many people. Here, I am interested in what social role there is for art. I think artworks that approach the diversity of people’s lives and their voices, and create more varied stories and ideas, will accomplish an artistic achievement, and also change the definition of what is art.

So I have paid great attention to public and community-based art, as well as the socio-political art that concerns social minorities who are alienated from art. Beyond the enlightenment and the propagandistic, I long for art that has both the artist’s contemplation and introspection, which can also reach more people in order to invigorate their lives.

JM: Since art remains a specialized area of expertise, what are the ways that artist and curators alike can and undermine the hegemonic role of capital in the exchange of art or more essentially ideas?

SSR: Capital has absolute power over art. The commercialization of the general art world has spread rapidly to include the artworks of younger artists just entering the market, which has mainly been selling the works of older artists. Buyers now want art as an investment, which can be later sold as a commercial good; although it hasn’t been that long since this desire permeated the art world, more than a cultural asset, art now symbolizes highly developed taste or wealth. It can be said that galleries, critics, press and museums have played a major role in this transition.

Fundamentally speaking, the order of this process includes that first favorable review by a critic, followed by fame, and finally the sale of the artwork, and all are very essential for the artist to make a living. However, if the process leans towards commercialism, it creates a dilemma for any producer, whether an artist or a designer of stylish goods. As a curator, I have a major concern about this boundary. It is like a lonely tightrope walk for the artist to live without being swayed by the market. To make valuable contributions free from market forces there needs to be a special support in capitalist societies. It is imperative to have governmental agencies with supporting policies and to establish sponsorship associations, which are perhaps part of corporations with the sole purpose of supporting such artistic efforts. It is necessary to share the cost of artworks that do not have a price tag, nor offer any immediately recognizable practical good. The value of such work is more readily available when the public nature of art is expanded. Additionally in exhibition, I think it is important to increase the art historic value of especially excellent artworks and to promote these and to make conditions for them to be collected by the national museums as public assets.

Translated from Korean to English by Kim Kwang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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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

Julia Marsh: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가 생긴 지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것의 목적과 기능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비엔날레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Yang Eunhee   photo: sitecited

Yang Eunhee   photo: sitecited

양은희: 비엔날레는 인천지역의 여성작가들이 모여서 발전시킨 전시제도이다. 따라서 미래는 여성작가들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제도를 이끌어가냐에 달린 문제이다.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는 지난 8년간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잡았고 국내외에 후원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현재는 정치적 환경 때문에 일시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이기 때문에 아마도 정치적으로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잠시 상황이 어렵다고 비엔날레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없고 조직위원회가 그렇게 놓아두지도 않을 것이다. 보다 축소된 형식으로라도 계속될 것이다.

JM: 비록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가 국제 전시이긴 하지만, 그 뿌리는 일군의 지역 미술가들에게 두고 있다. 이러한 바탕이 전시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아니면 국제 미술계의 눈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방해물이 된다고 보는가?

양은희: 나는 글로벌 미술이 로컬 미술 위에 군림한다고 보지 않는다. 로컬미술이 없다면 글로벌 미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예술가에게 ‘location’ 작업의 근간에 영향을 미치며 존재이유를 확실하게 만들어 준다고 본다.

IWAB 인천지역의 여성작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여성작가에게 어필할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지난 IWAB 역사는 이런 출발이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스, 이란,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여성작가들은 비엔날레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금방 공감하고 참여했다. 비주류에 속하는 나라 출신의 여성작가들에게 전시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JM: 한국의 작가에게, 그리고 세계의 관객에게 있어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의 가치는 무엇인가?

양은희: 여러 비엔날레에서 보이는 국가간 경쟁구도, 미술의 상업화와 병행되는 체계는 가장 단점이다. IWAB 그러한 대립구도 속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여성작가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물론 여성/남성이라는 다른 대립구도를 상정하고 있지만 비엔날레가 완벽한 유토피아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비엔날레가 수행할 없는 영역을 돌보고 있다는 것이 가장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JM: 일반적인 한국의 여성이 처한 현실, 그리 예술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평등, 처우 그리고 존중이라는 면에서 평가해줄 수 있는가?

양은희: 한국여성의 현재에 대한 여러 가지 통계들이 나와 있다. 여성의 대학진학율은 80.5% (2010 현재),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국가에서 평등을 보장하는 시험에 여성합격율(2010 현재) 각각 42%, 44.7%, 60%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취업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 미만이며, 같은 연령대의 남성과 비슷한 시간동안 일을 했다고 했을 여성의 임금은 66.9% 불과하다. 또한 통계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 여성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말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여성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작년까지 여성국회의원은 13.7%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15.7% 증가했다. 비례대표라는 자리 때문에 정당에서 정치적으로 배려한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배려가 없었다면 여전히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미술계는 여성인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고학력의 여성들이 많이 늘고 있는데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소규모의 정규직을 놓고 남성과 여성이 경쟁하는 구도인데 여성이 다수이기 때문에 유리할 같지만 남성이 소수여서 오히려 보호받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 관장에 여성이 임명되었는데, 1회성 변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의 시작이기를 바란다.

JM: 나아가, 한국에서 양성평등을 이루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양은희: 완전한 평등은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조금 여성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이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그런데 젊은 여성들에게서 그런 사고를 찾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 주어진 제도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갖추느라 자신의 여건을 통제하는 것들에 대한 성찰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젊은 여성을 수동적인 노동력으로 만들어버리고 안에서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여 실패했다고 좌절하게 만들어버리는 제도의 권력이 가장 방해물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라는 주제가 화두이다. 그런데 이런 화두를 가지고 논의하는 과정에 사회적 계급의 문제가 대두될 , 여성의 지위에 대한 논의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어딘가에서 묻혀져 버리고 있고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낮은 출산율이 문제가 되면서 여성에게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보다 어린아이를 양육할 있는 환경개선, 어머니를 위한 정책이 부각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총체적인 여성의 문제는 묻히고 있는 현실이다.

JM: 당신은 최근에 한국의 가정 생활에 존재하는 압력에 초점을 맞춘 이미지들을 조명하는 온라인 사진전 “Uneasy Fever: 4 Korean Women Photographers”를 기획했다. 여기에 참여했던 경험과 당신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또, 무언가 순간적인 것을 가지고 일을 해 본 것인데, 이런 종류의 전시가 실제의 전시가 갖는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거라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는가?

양은희 전시는 Trans-Asia Photography Review에서 의뢰를 받아서 기획한 전시이다. 2012 4월에 오픈되었다. 잡지사의 의뢰를 받고 리서치를 하면서 한국 여성 사진작가의 작업에 변화하는 한국여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백지순, 김옥선 작가는 이미 아는 작가였지만 이선민, 신은경 작가는 주제를 위해 발굴한 작가이다. 작가들이 찍은 사진에는 사라져가는 종부문화, 신도시의 중산층 엄마와 ,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여성, 독신여성과 결혼문화 등이 담겨 있는데 모두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성의 처한 상황을 이미지로 보여준다. 역시 내가 속한 사회를 다시 있는 기회였다.

온라인 전시는 물질적인 경비를 최소화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오프라인 예술잡지가 쇠퇴하고 있고 대신에 온라인 잡지가 인기를 끌면서 많은 잡지가 나오고 있다. 빠른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글로벌 관객에게 널리 알릴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Trans-Asia Photography Review 그런 온라인 잡지중의 하나이고, 사진분야에서 이미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 장점을 아는 곳이기에 온라인 전시를 잡지의 일부로 기획한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결론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미래에는 이런 잡지와 전시가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전시가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전시라는 형식이 어떤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틀로서 기능하는 , 지금보다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다.

Questions Translated from English to Korean by Kim Kwang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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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Yang Eun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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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 Eunhee    photo: sitecited

Independent curator and writer Yang Eunhee lives in Seoul, South Korea. She wrote her doctorate “On Kawara’s Nomadic Mind: Autobiography of a Citizen of the World” in art history at the City University of New York (CUNY). While she lived in New York for 11 years, she curated exhibitions for spaces such as Dumbo Art Center and Gallery Korea, lectured in colleges and wrote essays for art magazines. After completing her Ph.D., she returned to Seoul in 2004. Since then she has been actively writing and curating. In 2005 she curated Conjunction Points, for the Gwangju Arts & Cultural Council. In 2008 she was named the main commissioner for the 2009 Incheon Women Artists’ Biennale. She also curated the show Close Encounter (2010) at the Jeju Museum of Art, and was a guest curator for the Brain Factory in 2011. More recently she curated Uneasy Fever: 4 Korean Women Photographers for the online journal Trans Asia Photography (TAP) in the spring 2012 issue. Her book New York, Art and the City (Random House Korea, Seoul), originally published in 2007 was re-released as in revised edition, in 2010. Also in 2007 Yang translated Ideas in Art (JRP, Seoul) by Robert C. Morgan. As well she is a frequent contributor to Art in Culture, Public Art and Monthly Art, and has written for such publications as Journal of Contemporary Art Studies, Art AsiaPacific, and Art in ASIA. Yang also teaches courses on contemporary art at universities in Korea.

I was fortunate to meet Yang in 2009 when I was hired by the magazine SPACE to interview artists participating in the Incheon Women Artist’s Biennale for which Yang was the main commissioner. Yang is straightforward and sensitive on issues of gender here in Korea and around the globe; and creating a more global context in which the Incheon Women Artists’ Biennale can operate has been a focus for her since we first met time. When I sat down with Yang in the winter of 2012 I was most interested in talking to her about the status and condition of Korean women in general, and more specifically Korean women artists.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the conversation we had in January 2012.

Julia Marsh: The International Women Artists Biennale (IWAB) has been developing for nearly 10 years. What are its future prospects, given there has been turmoil surrounding its purpose and function.

Yang Eunhee: This biennale is an exhibition system that was developed by the female artists in the Incheon area. Therefore, it is a matter of what kind of will they have and where they will lead this system. This system has been successful during the past 8 years and now has many sponsors. Still, the current situation is difficult due to the political environment, so I hope that maybe these issues can be resolved by the politicians. In essence, these present difficulties will not cause this biennale to disappear, and moreover the committee won’t let that happen. It will continued, even if it is in a scaled down format.

JM: Although the IWAB is an international exhibit, its roots are in a regional group of artist. Is that origin helpful to its progress or a hindrance to its legitimacy in the eyes of the global art world?

YE: I don’t think the global art world dominates the local scene. The global art scene would not exist if there were no local art scenes. I think the “location” has a huge influence on artists’ works and it makes their reason for being tangible.

Because IWAB was created by the female artists in the Incheon area it has the power to appeal to female artists in many other countries, in fact its power, having this starting point has been proven by the past history of IWAB. Female artists in Greece, Iran, Indonesia and Thailand could empathize with the meaning of this biennale quickly, and therefore participated. Moreover, for female artists from developing countries there are not that many exhibition opportunities.

JM: What is the value of the IWAB to Korean artist and global audiences?

YE: The competition between countries and the system paralleled in the commercialization of art we find in many biennales are some of the biggest drawbacks. IWAB is a system made for the female artists who are disregarded in these clashes. Yet IWAB sets up another confrontation of sexual politics; however, a biennale cannot be a utopia, so the greatest value of it would be the fact that IWAB takes care of a realm the other biennales chose not to fulfill.

JM: Can you assess the conditions of women in general in Korean, but also female art professionals in terms of equality, treatment, and respect?

YE: There are several statistics about the circumstances of Korean females today of. Women enter college at a rate of 80.5 percent (2010) and pass the national exams, such as the bar exam, civil service exam and foreign service exams, where equality is guaranteed, at a rate of 42, 44.7 and 60 percent (2010), respectively. But in terms of general employment the participation rate of females in the workforce is less tan 50 percent and the pay rate is only 66.9 percent of what male salaries are in similar age groups and for working hours. These statistics also show that female workers are likely to be working in temporary jobs rather than in the permanent positions.

Yet there is an exception. The percentage of female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has increased from 13.7 to 15.7 percent. This is due to each party’s political consideration on proportional representation of assembly seats. If there were no such consideration, the situation would be still more disparate.

Also in the arts, women hold a large majority of the positions. The number of well-educated females is increasing, and yet most of them are still temporary employees. In the competition between men and women for the limited number of permanent jobs, it seems the females have an advantage due to the fact that they simply outnumber men; on the contrary it looks like men are protected due to their low numbers in this profession. Recently, major art gallery and museums hired females for the top positions. I hope that is not the one-time deal, but the beginning of progressive changes.

JM: Moreover, what are the obstacles to women’s equality in Korea?

YE: I think complete equality is a utopia. Nevertheless, we should build a more female-friendly environment than what we have now. First of all, for this to happen, it is crucial to believe that women must take the lead to make it happen, but it is hard to find that kind of thinking in young women today. It seems they are too busy fulfilling the proscribed social necessities to have any room left for introspection about the factors that control their overall conditions. The major obstacle to this change is the authority of the system, which makes younger women into passive laborers, and causes them to be frustrated because they think their failure is due to their lack of ability.

Lately “the equal society” or “just society” has been the topic in South Korea. But in the process of discussing this topic, only the problem of social class is an issue, and the status of women can hardly be found in the dialog. To that extent, the voices of feminists are buried and not considered as a part of the press coverage. Especially after low birth rates became an issue, rather than creating a better environment for women in general, the direction of the discourse is to reform the environment for nurturing children, or so to say making a policy for motherhood. Meanwhile the problems faced by women in this sense are suppressed.

JM: Last year you curated an online photo exhibit Uneasy Fever: 4 Korean Women Photographers, which focuses on images that stress or underscore the pressures of domestic life in Korea. Can you talk about the experience and about the works you included? Do you feel now having worked on something ephemeral, that this type of exhibition will ever have the same impact as an exhibition in the real?

YE: It was the special exhibition commissioned by Trans-Asia Photography Review, opened in April, 2012. After the request, while researching it, I came to see the changes experienced by Korean women in the several Korean female photographers’ works. Bek Ji-Soon and Kim Oksun are already well-known artists, but Lee Sun-Min and Shin Eunkyung were introduced specifically for this subject. In their photographs, they show the disappearing of the obedient culture: to husband, the mother-daughter relationship of middle class in the new city, a Korean woman who married a foreigner and a single woman confronting marriage culture, all while presenting a cross section of Korea, these artists are clearly reflect the condition women face in the meantime. It was an opportunity for me to reevaluate the society I live in, too.

I think online exhibition is positive in that it can minimize the material costs. Nowadays many online art magazines are published, and have growing popularity, in the place of declining offline editions. Its merit is the accessibility to the global readers, with the less time and budget. Trans-Asia Photography Review is one such online magazine, and already has many subscribers interested in the field of photography. So the magazine understands well the merits of being online and therefore planning an online exhibition, as a part of the magazine, was natural for them. It seems in the distant future, there will be more of this kind of magazine and exhibition. Yet it doesn’t mean the offline exhibitions will become extinct. I want to emphasize that the form of an exhibition functions as a frame to show certain ideas; and that because of this in the future I believe there will be more diverse forms of exhibition than there are now.

Translated from Korean to English by Kim Kwang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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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Gu Minja

Gu Minja is an artist living in Seoul, South Korea. She earned her MFA from Korean National University in 2007. In 2011, she was in residence at the ISCP studio program, in New York and for 10 months between 2010 and 2011 she was at the Gyeonggi Creation Center, Korea. Her first solo exhibit was housed at the Croft Gallery in Seoul in 2009 and she has been included in many group shows such as Doing at the Kumho Museum of Art (2012), A Cabinet in the Washing Machine at the Seodaemun-gu Recycling Center (2012), About books at the KT&G Sangsang madang (2012) No Peace, Only Adventure at the Busan Museum of Art (2012) and Has the line killed the circle? at La general in Paris, France (2012). She was also awarded the 10th annual SongEun Art Award in 2011. In general, Gu’s work borders on the intangible. I first met her when she was in residence at the Ssamzie artist residency in 2007 where she showed me works that could best be described as events. The small statements she was making, at a time when much, if not all, the work I saw in Seoul verged on the bombastic, was immediately compelling. Gu has maintained her quiet ephemeral approach and when we sat down to talk last winter I was most interested in how this artist manages to stay with her program in an unapologetically capitalist art scene.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the conversation we had in January 2012.

Julia Marsh: In your recent works such as Atlantic Pacific Co. (2011) and World of job (2008) your labor figures prominently in the scheme of the work. As an artist what is the relationship for you between labor and making, and is it important that your audience grasps this relationship?

Gu Minja: “Labor” in artworks usually means how much work the artist did painting paintings or making sculptures. Of course there is an effort to create finished artworks for me as well, but what I am more interested in is how to match the general meaning of labor and the making of artworks, and how labor can be handled as an artwork in and of itself, also, what artists are doing, and what they can do in terms of labor. In fact, art often seems unproductive because the value of the artwork and labor is very different in general. Perhaps because the value of productive labor in society affects me indirectly, my works directly address “labor” by becoming part of the artwork, also I create labor as an artwork in the process of creating them. I cannot say it is unimportant for the audience to grasp this relationship, since I want them to think it is interesting when they see a little bit of strange “labor” in my work.

JM: When I first saw your work in 2007 you were doing performative works collecting materials and repurposing them. These works reflected a critique of different aspects of consumerism whether sustainability or convenience. At that same time you also conducted a seminar on love a la Plato. Can you say what led you to making works that are more ephemeral than tangible?

GMJ: Relatively, my work does not show tangible materials. But I try to show the moments we experience in our daily lives by inserting ideas or limiting elements or setting up a place for some kind of the action then document the process. I think my work might not seem very ephemeral because I show the process in the documentation. The question is eventually posed as to what the importance this has in my works and what led me to create such works. I simply want to comment on what I see in the conditions of the world. I would like to intervene in what is happening around me and introduce devices. Therefore, the process is as important as the momentary in my works. It is similar to traveling, while traveling time passes, but pictures and memories remain.

JM: Regardless of the ephemeral nature of your works they do offer a give and take for your audiences, who are often key participants in the production and completion of these works. Do you think of your participants as different from audiences or viewers?

GMJ: It is different depending on the works. However, audiences in general and participants who are involved during the production cannot be the same. In my recent work Atlantic-Pacific Co., the audience became participants in a passive way. In general, participants usually understand more about the work so their participation becomes more important and sometimes, my work is processed or finished by these participants. For example, Symposium was completed by the conversations I had with friends and friends of these friends who are all my age. In the case of World of Job, it was completed by participants who did not know they were participating in the artwork and sometimes the piece was ended by this lack of recognition. Inversely, in Happily ever after, a speed-dating project, the participants did not know they were participating in an artwork, but during the process they became aware . I, too, become a participant during the process. Because of that, I feel that I change a little while I compose, plan, process and exhibit my works.

JM: In your estimation what are the economies of art making today? And where does your work fit into such schema?

GMJ: It is not easy to connect my works to the art market and the art economy because I don’t have much practical experience selling my works. That is maybe why I am more concerned about economy in reality than the economy of the art world. The coinciding of the economy and the ability to live in reality is unavoidable, even though we may like to escape from it. There are a minority of people who live self-sufficiently, and also those who create another economic system within their own community, but I myself am not very independent so I need to follow along with the system. But because I can’t get away from it I am consistently aware of it. And also I enter it helplessly. For many artists the government or granting organizations are like an oasis, it makes them rely on these sources of funding. From my recent experience, eventually these funding arrangements require artists to negotiate and compromise and that process is hard but inevitable. There is, in this way, no place where support money comes without procedures and impositions.

JM: When we met you were preparing to go to Taipei for an exhibition in which you planned to have a concrete block from a nearby construction site on display. As much of your work is often unsellable in nature, due to its ephemeral basis—the unavailability of a product or residual materials from your work—how do you document or record your process? And in today’s art market is it a challenge to maintain you non-material stance?

GMJ: This was one of my ideas I had for the exhibition at Taipei Contemporary Art Center. I had planned on creating a monument with concrete floors removed from a nearby building to show labor and the value of labor. However, I decided to show other work because of many different circumstances. Even if that plan was realized and the floors were shown as “material,” the importance of it was the in stories behind this material and the subsequent documentation of the process. Like this, in many cases the result of my work is the documentation of it, but I try to use different methods based on the specific work. I use writings and drawings and also add different images or elements that can illuminate the contents of the work. The thing that makes me agonize to maintain my non-material stance is not only the art market; the process of making people understand and my concern for how to make products drives me to continue making.

JM: You recently did a residency at The International Studio & Curatorial Program (ISCP). How did you feel about working in NYC, and what effect do you feel that that visit has had on your current direction? Are there any differences that struck you between the Korean and NYC art scenes?

GMJ: Living and working in another city for a while was like being somewhere between a traveler and an artist. Therefore, it seems really hard to know much about the city and the art scene. What did strike me was that very experimental works were selling at galleries with prices clearly marked. I do not know much about sellable artworks in the Korean art scene, but I was surprised how all the galleries have a price list at the front desk.

Being in a residency program is always stimulates me and is good for me because I don’t have to think about anything other than the work, and in a new environment I am in the attitude of active looking. I do not know about the changes to my work in the long-term maybe because I tend not to see my direction in the bigger picture. But I did start to feel that I wanted to work in New York longer. When I came back I had just started to know the place and the art scene; I hope to have another chance to go ther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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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자

Julia Marsh: 최근에 작업한 Atlantic Pacific Co.(2011)과 World of job(2008)을 보면 당신의 계획된 노동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나타난다. 작가로써 노동과 작업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관객들이 이것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Gu Minja photo: sitecited

구민자 photo: sitecited

구민자: 미술품에서 ‘labor’는 보통 그림을 그리는 데, 혹은 조각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들인 노동력 등을 얘기하곤 한다. 물론 나의 작업에서도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들이는 노력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과 미술에서의 작업이 어떻게 일치될 수 있을까, 노동-일, 이것이 어떻게 미술로서 다루어질 수 있을까, 미술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하 그리고 정말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흥미로운 지점인 듯 하다. 왜냐하면 때로 미술이 생산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미술에서의 노동과 그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사회에서 어떤 생산적인 노동을 해야한다는 가치관이 나에게도 무의식중에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이 직접적으로 ‘노동’을 다루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 같고 그 과정에서 나는 노동을 작업으로서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관객들은 그 관점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업 안에서 보여주는 조금 이상한 ‘일’에 대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JM: 2007년 당신이 수집한 여러 가지 소재들을 가지고 그것들에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적 작업이 내가 당신의 작업을 처음 접한 계기였다. 그 작업들은 소비지상주의를 지속가능성 또는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다르게 조명하는 비평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love a la Plato 라는 세미나도 개최하였다. 왜 가시적인 유형의 작업보다 일시적으로 표현되는 작업을 만드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구민자: 비교적 물질적인 것이 드러나는 작업이 아니지만 오히려, 일상적으로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에 의미의 장치들을 끼워넣거나 다른 요소로 제한을 하기도 하고 어떤 행동의 장을 마련하고 그것을 기록함으로서 그 지나가는 순간들을 잡아채어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무언가를 남겨두기 위해 기록하는 과정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순간적인 작업이라고만 보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결국 내가 작업에서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작업을 하게끔 하는가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되는데, 간단하게는 내가 보는 세상의 일들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틈에 개입하고 싶은데, 나는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들을 통해서 잠시 개입했다가 빠져나온다. 그렇기때문에 내게 있어 작업은 계속 그 과정이 중요하고 순간적인 것이다. 마치 여행을 다녀온 후 그 여행의 시간은 지나가버리고 사진과 기억이 남는 것처럼 작업도 그런 것 같다.

JM: 당신의 작업들이 본래 지닌 일시적인 특징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작품들은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어떠한 참여 관객들이 작품들을 완성시키는가? 참여자들이 일반 관객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구민자: 작업마다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과 작업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최근의 작업인 ‘Atlantic-Pacific co.’의 경우는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관객이 작업의 참여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개 작업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더 깊숙히 관여하게 되는데, 어떤 경우는 그 사람들로 인해서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 가능하거나 완성될 수 있다. 이를테면 ‘symposion’과 같은 작업에서는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들 혹은 친구의 친구들이 참여하여 그들의 대화로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직업의 세계(World of Job)의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업에 참여하게 되고 그것이 미술이라는 것을 끝까지 모른 채로 끝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반대로 ‘Happily ever after’와 같은 맞선 프로젝트에서는 참여하기 전까지는 몰랐다가 참여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미술프로젝트라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하는 나 자신이 작업에서의 주된 참여자가 되기 때문에 작업을 구상하고 계획하고 진행하고 전시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조금은 스스로가 변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JM: 당신의 관점으로 오늘날의 미술 경제를 어떻게 평가 하는가? 당신의 작업이 이러한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다고 보는가?

구민자: 실제적으로 작업을 판매해 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의 작업을 아트 마켓이라거나 미술의 경제 시스템과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미술품에 있어서의 경제적 상황보다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경제적 상황들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 현실에서의 경제 시스템에 부합해서 살아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스템을 벗어나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경제 체계를 만들고 공동의 삶을 일구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렇게 독립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순응해야 하는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인다. 또 어쩔 수 없이 그런 시스템에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 시스템은 작가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라서 그것에 점점 의존하게 되어간다. 최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지원금의 체계에서 작가가 타협을 해야하는 경우들이 생기는데 그 과정은 많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떤 곳도 그저 마음껏 쓰라고 지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JM: 예전 우리의 만남에서 타이페이에 있는 공사현장 근처에서 콘크리트 벽돌들을 이용하는 전시를 계획 중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의 대부분의 작업들이 작품으로 판매 할 수 없는 비물질인 특성 또는 제작과정에서 잔여로 남는 물건 없이 단기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작품을 또는 제작과정을 기록하는가? 비물질적인 작품의 생산 유지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힘들지 않는가?

구민자: 그 때 생각했던 작업은 전시 장소였던 Taipei Contemporary Art Center라는 장소, 그리고 노동과 노동의 가치에 관련된 것으로서 그 공간의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 기념비처럼 전시하는 것이 계획 중 하나였는데 결국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른 작업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 계획이 실현되어 ‘물질’이 보여지는 작업이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을 둘러싼 이야기와 그 과정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그처럼 많은 경우 작업의 결과물은 작업 과정을 기록하는 방식이 되는 것 같은데, 대개는 사진이나 영상이지만 작업에 따라 다른 요소들을 사용하려고 한다. 글이나 드로잉을 함께 사용하기도 하고 작업 내용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다른 이미지나 도구들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비물질적 태도를 유지하는데 고민하게 하는 것은 단지 아트마켓뿐은 아니고, 아직까지는 작업을 어떻게 사람들이 이해하게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과정, 결과물에 대한 고민이 오히려 무언가를 자꾸 남기고 만들게끔 하는 것 같다.

JM: 최근 International Studio & Curatorial Program (ISCP) 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뉴욕에서의 작업활동은 어떠하였고, 그 곳의 환경이 현재 작업방향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뉴욕과 한국의 미술계의 다른 점들 중 놀라웠던 것은 무엇인가?

구민자: 잠시동안 다른 도시에 가서 지내고 작업을 하는 것은 여행자와 작가의 중간지점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도시라든가 특히 그 곳의 미술계에 대해 많이 알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놀랐던 점이라면 매우 실험적인 작업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굉장히 뚜렷히 가격을 명시하며 상업갤러리에서 판매된다는 점이다. 팔리는 미술작품에 대해서라면 한국 미술계에서도 잘 알지 못하지만, 입구 데스크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가격을 명시한 파일이 놓여져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레지던시라는 것을 이용해 외국에 체류하는 것은 그 기간 동안 작업 이외의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서 늘 적극적으로 그 곳을 바라보는 태도로 있기 때문인지 많은 자극이 되고 언제나 좋은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거시적인 시점을 보통 스스로 갖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작업 자체의 큰 방향에서의 변화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좀 더 긴 기간 동안 그 곳에서 작업을 하고싶은 마음이 한구석에 생겼다. 그 곳과 그 곳의 미술계에 대해 조금 알기 시작할 무렵 다시 돌아오게 되어 그런 것 같아서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고 있다.

Questions Translated from English to Korean by Kim Kwang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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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Julia Marsh: 당신의 초기작품들을 살펴보면 작가가 관객들의 반응을 고려하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반응들이 관객들에게 영향을 주고 체험 하도록 준비과정을 통해 계획 된 것처럼 나타나 보인다. 당신은 관객들로부터의 어떠한 특정한 반응을 원하는가?

Jung Yeondoo photo: sitecited

정연두 photo: sitecited

정연두:내가 관객들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특정 작품에 따른 관객들의 일관적인 반응을 예측 하지는 않는다. 나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반응을 통제할 생각도 통제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의 관객을 선택 할 수 있다.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회에 가면 사람들은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나는 사람들이 커튼을 열고 잠깐 엿보고 갈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16초 마다 슬라이드 프로젝션이 사라지게 작업 하였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그곳에 남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의 관객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작업을 보고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JM: 당신의 작업들은 상당히 주도 면밀하게 제작되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작업을 제작하기까지 묘사를 위한 어떠한 연구들이 이루어 지는가?

정연두: 제작 과정은 나의 작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작업과정을 보여줄지 숨길지는 작품을 만들기 전에 결정한다. 몇몇 작품들은 제작 과정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미장센을 돕기 위해서 과정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나는 연출된 사진에 조심스럽게 결함을 남기고, 그것을 통해 관객들이 작품의 제작과정에 의문을 제기 하기를 바란다. 불완전한 것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JM: 대부분의 작업들이 환상이라는 틀 안에서 표현되는데 이러한 작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연두: 나는 관객들에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거울이 필요하다.  거울은 현실을 반영하고 마치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보여지게 한다. 나는 이 자체가 현실로부터 닮아 있지만 큰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업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바라본 나 자신이다. 이렇게 바라본 시선은 제작과정을 기록하는 것과는 다르다.

JM: 매너리즘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발상을 작품제작 또는 환상과 연결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정연두: 사람들은 어떠한 것이 제시되는 방법에 따라 그것을 마술로 이해하기도 하고 미술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형적인 마술/미술의 표현을 통행 우리는 그 장르를 결정짓는다. 만약 당신이 마술적인 표현을 무시 한 체 비논리적인 것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그것의 결과에 대해 놀라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작품의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마술사는 그들의 비법을 꾸며나간다. 이 방법을 통해 사람들은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나는 확실한 장르를 가지고 보편적인 구상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이 내가 말하는 매너리즘 이다.

JM: 모든 작가들이 본질적으로 손재주를 가지고 작업한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자각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연두: 작업을 제작하기 위해서 기술은 언제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생성해 내는 과정이 그들의 예상보다 뛰어 났을 때 감명 받기도 한다. 그러나 뛰어난 손재주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꼭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작가들의 선택의 문제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나의 작품의 결점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나는 이 기술을 작품의 비효율적인 구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다.

JM: 가장 최근에 뉴욕에서 한 전시에서 당신의 작업을 보고 당신이 언제 마술사/작가가 되기로 결정했는지 묻고 싶었다. 여전히 궁금하다.

정연두: 마술사는 보여지는 방법을 연구하여 여러 가지 환상을 실현해 낸다.  영화 비위치드 에서 사만다 는 코를 비틀면 마법이 걸린다. 여기서 감독은 그녀의 마법을 실현하기 위해 편집을 해야만 했다.  당신이 정말 마술을 믿지 않는 이상, 이를 완성하고 수행하는 역할은 언제나 시각미술 작가의 몫 인 것이다. 작가/마술사가 되고 싶었던 시점은 내가 미술을 시작한 1997년도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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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Jung Yeondoo

 

Jung Yeondoo photo: sitecited

Jung Yeondoo photo: sitecited

Jung Yeondoo, lives and works in in Seoul, South Korea. He earned his MFA from the University of London, Goldsmiths College in 1997. He has exhibited widely and internationally and is perhaps best known for his narrative and visually deceptive video works. In 2012 Jung mounted his latest solo exhibit at Tina Kim Gallery in New York City, and has had solo exhibitions in Berlin, Washington, D.C. and Tokyo among others. As well, he has been in numerous group exhibitions including Media City: Spell on You, Seoul (2012), City Within the City at Artsonje Center, Seoul (2011) 8th Shanghai Biennale (2010), 4th Prague Biennale, Prague (2009), Dirty Yoga Taipei Biennial (2006), Manufactured Self at The Museum of Contemporary Photography, Chicago, IL (2005) Liverpool Biennial of Contemporary Art (2004), Re:source at Art in General, New York City, NY (2004), 8th International İstanbul Biennial (2003) and the 4th Gwangju Biennale – PAUSE (2002). I first became aware of Jung’s work with his Documentary Nostalgia (2008) at Turn and Widen-Light, Communication and Time, at the Seoul International Media Art Biennale: Seoul Museum of Art. This work and his other more recent works test the limits and expectations of vision through the apparatus of video and projection. More than that Jung’s video’s also engage our need for stories and magic without pandering. Instead his works elevate the interplay between artist and audience to a more desirable state in which viewers are challenged and rewarded by the challenge. I set out to interview Jung to ask when he decided to become a magician; a question, he of course, never really answered.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the conversation we had in January 2012.

 Marsh: I understand from your earliest work you had great concerns for your audiences. From my perspective it seems that this attention has manifested over time as a kind of preparing, or at least priming your audience for the effect or experience you would like them to have. Do you hope for specific outcomes from your audiences?

Jung Yeondoo: It would be untrue if I said I don’t expect anything from the audience. But then, I don’t expect a specific outcome from the audience through my certain work. I do not attempt or wish to control my audience’s reaction. But I can choose my audience. When people go to large exhibitions like biennials, they feel they ought to see everything in the show. I deliberately choose 16 seconds dissolves for my slide projections for the people who open the curtain to peek and leave after few seconds. But some people will stay, and if they stay, they will stay to the end. This is my way of choosing my audience. I don’t expect everybody see my work nor understand my work.

JM: Your works tend to be made with fairly elaborate productions. How would you characterize the research that goes into the making?

JYD: The process is very important part of my work. So, I decide whether I am going to show the process or hide the process before I produce the work. Some of the work contains the process as a body of work, and in the other work, I try to erase the process for the sake of mise-en-scene. I carefully try to leave the flaws in my staged photos to make the audience try and guess the process for the work. It is quite difficult to be imperfect.

JM: Since you much of your work is framed around illusion, what is the goal of your works?

JYD: I wish to show the audience “reality in different perspective.” To look at oneself, one has to look in the mirror. The mirror is reflected reality, which pretends to be real. I think this is a great illusion, since it resembles the reality itself. My work is a way of looking at myself through another’s life. This looking is different from the process of documentation.

JM: We spoke about mannerism in our meeting. Can you elaborate on this idea as related to art making or illusion?

JYD: People understand something as a magic or art through the manner of presentation. So we understand the genre through the typical gesture of magic/art. If you show something illogical, without an appropriate magical gesture, people won’t be amazed at the results. So artists try to make art like results, and magicians try to decorate their tricks. People then understand way more easily. That’s what I call mannerism, because I like to play with the general conception of certain genre.

JM: Do you think all artists inherently work with slight of hand (sleight), or is that a conscious choice?

JYD: Skills are always the convincing element in the output of artwork. People may even be touched if the elaboration of the making goes beyond the expectation. But it doesn’t mean that sleight of hand is necessary to make a good art work. Artists can choose. As I said, I work hard to show the flaws in my work. I use these skills to show how the work is inefficiently structured.

JM: Before I learned of your latest work for your New York show I had wanted to ask you when did you decide to be a magician/artist? I am still curious.

JYD: Magicians deal with visual tricks. Like Samantha in Bewitched who was a witch and cast spells by her twitching nose, the producer had to edit the video to complete her magic. Unless you really believe in real magic, it is always the visual artist’s role to perform this completion. I wanted to be an artist/magician since I started making art in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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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진

Julia Marsh: 예전에 쌈지스페이스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입주작가 프로그램을 잃은 가장 큰 손실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Shin HyunJin/신현진 photo: sitecited

신현진 photo: sitecited

신현진: 그렇다, 쌈지스페이스에서 조금 더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남는다. 하지만 쌈지 스튜디오 프로그램의 폐지가 쌈지스페이스나 미술계의 큰 손실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쌈지스페이스는 다른 대안공간과 더불어 한국 미술시장의 세계화에 성공적인 역할을 하였다. 쌈지스페이스와 쌈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그 당시 한국 현대미술 발전에 핵심적인 요소중의 하나였다고 그리고 당시의 예술계를 해석하는데 키워드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쌈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구조는 당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동향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까지 세계화와 더불어 한국의 경제와 현대미술 시장 또한 적자생존과 같은 원칙을 담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형태로 변화했다. 그 변화 속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은 작가들에게 명예, 발전가능성, 국제적 차원에서의 홍보와 관련된 도구 그리고 관계망 형성의 기회 제

공에 힘썼다. 쌈지 스페이스 스튜디오 프로그램 또한 이러한 목적에 특화되어 일정 기간 그 역할을 다했고, 다른 보다 큰 공공기관들이 작가들을 위한 여러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을 시행하기 시작하면서 쌈지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마감을 알렸다.

JM: 지금 같은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으로 활성화된 입주작가 프로그램들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현진: 1998년도에 니꼴라 부리요는 『관계의 미학(Esthétique Relationnelle)』을 출간하였다.  관계의 미학 개념은 니꼴라 부리요가 90년대 특정의 미술활동을 정의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관계형성이 미술연구의 공통분모로 적용된다고 언급하였다. 바꿔 말하자면,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krit Tiravanija)의 요리 접대와 같이 미술 작품의 완성이 완성된 작품 그 자체만이 아닌 만드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다른 예로, 쌈지스페이스에서 내가 진행했던 ‘공개적으로 말하기(Publicly Speaking)’ 프로젝트는 한국의 작가들과 ‘Art Initiatives in Tokyo’간의 레지던시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카즈 사사구치(Kazz Sasaguchi)와 히로하루 모리(Hiroharu Mori) 작가의 작업 ‘학생 운전자(Student Driver)’는 교통법규를 습득하는 학생 운전자의 심리를 여행자들이 외국의 관습을 지각하는 것과 견주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 작가들이 공간을 바꿔 작업하는 과정에서 들인 시간과 임시 거처마련을 제외하고도 초대 기관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자원 운전자와 강사 모집에까지 행정적 지원이 필요했다.

당시의 예술이 요구하는 조건과 이에 대응하는 예술기관에게 있어서 레지던시는 매우 적절한 형태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갖춰야 할 다른 요소로는 세계화, 그리고 증가하는 국제적 미술행사에 대한 요구등을 들 수 있다. 국제적 작가들을 한국에 데려와야 할 필요성은 위에서 나열하였던 이유들과 더불어 오랫동안 동시에 커져왔다. 미술작품 제작의 메커니즘이 위와 같은 방향으로 전환 되는 시점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필요성은 더욱더 부각된다고 본다.

JM: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나? 혹은 부당하게 이용당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신현진: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JM: 현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미술비평 박사과정 연구주제로 사회적 기업가들의 신자유주의적 경제활동이 한국 현대미술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지금의 연구주제가 예전의 연구주제와 다른 관점 또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신현진: 지금까지 뉴욕의 ‘Asian American Art Center’와 쌈지스페이스, 이렇게 두 곳의 대안공간에서11년 이상을 일해왔다. ‘Asian American Art Center’는 내가 일을 시작하던 해에 27주년을 맞이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미국 내의 대안공간의 구조와 역사에 관한 지식을 넓히고 더불어 한국 대안공간의 동향 파악에도 도움을 주었다. Asian American Art Center에서 일을 마친 2002년 당시는 뉴욕의 대안공간들이 문을 닫거나 운영 구조를 바꿔나가는 시기였다. 나는 한국에서 대안공간들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중 한 곳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2008년과 2009년 무렵에는 한국의 대안공간들이 개설 된지 10년 만에 다수의 대안공간들이 문을 닫거나 서울의 변두리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미국의 대안공간들에서 30여년 만에 닥쳐온 불운이 한국에서 불과 10년 안에 일어난 것이다. 2005년과 2006년 사이에 영국의 시티 레이싱(City Racing), 스웨덴의 노르딕 스톡홀롬 미술대학, 그리고 스웨덴 말모에 있는 루지움(Rooseum Center for Contemporary Art)과 같은 지역사회에서 지역의 예술가들을 위한 대안공간 또는 비슷한 형태로 구성된 단체들 또한 구조적인 변화를 겪거나 문을 닫았는데, 이는 구조적 변화가 국제적 현실임을 보여준다.

쌈지스페이스가 문을 닫으면서, 나는 내 삶과 일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라고 느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미술이 처한 상황을 사회, 경제, 역사적인 면에서 보고 싶었고, 이를 바탕으로 결정에 참고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적합한 일을 찾기 위해 내가 해온 것을 학문적인 측면에서 검토해 보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적 경제와 정책, 경제이론과 사회학에 관해 연구하게 되었다.

동시에 미술계의 여러 사례들도 연구 중이다. 어떠한 새로운 접근이 강구되고 있는가? 오늘날의 사회와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 이러한 종류의 예술 제작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생각들은 미래의 논문 주제의 일부로 구상 중이다. 질문에 답하자면, 사회적 기업 활동은 미래에 하나의 예술의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기구의 축소와 사회복지 제도의 민영화는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노무현 정권(2003-08)이 시작한 작은 정부 정책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문화거버넌스 정책의 시작으로 국공립 단체의 역할과 사업이 민간 단체와 기업에게로 책임이 이전되고 있다.  사회복지 또한 기업과 개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흐름은 기업의 사회 복지 사업 형성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지원보조금으로 사회적 기업가들의 2,3년의 월급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활성화 되었다.  이와 같은 정책은 사회적 공익을 포함하는 문화 기관들에게도 적용되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성공적으로 구현되지 못했다. 60년대에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W.J Baumol)은 문화경제학의 관점에서 생산성의 부족은 공연예술의 실제 비용을 장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라는 학설을 세웠다. 그리고 예술은 시장의 실패라는 원리가 적용되는 분야이므로 이들은 지원금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리라는 논리를 증명하면서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국가 예술 기금(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과 문예진흥기금’ 의 설립 정당화에 이용되었으며, 1965년부터 예술을 옹호하는 논리로 자주 인용되었다. 하지만 이 학설이 몇 십년이 지난 지금의 경제상황과 시장에도 반영될 수 있는 논리라면, 예술계 안의 사회적 기업 활동은 모순일 것이다. 또는 반대로, 금방이라도 닥칠 사회변화를 예고하는 자본주의의 종결과 월스트리트의 점령 시위 등이 벌어지는 이 시점에서 사회적 기업의 이념적 측면만을 고려해 본다면 정부나 대표자들의 관리를 통해서가 아닌 개개인의 참여로 이루어진 사회적 기업 활동의 성공이란 사회변화가 요구하는 반관료주의적, 자유민주주의적 주체의 권리가 보장, 반영되는 정책일 수도 있다. 나는 정부에게 높은 세금을 내면서도 개개인이 자신의 복지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실정은 달갑지 않다. 만약 민간의 복지 참여 조직화가 조세를 줄여준다면 이 정책에 보다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는 한 인류의 복지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대항 논리는 아직 없다. 시간이 말해줄 것이고 일단 기다려보아야겠다.

JM: 한국의 민주화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한국 미술시장에서 비즈니스와 미학이라는 요소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신현진: 주류 미술활동에 끼친 이러한 영향력의 특징은 노동에 관한 이론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내가 주장하는 미술과 노동이론의 연결은 설치미술, 프로젝트 기반의 작업 그리고 관계적 미술과 연관된 실험적이며 개념적인 미술활동으로 제한된다. 그리고 이 주제와 관련된 텍스트가 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artfirm)에 있다.

1991년, 마우리치오 라자라토(Maurizio Lazzarato)는 “비물질 노동(Immaterial Labor)”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하여 단순한 노동구조를 가지고 있던 공업화(케인즈, 포디즘) 시대에는 육체노동 작업이 생산체계의 초점이었지만 이것이 고객관리과 이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의 피드백으로 옮겨가면서 복잡하고 주관적이며 유연한 방식으로 대체되었다고, 탈공업화시대(and Post-taylorism)의 노동 환경 변화를 논증하였다. 이런 변화는 노동자들의 성향을 변화시켰고, 이들은 주관적이며 인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자기홍보에 힘쓰는 개인주의적이자 자기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갖추어야 하는 문화를 낳게 되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특성에 맞춰 변화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의 제조사는 소비자의 의견수렴을 생산품목 결정에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 상품 소비하는 과정 즉, (소비하는 사람들 간의 소속감과 같은) 사회적 관계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의견 소비하는 방식과 문화의 행위가 비물질 노동으로 경제적 생산체계에 귀속되었고 비물질 노동의 정의가 변화되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현대 경제적 생산체계에서 비물질 노동의 “원료”는 주관적 취향과 관계이며 생산물은 “이념적인” 환경이다.

이러한 현상은 관계 미학을 지향하는 예술작업과 많이 닮아있다. 작품에서 대중의 참여는 데이터의 기반이 되고 이 사회적 관계의 경험을 통해 대중들은 작가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동시대의 경제적 이론은 미술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혹은 합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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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Shin HyunJin

Shin HyunJin/신현진 photo: sitecited

Independent curator Shin Hyun Jin, is currently a PhD. candidate in Art Criticism at Hongik University, Seoul, where she is researching the effects of neoliberalism on the Korean art scene. Previously she was the curator of the Ssmazie Space Residency Program from 2002-2009. In 1998 she received here MA in Arts Administration from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She has been involved with numerous art projects in South Korea and in the United States including work as the Program Manager and Development Associate, at the Asian American Arts Centre, NYC (1998-2002), Head of Exhibition Team at SAMUSO: Space for Contemporary Art, Seoul for Platform (2009); TACIT: perform[0], at Doosan Art Center, Seoul (2009); Site Santa Fe: Lucky Number Seven, (2008); Sound Art 201, SSamzie Space, (2008); and Shift and Change II: Alternative Spaces What Now?, SSamzie Space, (2008).  Needless to say Shin’s participation in the Korean art scene is deep, and her topic of interest is critical to understanding the dynamics of the Korean art world, which is complicated by social mores and political histories. You can also follow Shin at Blog.naver.con/artfirm. I was interested in speaking with Shin because of her experience as a curator, and an arts administrator working within an international residency program, who was educated in the west. When we sat down in January our conversation focused on the changes in the Korean art scene since the late 90’s and how social work has become part and parcel of art work, due to the structural changes in economies at the end of the last century.

The following interview questions, which where answered via email, are based on the conversation we had in January.

Julia Marsh: Previously you worked as a curator for SSamazie Space. Can you say what you see as the greatest loss of this residency program?

Shin Hyun Jin: Yes, there is a feeling inside me wishing I could do some more at that place.

Other than that, I do not think the closing of SSamzie Studio Program is a great loss because SSamzie Space, along with other alternative spaces and residency programs in Korea of the late 90s thru first 10 years of new century had successfully played a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 globalization of Korean art world. For that matter, SSamzie Space and its residence program are considered critical components of the development of Korean contemporary art practice at the time. The form of its residency program, in particular, was instrumental in such trends. I see the late 90s and first 10 years of 21st century as a period in which the Korean contemporary art scene globalized parallel to the development and adaptation of Korea’s economic neoliberal logic, which dictates principles such as survival of the fittest. In that, residency programs provide artists with honor, feelings of advancement, relevant tools for promotion on a global level and the opportunity to network. SSamzie Space’s studio program was customized for all of these objectives, which allowed SSamzie Space its fame to a certain extent until other bigger, public art institutions performed the same tasks for artists around the time SSamzie Space announced its permanent closing.

JM: And what do you think are the benefits of the artist residency in the age of globalism?

SHJ: In 1998, Nicolas Bourriaud wrote a book entitled, Esthétique Relationnelle(Relational Aesthetics). In his book, he stated that he wanted to grasp what was going on in the art practices of the 90s, and pointing out making relations was a common denominator of those practices. In other words, it can be said that creating meaning(s) in art production was shifting from making art objects to inducing it through the process of creating relations, like Rikrit Tribanija’s cooking. Another example, one I personally organized was an exchange project at SSamzie Space entitled “Publicly Speaking,” which included a residency exchange between Korean artists and Art Initiatives of Tokyo.  Among the artists included were Kazz Sasaguchi and Hiroharu Mori who’s project “Student Driver” explored the mentality of student drivers’ learning experience of traffic rules compared to that of travelers’ awareness of foreign country’s customs. The project needed administrative assistance from the host institution to recruit volunteer drivers and instructors, not to mention the period of time and a place for the artists to stay while conducting the project.

Another factor that requires residencies in the art world is globalization, and the growing demand for international art events. The need for the presence of international artists here in Korea, combined with the causes that I stated above, has for a long period of time grown at the same time. While the mechanism of art production is in transition in this direction, the residence program is a necessity.

JM: Do these programs support or exploit the circumstances of being an artist in the contemporary climate?

SHJ: That depends on institutions.

JM: You are currently enrolled a PhD candidate in Art Criticism at Hongik University working on ideas around informal economies, especially social entrepreneurs and how contemporary art developed in Korea in relation to the rise of Neoliberalism. How do these ideas differ or merge with what you previously worked on?

SHJ: I worked at two alternative spaces for more than 11 years: Asian American Art Center in New York and SSamzie Space. Asian American Arts Center celebrated its 27th anniversary when I first started working there. I was very lucky and privileged for the opportunity because there I was exposed to the alternative art scenes as well as its history in the United States and the rise and fall of alternative spaces in Korea. I worked at the Asian American Arts Center till 2002 when most New York based alternative spaces were either closing down or changing their organizational structure. I learned that alternative spaces were opening in Korea and got a job at one of them. Then by 2008-09, which was 10 years since the first alternative space was established in Korea, many alternative spaces here either closed down or moved to the fringe areas of Seoul. It seems that it only took 10 years for Korea to follow the same ill-fated course of the alternative space in the US that took 30 something years to occur. Other spaces such as City Racing in England, Nordic Institute of Fine Arts in Stockholm, Sweden, and Rooseum in Malmo, Sweden, organizations performing similar roles to alternative spaces in their respective local art fields, also either changed their institutional structure or closed down between 2005 and 2006, proving institutional changes are global in nature.

After Ssamzie Space closed it was time for me to move on to next phase of my life, career. Before make my decision, I wanted to see the state of art field in terms of society, economy and history so that I could make educated decision. It also meant that I wanted to contemplate what I had done more on an academic level in order to figure out where I fit in. This process naturally led me to study Neo-liberal economy and its policies, economic theories and sociology.

At the same time, I am conducting case studies in the art field; what new approaches are being taken, what do these kinds of art production mean in terms of social and economic development today. The ideas will later become part of my dissertation envisioning the future. As per your question, social entrepreneurship is one of the possible components of art in the future. Smaller government and privatization of social welfare projects are a few of the contingent outcomes of government’s adaptation to Neo-liberalism worldwide. Korea is no exception. Starting from the Roh Moohyun administration (2003-08), organization apparatuses that perform public service handed that role over to private organizations and companies. Even social welfare became a subject that individuals and corporations had to take care of. These trends coincided with the government’s policy to promote social entrepreneurs by providing a two or three year salary subsidy, while their companies were obliged to create social services that ensured profits. The same policy applied to cultural institutions that included social good. However, the policy presented a dilemma. In the 60s the economist W.J. Baumol hypothesized that in cultural economics a productivity lag is bound to cause a long-run increase in the real cost of the performing arts.

This theory became a justification for public subsidies, both in Korea and in the US for 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and was often cited by advocates for the arts since 1965. If his theory is still reflective of economic conditions and the market, social entrepreneurship in the arts is oxymoronic. Or conversely, while we hear about the end of Capitalism, and Occupy Wall Street demonstrations that herald such social change are imminent, success of social entrepreneurship may indicate the direction of social change in which involvement of individuals become necessary instead of being managed by government or representatives. I am not that fond of a direction that insist that individuals must be responsible for their own welfare even though they are paying high rate taxes to government to take care of the people.

I would be more supportive only, if DIY welfare structure meant less taxation. I do not know if there is a countervailing logic that such a direction is beneficial for humankind yet. Time will tell.

JM: How do you think the differing forces of business and aesthetics influence the art world in Korea, currently and in the decades since democratization in Korea?

SHJ: Characteristics of this influence over a majority of art practices in this period can be connected to theories of labor. My argument to connect art and theory of labor is limited to experimental, conceptual art practices that often involved with installation, project-based practices, and relational art.

In 1991, Maurizio Lazzarato wrote a paper entitled, “Immaterial Labor,” in which he argued changes in the labor conditions of the post-industrial era show how the simple manual labor style of the previous industrial era were replaced by more complicated, subjective and flexible methods due to the production mechanism’s focus shifting to managing customer relations and reflecting on collected data through the relation fed back by their production. This caused changes to the personality of laborers into populations that constitute the subjective, networking, self-promoting, and individualistic. People slowly adapted to such traits that the new economic system required.

If production today is directly the production of a social relation, then the “raw material” of immaterial labor is subjectivity and the “ideological” environment in which this subjectivity lives and reproduces.[1]

This phenomenon has a great resemblance to the art practices of relational aesthetics, which is the term Bourriaud coined to define certain art practice of the 90s. Audiences assume the role of feeding data to complete an artist’s project, while the social relation, the participating audience, experience becomes the foundation of the data. In this sense, economic theory influenced the art practice of the time.


[1] Maurizio Lazzarato. “Immaterial Labor,” Radical Thought in Italy: A Potential Politics, eds. Paolo Virno and Michael Hardt.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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